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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차 광화문광장 박근혜퇴진 촛불집회를 마치고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다
▲ 촛불 든 농사꾼과 산골 어린이 15차 광화문광장 박근혜퇴진 촛불집회를 마치고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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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시에서는 주말마다 촛불이 환하게 밝혀진다. 단양 산골엔 촛불이 없다. 잠잠하다. 시골 어린이 한결이는 농사꾼 아빠가 했던 작은 촛불집회는 몇 번 직접 보았다. 하지만 수십만, 수백만 촛불은 텔레비전에서나 본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수십만, 수백만 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행진을 한다. 언제인가부터는 태극기를 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맞불집회라는 걸 한다. 산골 아이는 궁금하다. 왜 촛불 든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할머니를 탄핵해야 한다고 하는지. 왜 태극기 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탄핵 기각이란 걸 외치는지.

단양역에서 기차 타고 농사꾼과 산골 초등학생 한결이가 15차 광화문광장 촛불집회로 민주주의 체험학습 하러 가다.
▲ 기차 타고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고고씽 단양역에서 기차 타고 농사꾼과 산골 초등학생 한결이가 15차 광화문광장 촛불집회로 민주주의 체험학습 하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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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1일) 산골 어린이 한결이가 아빠 손을 잡고 그 궁금증을 풀러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 재작년 봄 농사꾼 아빠와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형아, 누나들 보러 가고 두 번째다. 농사꾼 아빠는 촛불 민주주의 체험학습이라며 한결이 손을 잡고 산골 집을 나섰다.

한결이 아빠는 1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백남기 할아버지 지킨다고 서울대병원 천막에서 살았다. 얼마 전에는 트렉터 끌고 국회 앞으로 갔다. 박근혜 대통령 물리치는 전봉준투쟁단이라는데 산골 아이는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농사꾼 아빠가 갑자기 군인이 되다니.

"한결아, 박근혜 대통령이 아빠처럼 농사짓는 백남기 할아버지를 물대포로 쏘아 죽게 했어. 그래서 아빠는 용서가 안 되는 거야. 세월호 탄 형아, 누나들 죽게 만든 것도 알고 있지?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되거든. 그래서 아빠랑 농사꾼 아저씨, 아줌마들이 대통령 쫓아내려 하는 거야."

어렴풋이 대통령과 아빠의 싸움을 알고 있던 한결이는 농사꾼 아빠와 함께 하는 체험학습이 어색하다. 체험학습은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하는 거니까. 단양군 적성면에 하나 뿐인 작은 시골초등학교 2학년 한결이에겐 63빌딩 가고, 에버랜드 가고, 역사박물관 가고, 과학관 가고, 체험농장 가는 것이 체험학습이다. 그런데 아빠가 선생님도 아닌데 무슨 체험학습을 한다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한국은행과 서울시청광장 사이를 행진하는 박사모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명동거리를 지나고 있다
▲ 명동 거리를 가득 메운 박사모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한국은행과 서울시청광장 사이를 행진하는 박사모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명동거리를 지나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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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알 듯 모를 듯한 웃음만 지으며 산골 아이 손을 잡고 기차 타고 청량리역에 내렸다. 그리고는 택시 타고 한국은행 앞에 이르렀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태극기 물결이 한결이 눈 앞에 펼쳐졌다. 수 만개의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린다. '탄핵 기각하라'를 외치는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아빠, 이게 맞불집회야? 사람들 진짜 많다. 10만명은 되겠다, 그치?"
"글쎄다. 많기는 많은데 아빤 잘 모르겠는 걸. 저기 광화문광장 가면 촛불이 훨씬 많아. 백만명은 될 걸."
"그래? 역시 맞불은 쨉도 안되는구나. 어휴, 다행이다."

한국은행 앞에서 박사모 태극기 집회를 처음 목격한 산골 초등학생 한결이가 촛불집회를 향해 출발하며 화이팅을 외치다.
▲ 맞불집회를 뚫고 촛불집회를 향해 한국은행 앞에서 박사모 태극기 집회를 처음 목격한 산골 초등학생 한결이가 촛불집회를 향해 출발하며 화이팅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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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산골아이가 십만 명이 얼마나 되는지, 백만 명이 얼마나 되는지 어림이나 할 수 있을까? 몇만 명이 소리치며 깃발 휘날리는 걸 난생 처음 보았으니 주눅이 들 만도 하다. 태극기의 행렬을 거슬러 명동-서울광장-청계광장을 지나서야 마침내 낯익은 세월호 천막이 보이고 이순신장군이 산골아이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아빠야, 저기 이순신장군이다. 세월호 천막도 보여. 어휴, 이제야 어딘지 알겠어."

8살에 처음 오고 두 살을 더 먹어서야 세월호 천막 앞에 섰다. 아이는 용케 세월호 천막을 기억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일 터이다.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형들과 누나들이 슬픈 눈으로 한결이를 바라본다. 한결이는 훌쩍 자랐는데 형들과 누나들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한결이는 그 때처럼 다시 한번 국화를 형들과 누나들 앞에 놓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때에 이어 두번째로 세월호 분향소를 찾은 단양군 대가초등학교 2학년 유한결
▲ 세월호 형과 누나들을 다시 마주한 산골 어린이 세월호 참사 1주기 때에 이어 두번째로 세월호 분향소를 찾은 단양군 대가초등학교 2학년 유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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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천막 옆에 텐트들이 많이 있다. 못 보던 거다. 광화문 캠핑촌이라고 쓰여 있다.

"아빠, 이 텐트들은 뭐야? 못보던 건데 여기에 왜 캠핑촌이 있어? 우리 단양처럼 산도, 계곡도 없는데 이상하다."

농사꾼 아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어떻게 10살 아이에게 설명한다?

"어, 한결아, 있잖아, 그러니까, 한결이 그림 잘 그리고 동시 잘 쓰잖아. 화가랑 시인이랑 그림 그리고 시 쓰는 걸 박근혜 대통령이 못하게 해서 예술가들이 화가 나서 여기에서 이렇게 항의하는 거야. 한결이도 그림이랑 시 마음대로 못하게 하면 화나겠지?"

블랙리스트를 애써 설명하는 농사꾼 아빠도 힘들고 그걸 이해하려는 산골 아이 한결이는 더 힘든 기색이다.

산골 어린이 한결이가 광화문 캠핑촌 문규현 신부 텐트 앞에서 블랙리스트의 의미를 생각하다
▲ 블랙리스트가 뭐지? 산골 어린이 한결이가 광화문 캠핑촌 문규현 신부 텐트 앞에서 블랙리스트의 의미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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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아빠와 산골 어린이는 세월호 분향소와 광화문캠핑촌을 지나 정원스님 분향소에 이르렀다. 아빠가 손에 쥐어 준 국화 한송이를 정원스님 영정 앞에 놓고 한결이가 아빠가 시키는 대로 넙죽 절을 한다.

"한결아, 할아버지 제사 때 절하는 거 알지? 스님한테도 그렇게 절하면 돼."
"근데, 아빠, 스님께서 왜 돌아가신 거야?"
"어, 소신공양."
"그게 뭔데?"
"그런게 있어. 좋은 일 하시다가 돌아가셨어."

도대체 10살 어린이에게 소신공양을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블랙리스트를 제대로 설명 못한 농사꾼 아빠는 소신공양 설명에서는 말문이 막혀 버린다. 체험학습 교사로서는 빵점이다.

정원스님 광화문광장 분향서에서 절을 하는 한결이는 정원스님을 돌아가시게 한 소신공양의 뜻을 모른다. 농사꾼 아빠는 차마 그 의미를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 소신공양이 무얼까? 정원스님 광화문광장 분향서에서 절을 하는 한결이는 정원스님을 돌아가시게 한 소신공양의 뜻을 모른다. 농사꾼 아빠는 차마 그 의미를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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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와 소신공양 설명을 못 했지만 기운 좋은 농사꾼 아빠는 아이 무등을 태우고 촛불광장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광화문광장에 펼쳐진 75만 촛불의 바다가 산골아이의 두 눈 앞에 펼졌다.

"2월 안에 탄핵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특검을 연장하라!"

함성이 울려 퍼진다. 촛불의 파도, 함성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농사꾼 아빠의 어깨 위에 올라탄 한결이는 저도 모르게 흥에 겨워 양손의 촛불을 치켜 들고 목청껏 함께 외친다. 농사꾼 아빠도 그제서야 민주주의 체험학습 성공을 예감하고 안도한다.
농사꾼과 산골 어린이가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외친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헌재는 탄핵하라!
▲ 박근혜를 구속하라! 농사꾼과 산골 어린이가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외친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헌재는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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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마치고 청와대를 향해 힘차게 행진하는 아이의 모습에 흐믓하다. 흥에 겨운 아빠는 아이를 무등 태우고 춤을 추듯 덩실덩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한다.

아차, 막차 시간이 다 되었다. 농사꾼 아빠는 아이 손을 잡고 밀려드는 촛불을 거슬러 기차역으로 내달린다. 한결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처음에는 태극기 물결을 거스르더니 이번에는 훨씬 더 많은 촛불의 파도를 거슬러 헤쳐간다.

간신히 막차 기차에 올라타 흐르는 땀을 식힌다. 다리와 발목이 아프다면서도 투덜대지 않고 잘 따른 어린 아들이 아빠는 자랑스럽고 미덥다.

"한결아, 오늘 체험학습 어땠어? 재밌었어?"
"어~ 글쎄. 나쁘지 않았어. 내일은 늦잠 푹 자고 레고 맞추자, 알았지? 휴~ 피곤하다."

잠깐 재잘거리던 산골 아이 한결이는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맞춰 이내 까무룩 잠이 든다. 산골 어린이 한결이는 꿈 속에서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일렁이는 촛불의 바다일까? 장난감 놀이일까?

15차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민주주의 체험학습을 마친 산골 어린이 한결이가 기차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 기차에서 잠이 산골 어린이 15차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민주주의 체험학습을 마친 산골 어린이 한결이가 기차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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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결아빠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군에서 농사 짓는 10년차 유기농 농부입니다. 전봉준투쟁단과 단양군 농민회장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단양한결농원과 페이스북(필명 유기농민)에서 농사 이야기와 농민운동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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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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