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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상쾌하고 짜릿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코 안은 살얼음이 살짝 끼었다. 체감온도는 대략 영하 5~7도쯤. 센터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오늘부터 시작할 스키 트레킹을 상상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얼마나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될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몇몇 사람들은 분주하게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트에 잠시 다녀왔다. 10일 치 식량을 구매했다. 치즈, 빵, 소시지, 살라미, 사탕, 미트볼 통조림, 초코바, 차, 등등. 값싸고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했다. 센터로 돌아와 동계용 이소 부탄가스를 사며 직원과 얘기를 나눴는데, '키비요크(Kiyijokk)에서 암마나스(Ammarnas)까지는 전체 트레일 일정 중 50%에 가까운 구간이며 숙소가 없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말을 당부했다. 눈보라가 심한 날이면 '화이트 아웃'도 생길 수 있으니 항상 날씨예보를 숙소에 도착해 확인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트 가는 길. 센터에서 마트가 있는 마을로 가려면 30분간 걸어야 한다.
 마트 가는 길. 센터에서 마트가 있는 마을로 가려면 30분간 걸어야 한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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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wedishtouristassociation.com
 출처 swedishtouristassoci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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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당분간 연락할 수 없음을 한국에 알리며 7~10일이 지나면 다시 연락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지도상에 집 모양이 가장 큰 'STF fjallstation'에선 와이파이가 가능하고 거의 모든 숙소에서 카드, 유선전화 사용이 가능합니다. 트레킹 구간 중 비상시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SOS 설치기가 있지만 눈 속에 파묻혔는지 볼 수는 없었습니다. 여름이 아닌 겨울에 혼자 가는 것은 위험요소가 다분히 존재하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지도 보는 법, 호루라기, GPS와 같은 기기를 준비하시기 바라며, 가급적 동행과 함께하시기를 권고해 드립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시작된 쿵스레덴

오전 11시 입구에 다다랐다. 사진과 영상 속에서 보던 입구가 눈에 띈다. 심박수가 빨라지며 들뜬 마음 감추기 어렵다. 앞으로 한 달간 걸어야 할 이곳이 어떤 감정을 일으킬지 서둘러 걷고 싶었다. 입구엔 단체팀이 있었는데 그들 몸엔 썰매와 연결할 하네스가 있었다. 그들 역시 들뜬 모습이 눈에 보인다.

단체 사진을 부탁해 몇 장 찍어주며 얘기를 나눠보니 스페인 사람들이다. 루트는 아비스코 ~ 니칼루옥타 였다. 한 달 예정으로 해마반까지 간다는 내 얘기를 듣더니 엄치를 내세운다. 안전하게 트레킹 하라는 말을 마치고 그들은 먼저 떠났다. 그땐 미처 몰랐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니칼루옥타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부 썰매를 끌고 갔다. 80리터였던 내 배낭은 공간 부족으로 외부에 텐트, 샵, 겉옷을 매달았다. 옆에는 함께할 크로스컨트리 스키
 그들은 전부 썰매를 끌고 갔다. 80리터였던 내 배낭은 공간 부족으로 외부에 텐트, 샵, 겉옷을 매달았다. 옆에는 함께할 크로스컨트리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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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표시목

상징과도 같은 빨간 표시목. 길 안내를 위해 만들어진 이것을 볼 때면 잘 가고 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곤 했다. 거친 눈폭풍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 빨간 표시목은 구원의 손길처럼 보였다. 눈에 파묻혀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저 멀리 보이던 표시목은 가야 할 거리를 짐작케도 해줬으니 의미가 아주 깊다.

겨울철 표시목.  겨울 쿵스레덴에 상징과 같은 것이다.
 겨울철 표시목. 겨울 쿵스레덴에 상징과 같은 것이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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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며 불안했던 스키

트레킹 하는 내내 수도 없이 넘어지고 뒹굴고 눈속에 파묻혀 스키를 버리고 싶었던 순간은 사실 일상과도 같았다. 평이한 길, 언덕, 내리막이 있었으며 습기를 머금은 눈은 스키 플레이트에 계속 묻고 묻어 발목이 꺾이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났다. 더욱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은 스키를 타며 가기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체감상 30kg에 가까웠던 배낭에 폭이 좁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기란 거의 고행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스키를 벗고 걸을라치면 무릎 이상으로 빠지는 탓에 벗을 수도 안 벗을 수도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깊이 눈속에 파묻혀 나오려면 배낭을 벗고 나와야 하는데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을 짚고 일어섰다가 어깨까지 푹푹 빠져버려 기어 나오는 상황에 헛웃음만 나왔다. 막판엔 거의 체념했다.

한국에서 스키를 준비할 때 구할 수만 있다면 '텔레마크 스키'를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텔레마크 스키란 뒤쪽 바인딩이 부츠와 탈부착 되어 언덕을 오를 때 탈착시켜 걷기에 용이하고 다운힐에서는 부착시켜 알파인 스키처럼 내려 갈 수 있는 전전후 스키다. 그러나 이것을 구매하기란 가격이 상당했고 대여도 할수 없어 끝내 가지고 올 수 없었다.

트레커들을 만나며 지켜본 결과 2/3는 텔레마크 스키나 바인딩을 개조해 폭이 넓은 산악스키나 알바인 스키를 타고 다녔으며,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전 일정을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했기에 소량의 짐만 가지고 다녔다. '무모하면 용감하다'라고 했던가 나는 무모한 도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비스코야우레

시간당 2km쯤 걸었을까 5시가 될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구간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구간이었다. 꽁꽁 얼어있어 괜찮다고 센터 직원에게 들었지만 여기저기 들려오는 우르르 쾅쾅대는 소리에 혹시나 얼음이 깨지지 않을까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또한 광활한 지역에 특징은 목적지가 눈에 보이지만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숙소에 도착하자 직원은 웰컴 티라며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고 텐트 자리를 안내해 줬다. 가격은 100sek 한국 돈으로 13,000원쯤이다. 숙소에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료품도 있고 결제는 카드로도 가능하다. 이런 외지에 카드 사용이 가능한 게 신기할 따름이다. 태양열로 사용하는 카드 기계는 숙소마다 있으니 현금이 떨어지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비상시를 대비해 현금은 가지고 있는 게 속 편하다.

아비스코야우레 산장.
▲ 나무창고 아비스코야우레 산장.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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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6년 3월 11일부터 3월 20일까지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스웨덴, #쿵스레덴, #겨울트레킹, #크로스컨트리, #북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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