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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습니다. 정치인 박근혜는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여름휴가를 독서휴가라 할 정도로, 책을 가까이에 두고 '보고 또 봤다'고 합니다. 남는 게 시간인 독방, 책읽기에 최적의 시간입니다. 시민기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독방에서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추천합니다. [편집자말]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편지를 띄웁니다.

작년 12월, 촛불정국의 한 가운데서 당신에게 편지를 띄웠던 한 대학생입니다. 국민들의 거센 하야 요구에 직면해서도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편지의 수신지가 청와대였는데 이제는 '서울구치소'가 된 거네요(관련기사 : 부끄러움 알게 해준 대통령, 정말 고맙습니다).

청와대에서 쫓겨나자마자 구치소의 좁은 독방에서 생활하려니 많이 불편하시죠? 듣자하니 여전히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지 못한 채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억울함에 눈물까지 쏟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문득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목숨을 잃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흘려야만 했던 눈물, 안으로 삭이며 꾹꾹 참아내야만 했던 그 눈물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당신이 흘린 눈물이 동정 받고 싶어 흘린 눈물이었다면 오산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피눈물 흘려야만 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면 당신의 눈물에 동정을 표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일침> 표지
 <일침> 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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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마침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독방에 계시니 안성맞춤이겠군요. 그래서 당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책 한 권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가 쓴 <일침>이라는 책입니다. 흔히 어리석은 이들을 깨우쳐줄 때 '일침을 놓는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일침은 정문일침(頂門一針)입니다. 급소인 정수리에 놓는 침으로 결정적인 충고를 일컫는 말입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바로 정문일침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어리석고 헛된 길이었는지, 당신이 왜 청와대에서 쫓겨나 차디찬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는지 깨우쳐줄 결정적 일침 말이지요.

이 책은 당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줄 만한 사자성어와 옛 선인들의 고사가 실려있습니다.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구절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격언 그리고 통치자들이 금과옥조로 새겨야 할 격언들도 있습니다.

물론 '통치의 묘방'은 더 이상 당신에게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왜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봅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당신이 꼭 새겨봤으면 싶은 사자성어 몇 가지를 골라봤습니다.

독방의 박근혜가 새겨야 할 구절들

①허정무위(虛靜無爲) - '텅 비어 고요하고 담박하게 무위하라'

허정무위란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상태를 말합니다. 물욕, 권력욕에 대한 집착도 모두 버린 상태인 셈이죠. 오늘날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청렴함입니다. 역대 대통령 중 부정축재와 측근비리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결국 대통령 스스로 사과하거나 구속되는 비극이 통과의례처럼 늘 반복되어 왔습니다.

당신 역시 그 '악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측근의 청탁을 받고 재벌에 협조를 지시하는 등 과거 군사정권에서나 볼 수 있던 정경유착으로 부정부패의 막장을 몸소 보여줬습니다. 또 당신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철저하게 보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결국 당신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자살행위였던 셈입니다.

"탐욕스럽고 더러운 방법으로 갑작스레 부자가 되거나, 바쁘게 내달려 출세해서 건너뛰어 높은 자리에 오른 자는 모두 오래 못 가서 몸이 죽거나 자손이 요절하고 만다. 절대로 편안하게 이를 누리는 경우란 없다. (…중략…) 하물며 흉악한 짓을 멋대로 하고 독한 짓을 마구해서 착한 사람들을 풀 베듯 하고서 스스로 통쾌하게 여기던 자라면 마침내 어찌 몰래 죽임을 당함이 없겠는가?" - p.30

② 쟁신칠인(諍臣七人) - '간쟁하는 신하 일곱 사람'

증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잘 따르면 효자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답합니다. "천자는 바른 말로 간쟁하는 신하가 7명만 있으면 아무리 무도해도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는 5명만 있어도 그 나라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중략…) 불의한 일을 당하면 자식이 아비에게 바른 말로 간하지 않을 수가 없고, 신하가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다" -<효경(孝經)>, <간쟁(諫諍)> 편

예로부터 임금에게 직언하는 것을 간쟁(諫諍)이라고 했습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왕이 통치하는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도 임금이 잘못을 하면 신하들이 가차없이 비판했습니다. 그런 신하 7명이 있으면 임금이 아무리 무능력하고 어리석어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고 공자는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통치자의 용인술이 갖는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고, 아첨하는 말은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늘 아첨하는 신하들에 의존해 측근통치를 펼쳤습니다. 당신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랬고,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른 말을 하고자 하면 표정부터 바뀌는 당신을 보고 어느 누가 직언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당신의 곁에는 앵무새들만 남았습니다. 입은 다문 채, 당신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기 바쁜 국무위원들의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였습니다. 결국 당신의 불통과 아첨하는 신하에 대한 의존이 '십상시', '문고리 3인방'으로 대표되는 환관정치의 부활을 이끌어냈습니다. 도대체 역사의 시계를 얼마나 뒤로 돌려놓았던 건가요.

입 안의 혀처럼 구는 간신들의 말은 당장에는 듣기 좋지만, 결국 임금을 파멸로 이끌기 마련입니다. 어느 암군도 그러한 길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측근의 총에 맞아 비명에 간 당신의 아버지도 그랬고, 최순실로 하여금 국정을 농단하게 한 당신 역시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지고 말았으니 역사의 진리는 무서운 법입니다.

③ 징비후환(懲毖後患) - '지난 일을 경계삼아 뒷근심을 막는다'

임진왜란 당시 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은 전쟁이 끝난 뒤,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징비록>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서 징비(懲毖)는 <시경(詩經)>, <소비(小毖)> 편에 있는 "내가 징계함은 후환을 삼감이다(予其徵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류성룡은 오래도록 이어진 평화에 젖어 적에 대한 방비를 게을리 한 우리 자신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징비록을 썼습니다.

징비후환은 사실 당신보다는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당신을 통해 민주주의와 지도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5년도 지나지 않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걸쳐 퇴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온 국민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의미가 무색하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이 끝내 당신이라는 '거악(巨惡)'을 탄생시켰음을 오늘의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가 추위를 뚫고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던 것도 우리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 땅에 다시는 당신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지난 촛불의 교훈을 되새기며 징비후환의 자세로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하려 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점에서 당신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몸소 깨우쳐준 셈이군요. 이 점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려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기를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인양된 세월호 내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온 국민이 선체에 남아있는 9명의 실종자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도 지금쯤 독방에서 뉴스를 보고 있을테지요. 세월호가 인양되는 그날에도 어김없이 '올림머리'를 손질했다는 당신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소식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 책의 구절이 당신에게 정문일침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될 수 있기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잘못을 통감하며 '개과천선'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일침>, 정민 저, 김영사, 2012.03.27, 14,000원.



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김영사(2012)


태그:#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세월호,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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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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