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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시설 직원이 일손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한밤중에 시설의 노인을 차례로 베란다에서 떨어뜨려 죽였다.'(5쪽)

'폭증하는 고령자를 수용할 병원이 부족해, 죽을 장소가 없는 '죽는 곳 난민'이 문제 되고 있다.'(39쪽)

 

이미 20년 전 고령사회(노인 비율 14% 이상)로 진입한 일본의 현실입니다. 곧 고령사회를 앞둔 한국에게도 조만간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특히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로선 마냥 옆 나라의 일로만 여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고령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책 <이토록 멋진 마을>은 두 마을(도야마 현 도야마 시, 후쿠이 현 사바에 시)의 사례를 통해 일본 지자체가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처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정부가 아닌 지자체 차원에선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 말하는 거죠. 사실 고령화는 지방에선 오래 전부터 직면한 현실이었습니다.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젊은층을 붙잡지 못해 더 빨리 밑바닥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마을의 사례는 의미 있습니다. 도전한 만큼 성적도 좋기 때문입니다. 두 마을의 주민 수는 늘고 있고, 이들이 속한 도야마 현과 후쿠이 현은 행복도를 포함한 각종 지표에서 최상위를 차지합니다. 어떻게 하길래 이게 가능한 걸까요. 책에 나온 내용을 잠시 보시죠.

 

[도야마 시] 42만의 지도자가 14년째 장기집권하는 이유

 

도야마 시는 일본 열도 가운데에 있는 중소도시로 동해와 접해 있습니다. 42만여 명이 사니, 인구로 따지면 구미시와 비슷합니다. 이 마을이 유명한 건 고령사회에 대처하는 여러 정책 때문인데요. 2002년에 취임해 지금까지 4번 연임 중인 모리 마사시(65) 도야마 시장이 추진한 것들입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날 때 경제적으로 문제되는 건 크게 2가지입니다. 의료비 지출이 느는 반면, 소비 여력은 떨어져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점인데요. 도야마 시는 이걸 재밌는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손자와 외출 지원정책'. 박물관, 과학관, 놀이공원 등 여가문화시설에 손자나 증손자를 데려올 경우 입장료를 무료로 해주는 겁니다. 일단 걷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건강수명이 늘고 의료비가 줄어듭니다. 또한 손자와 함께 다니면서 지갑을 여니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죠. 무엇보다 어르신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해줍니다.

 


비슷한 정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외출 정기권 정책'인데요. 65세 이상의 노인이 대중교통을 통해 중심 시가지로 올 땐 교통비를 4~10% 수준으로 깎아주는 겁니다. 적어도 만원, 최대 2만5천원이 드는 교통비를 천원 수준으로 해주는 겁니다. 이 역시 소비를 늘리고 많이 걷도록 도와주지요.

 

사실 외출 정기권 정책은 스위스 바젤의 정책을 따온 겁니다. 개인후원회의 지원 아래, 모리 시장은 시간이 될 때마다 함부르크·밀라노·헬싱키 등 외국의 '멋진 마을'을 며칠씩 탐방했습니다.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도야마 시에 적용한 게 주민의 지지를 얻은 거죠. 모리 시장의 여러 정책 덕분에 도야마 시에 들어오는 전입자는 꾸준히 늘었습니다.

 


 

[사바에 시]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도야마 시의 사례가 고령사회에 대처하는 재밌는 정책 사례를 주로 보여준다면, 사바에 시 사례는 좀 더 큰 틀에서 고령화에 접근해 자생력 키우는 법을 보여줍니다.

 

한 마을이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선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일단 엄마가 아이를 기르기 좋아야 하고, 그 아이를 교육시킬 만한 환경이 갖춰져야 합니다. 아이가 커서 청년이 됐을 때 대도시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역산업도 튼튼해야 합니다. 지역산업이 돌아가기 위해선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지역경제에 종사하는 허리가 두터워야 하죠.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 연결고리를 뚝뚝 끊습니다. 청년이 마을에서 자라나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으니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고 마을은 황폐화됩니다(아이 사라진 거리, 15년 뒤 한국 풍경)

 

인구 7만의 사바에 시가 자생력은 갖춘 것 역시 육아-교육-일자리의 연결고리가 튼튼한 덕입니다. 사바에 시가 속한 후쿠이 현이 1인당 소득이 전국 1위로 도쿄보다 높은 것 역시, 가정-학교-기업-지자체가 제 역할을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이죠.


일단 육아환경을 볼까요? 사바에 시에선 대기번호를 기다릴 필요 없이 보육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습니다(보육원 수용율 1위). 맞벌이 비율이 압도적 1위인 것도 이 때문이죠.


학교는 어떤가요. 교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 교직대학원의 교수가 직접 학교에 와 지도합니다. 후쿠이대 요직의 사람들이 '학급 거점'의 교직교육을 시도한 겁니다.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게 교사라는 걸 생각하면 핵심을 파악한 정책인 거죠.

 

마지막으로 지역산업. 사바에 시에선 지역민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뒷받침 합니다. 안경·섬유·칠기 같은 사양산업이더라도 다른 영역으로 확대해 혁신할 수 있도록 말이죠. 안경 제조로 익힌 티타늄 가공기술을 의료, 항공기 산업, 광센서 등 다른 업종에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식입니다.

 

지방도시가 기업을 유치하려 이것저것 지원해도 수익을 중시하는 기업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훨씬 지속 가능한 방법이죠. 기업은 부가가치 높이는 경영으로 지역민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지자체는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해 선순환 하도록 합니다. 덕분에 사바에 시는 후쿠이 현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튀는 성남시, 불평등 조장하는 성남시?

 


저자는 종종 '밑바닥을 보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바닥을 친 지자체일수록 더 절박하게 움직이고 파격적 정책을 쓴다고 말합니다.

 

변두리에 있고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두 마을도 그랬습니다.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변화를 추구하고 도전을 장려한 건 같았습니다. 도야마 시는 지자체가 변화를 주도하는 식이었고, 사바에 시는 지자체가 변화를 지원하는 식이었습니다.


절박하게 움직이는 건 일본의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지자체가 재정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첫 아이부터 유치원·보육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하는 게 대표적이죠.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둘째부터 조건부 반액, 셋째부터 무료' 기조로는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본 겁니다.


일본보다 고령화 추세가 가파르고 출산율도 낮은 한국은 어떨까요? 성남시가 엄마들의 부담을 덜어주려 무상교복·무상산후조리원 정책을 시행하자 오히려 정부는 제동을 걸고 이를 막는 형국입니다(서울-성남시-정부 헌재서 '무상복지 제동' 2시간 격론).

 

물론 반대편의 의견도 일리 있습니다. 지자체 사이에 불평등을 조장할 수 있고, 근본적으로 복지를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자체 간의 평등과 저출산·고령화 대책 둘 중 어떤 게 더 중요한지를 따져볼 때 정부의 대응 방향엔 의문이 듭니다. 지방자치 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때 어디까지 '자치'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중앙을 따라야 하는지 역시 고민스럽습니다.


지금의 중국을 만든 지도자, 덩샤오핑은 개혁정책의 대부분을 지역 지도자에게서 들여왔다 합니다. 설령 지역의 정책이 중앙정부 기조와 맞지 않더라도 가능성 있다 생각하면 수용한 겁니다. 그렇게 적용범위를 넓히면서 지켜보다가 전국으로 확대시켰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자체의 시도와 시행착오를 활용할 순 없는 걸까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나은 정책을 펼치려 할 순 없을까요. 특히나 저출산 같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한 문제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혁신은 기본적으로 작은 곳에서 태어나 큰 곳으로 퍼지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이 말은 곱씹을 만합니다. 사바에 시의 교육개혁 일부가 문제점을 드러내자 이에 대해 말하는 대목입니다.

'유일한 대책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나아질지 계속 고민하고 바꾸는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이전의 교육방침으로 돌아간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보하기 위해 시행착오는 감수해야 한다.'

이토록 멋진 마을 -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

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 김범수 옮김, 황소자리(2016)


태그:#이토록멋진마을, #고령화, #저출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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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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