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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2039 ①] 저출생·고령화로 지방 소멸? '서울'도 위기다
[소멸 2039 ②] 89년생까지 '일본 취업' 고려해볼 만한 이유

지난 9월 28일 기사인<89년생까지 '일본 취업' 고려해볼 만한 이유>는 한일 저출산·고령화·인구 절벽 위기를 '15~64세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측면에서 비교했다. 한국보다 인구 절벽 도달이 20년 빨랐던 일본은 해외로부터 노동력 충당에 힘쓰고 있다. 특히 한국인 특별전형을 실시해 한국 청년에게 손짓을 보내는 기업들도 있다.

한국 청년 입장에서도 급여·복지·주택 등이 한국보다 나은 일본 취업은 합리적 선택지로 부상 중이다. 이때까지 전문직 종사자에 한해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한 일본이었지만, 최근 아베 총리는 단순 노동직도 개방을 적극 검토하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영주권 취득 제도를 추진 중이다. 이 흐름은 한국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때까지 한국 기업들이 청년들에게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는 갑질을 해왔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세계 지도를 펼쳐서 국내 자본가들이 어뒤로 튈지 예상해보자.
 세계 지도를 펼쳐서 국내 자본가들이 어뒤로 튈지 예상해보자.
ⓒ 구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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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내년부터 한국도 인구 절벽에 도달하므로 점차 "여기 아니어도 일할 곳 많다"는 청년의 반격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0%가 한국 사회에 환멸을 느껴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고, 국적상실자(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취득)가운데 2030이 3명 중 1명꼴이며,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들이 26%로 미국에 이어 두번 째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해외 노동력이 단순 노동직 위주로 유입되지만 전문 인력과 청년은 빼앗기고 있어 '인구 쟁탈전'에서 패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9월 28일 기사의 골자였고, 생각보다 많은 독자들께서 호응을 해주셔서 나도 약간 놀랐다. 특히 IT 쪽에 종사하시는 독자들께서는 경험적으로 체감하시는 부분이고 청년 독자들에게는 그럭저럭 쓸만한 정보였기 때문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 와중에 흥미로운 피드백을 주신 독자가 한 분이 계셨다. 다음은 그 독자님께서 남겨주신 의견이다.

"저도 인구 절벽으로 청년이 기업에 반격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이 예측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유보입니다. 다른 변수가 개입할 여지도 있거든요. 첫째로, 노동 이동보다 자본 이동이 빠르고요. 둘째로, 기술 발전으로 사람이 필요 없어질 수 있지요."

나는 이 독자의 의견이 함께 고민해볼 만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따로 지면을 마련해 '독자 의견 리뷰'를 하기로 결정했다. 남겨주신 의견을 해설하면 이러한 취지 같다.

'인구 절벽으로 일본처럼 사람이 귀해질 것 같지만, 여차하면 자본가들이 청년들보다 먼저 돈 싸 들고 해외로 튈 가능성도 있다. 청년들이 탈조선을 하려면 외국어를 배우고 기술을 습득하는 등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부자들이 먼저 도망가면 자본 유출로 국내의 일자리도 줄어든다(가령, 구조조정). 또한 AI 등 신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

아주 중요한 통찰이다. 나 역시 기사에 다른 변수가 있으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이 독자의 의견은 좋은 참조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먼저 부자들이 여차하면 해외로 돈 싸 들고 튈 가능성이 왜 중요한지부터 고민해보자.

자본의 해외 유출 가능성은 팩트.. 그래도 '인구 쟁탈전' 불가피

골드만삭스 아태 담당 수석 앤드류 틸튼 인터뷰.
 골드만삭스 아태 담당 수석 앤드류 틸튼 인터뷰.
ⓒ 골드만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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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청년이 탈조선하는 속도보다 자본의 해외 유출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나? 맞다. 그럼 실제로 자본이 해외로 순 유출될 만한 여지도 있나? 이것도 맞다. 최근 골드만삭스 앤드류 틸튼 아태 담당 수석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 지역 자본 유출은 미국 발 금리 인상보다 인구 고령화가 더 큰 위험 요소다. 향후 20년간 한국·중국·대만·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 인구 고령화는 주요 선진국보다 더 빠르고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다.

이는 195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고령화가 왜 문제냐?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투자해도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이치다. 그런데, 자본의 해외 유출은 두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는 것. 둘째, 내국인이 돈 싸 들고 해외로 도망가는 것. 골드만삭스는 전자보다 후자에 주목한다.

아시아 신흥국들은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지만(금리가 높은 쪽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니까), 더 심각한 건 내국인이 돈 싸 들고 해외로 도망갈 일이니 그거나 걱정하라는 것이다. 얄밉지만 맞는 말이다. 해외 투자자란 아시아 경제의 눈치를 보면서 언제든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가 할 수 있는 부류니까, 결국 그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칠 아시아 인구 구조부터가 더 근본적인 변수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아시아 신흥국의 고령화가 진행되면 저축액이 가장 많은 50~60대가 국내보다 해외에 투자하기를 원할 것이라는 게 골드만삭스 측 분석이다. 실제로 청년만 탈조선을 하는 게 아니라 기성세대도 탈조선을 한다. 요즘 취업 이민 말고 투자 이민도 말이 나오지 않는가. 벌써 자본 유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측 분석이 맞다면, 향후 5년간 한국·중국·대만·태국의 순 유출 자본은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70%는 중국에서).

그럼 '내국인 자본'이 빠져나가니 일자리도 줄어들고 청년이 기업에게 '여기 아니어도 일할 곳 많다'는 반격할 기회도 없을까? 글쎄, 내국인도 내국인 나름이다. 나는 국내 기업이 얼마간 구조조정을 지속하리라 본다. 실제로 지금도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성격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 이것은 기업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기업이 어떻게든 지갑에서 돈 안 꺼내고(청년 정규직 안 늘리고) 생산성 유지하고 기성세대 회사 밖으로 내쫓고 비정규직 늘려보려는 궁색한 발악에 가깝다.

투자이민처럼 50~60대 중산층이 여생을 위해 탈조선을 꿈꾸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물론 예측에 감히 단정 짓기가 가능하겠는가. 기업 자본도 해외로 도망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한데 나는 걸리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와 그들이 누리는 특권 부분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최상층을 장악한 대기업 재벌들은 대부분 세습 자본가다. 또한 세습이든 자수성가든 기업의 주식 지분의 과반 이상을 차지해 경영권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왔다. 재벌이 초법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데 이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재벌은 다가오는 생산 인구 감소 시대에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기득권을 유지하되 인구 쟁탈전에 적응해 태세 전환을 하여 청년을 사로잡던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해외로 손 털고 도망가는 대신 경제 민주화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행을 이루던가.

나는 후자가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이번에도 전자가 승리할 것 같다. 재벌이 인구 쟁탈전에 얼마나 잘 적응할지는 또 별개다. 골드만삭스는 같은 아시아 지역이라도 젊은 노동자가 많고 고령화 압력이 적을 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 등은 자본유출 충격에서 거의 빗겨나갈 것이라 진단했다. 노동 유출보다 자본 유출이 빠른 건 이론상 맞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재벌이 청년과 기성세대가 젊음과 돈을 싸 들고 탈조선하지 않도록 유인을 제공해야만 하는 수세에 몰릴 수 있다.

신기술이 정말 일자리를 뺏을까? 물건 '누가' 사느냐가 중요

영화 <트랜센던스> 스틸컷. <트랜센던스>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딩하는 '마인드 업로딩' 사례를 다루고 있다. 미래에는 인간이 육체와 소비로부터 해방될 가능성도 있다.
 영화 <트랜센던스> 스틸컷. <트랜센던스>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딩하는 '마인드 업로딩' 사례를 다루고 있다. 미래에는 인간이 육체와 소비로부터 해방될 가능성도 있다.
ⓒ 서밋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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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제시한 두 번째 통찰은 기술의 발전이다. 정말 AI나 마인드 업로딩 같은 신기술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을까? 따라서 인구 절벽으로 인한 일손 부족을 상쇄하고도 남을까? 이건 전문가들도 쉽게 답하지 못 하는 난제다. 이 난제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일 것이다. 다만 이왕 피드백이 들어왔으니 상식 차원에서의 이야기는 꺼내야 할 것 같다.

아시다시피 19세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동반한 기술 발전이 대량 실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일부 노동자가 기계 파괴 운동을 벌인 것이다. 이 노동자들은 교수형을 당했을망정(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위기감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다.

그럼 정말 대량 실업이 초래됐는가? 이건 딱 잘라 답하기 어렵다. 우선 당장은 아니었지만 20세기 경제대공황 당시 위험성이 어느 정도 드러나긴 했다. 자본가들은 생산성을 끌어올리려고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해 상품을 찍어내고 사람은 더 쥐어짜거나 정리 해고를 했다. 이렇게 착취를 당해 구매력이 떨어진 노동자들이 물건을 살 수가 없게 되자, 재고가 쌓이고 공장이 도산하고 다시 실업자가 양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그렇다. 노동자는 단순히 노동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소비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점을 재빠르게 알아챈 사람은 미국 포드사의 헨리 포드였다. 그가 자동차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후 흐뭇해했는데 이를 본 노동자가 대뜸 '이제 그럼 누가 물건을 사죠?'라고 물었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소득과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해줬다고 한다.

이것이 포드주의의 탄생이다. 내수시장 지향적 포드주의는 1970년대부터 국제시장이 더 중요해지고 무한 경쟁에 접어들면서 고용 불안정성이 증가해 차츰 사라졌지만, 물건을 만드는 주체도 있으면 구입해 소비하는 주체도 있어야 한다는 상식만큼은 지금도 이어진다. '러다이트 운동은 무지에서 비롯된 기우였다'고 주장하는 일부 낙관론자들은, 신기술이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만큼이나 더 많은 직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직업들이 존재하는 게 현재의 정보화 사회인 건 맞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부수적 효과가 이번 4차 산업혁명에도 반복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이제 그럼 누가 물건을 사죠?'라는 직관적 교훈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그나마 유효하리라 본다. 설사 AI가 생산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더라도, 바로 이 교훈 때문에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거나 (생겨나지는 못해도) 기본소득은 계속 보장되는 등 최악의 상황은 피하지 않을까.

물론 AI 비관론자들은 이번 4차 산업혁명은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AI가 쓴 소설 등의 사례가 보여주듯 '창의성'과 '감정'이 과연 인간의 고유한 영역일지 의심받고 있다. AI가 미래에는 인간을 완벽히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AI 기술을 장악한 뒤 소비 활동까지 AI에게 맡겨버리고는, 잉여 인간들은 다 내쫓아버릴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독재자가 등장할 최악의 경우의 수도 간단히 묵살할 것은 아니다.

다만, 진담 반 농담 반이지만 9월 28일 내 기사에 신뢰를 보낸 IT 개발자들을 나 역시 신뢰한다. 그들이 최악의 상황은 막아줄 것이다. 아직 인간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


태그:#일본 취업, #탈조선, #인구 절벽, #저출산,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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