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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없는 틈을 타서 위협을 주고자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현장의 모습.
 주민들이 없는 틈을 타서 위협을 주고자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현장의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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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용역의 폭력 사태 소식에 경찰과 주민들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철거 용역의 폭력 사태 소식에 경찰과 주민들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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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2시, 한 통의 제보 전화가 왔다. 한 마을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개구리를 잡던 친구 어머니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칠순이 가까운 연세의 어머니가 재개발 조합 소속 철거아르바이트 청년들의 폭력에 당했다고 했다.

현장을 가보니 어머니가 50년 가까이 살던 집 1층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었다. 의자를 내던진 듯한 흔적과 집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 동네 주민들이 겪고 있는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다행히 친구 어머니는 큰 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놀란 가슴을 겨우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함께 싸우고 있는 할머니, 아버지들도 겁에 질린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번듯하게 보이는 주택들을 없애고 재개발 아파트 단지를 세우는 저의는 무엇일까.
 번듯하게 보이는 주택들을 없애고 재개발 아파트 단지를 세우는 저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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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져 있는 주민들의 구호가 너무 절박해 보인다. 80~90년대에나 있을 법한 재개발 투쟁 들이 나의 일로, 우리의 사건으로 닥쳐 올리 누가 알 수 있을까.
 땅에 떨어져 있는 주민들의 구호가 너무 절박해 보인다. 80~90년대에나 있을 법한 재개발 투쟁 들이 나의 일로, 우리의 사건으로 닥쳐 올리 누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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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은 이랬다. 친구 어머니가 살던 동네인 인천 부평구 부개동은 1990년대 당시 다른 곳보다는 그래도 유복한 중산층 마을이었다. 이곳은 2층 빌라 주택 형식으로 대부분이 40년 이상을 한 동네 이웃주민으로 정을 이어왔다. 기자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 따라 어머님을 뵙고 맛있는 밥을 얻어 먹던 추억이 서린 동네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감 넘치고 따듯했던 동네가 재개발 소문으로 사달이 났다. 특이한 점은 바로 길 건너 동네만 해도 재개발 지정이 해제되어 마을길도 새로 정비하고 마을 공동 주차장도 새로 생겼다는 것. 그래서 더욱 어머니 동네 주민들도 천년만년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그러나 바로 길 건너 마을 형편과는 달리, 어머니가 살던 마을은 개발을 원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갈라져 민심이 흉흉했다. 그러다 작년 재개발 조합의 관리처분 승인이 나면서 시공사가 결정되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감정가 등 보상 문제 등의 이견이 남은 몇몇 주민들은 1년여간 마을에 남아 구청의 적극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길가에 상점들은 아직도 이곳을 못 떠나고 손님을 반기고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그럼에도 바로 뒷집에서는 철거 용역들에 의해 집기들이 부숴지고 있다. 이것이 2017년의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길가에 상점들은 아직도 이곳을 못 떠나고 손님을 반기고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그럼에도 바로 뒷집에서는 철거 용역들에 의해 집기들이 부숴지고 있다. 이것이 2017년의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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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두 달 후면 철거가 진행되는 마을이라고 생각되는가. 이 꽃집은 아직도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아침이면 손님들의 잔칫상에 올릴 꽃꽃이를 장식하고 있다.
 바로 두 달 후면 철거가 진행되는 마을이라고 생각되는가. 이 꽃집은 아직도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아침이면 손님들의 잔칫상에 올릴 꽃꽃이를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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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공가, 철거 예정, 범죄 현장에서 나올 법한 출입금지 노란 색의 띠 등이 눈에 먼저 띄었다.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상가와 일부 주택에선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손님은 뜸하지만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가게의 조명을 켜 놓았다. 화사하게 수놓은 꽃집의 꽃들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마을을 오가는 귀여운 아가의 눈빛이 애잔해 보였다.

이 동네는 특이하게 낡거나 허름한 주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15년 된 깨끗한 빌라도 보였다. 재개발을 하기에는 너무 번듯한 집도 있어 의아한 감정이 앞섰다. 정주의식을 갖고 오래도록 터를 가꾸어 온 어머니의 하소연이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직접 보셨지만 누가 봐서 여기를 재개발 할 마을로 생각하겠어요. 그저 자식들과 손주들 봐주고 내 마지막 재산, 유산이라도 남겨주려 했는데...이곳 주민들도 지금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었어요. 오고 갈데없는 늙은이들이... 그저 내가 지켜온 정당한 재산가치만 지켜달라는 게 바람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철거 예정 마을에, 외부 손님이 왔다고 기꺼이 마을 동네를 소개시켜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애잔하다.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철거 예정 마을에, 외부 손님이 왔다고 기꺼이 마을 동네를 소개시켜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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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이후에 철거가 시작되는 동네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아이들의 빨래를 널고 아빠의 된장찌개를 끓이며 가족사랑의 온기를 이어가고 있다. 누가 이들의 삶의 터전을 뺴앗으려 하는가.
 6월 이후에 철거가 시작되는 동네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아이들의 빨래를 널고 아빠의 된장찌개를 끓이며 가족사랑의 온기를 이어가고 있다. 누가 이들의 삶의 터전을 뺴앗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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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아버지들은 철거 용역의 행패에 분노해 '분신' 이야기도 꺼내 놓으셨다. 직접 마을을 둘러보니 폭격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재개발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원주민들이 평생 살아온 터전을 돈의 가치로만 따지는 게 맞는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 허물어지고 있는 아파트에도 분명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가스가 끊기고 수도가 끊기고 전기가 끊겨도 사람의 온기는 여전히 그곳에서 풍겨 나왔다. 아이들의 빨래를 널고 퇴근하는 아빠의 저녁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철거 용역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고 나가라고 폭력을 쓰면서 윽박을 지른다. 이것이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8일 오전과 오후, 마을 주민의 오래된 집의 집기를 부순 현장.
 8일 오전과 오후, 마을 주민의 오래된 집의 집기를 부순 현장.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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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마지막으로 주민들에게 내일 대통령 선거인데 '투표 하셨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미 사전투료로 다 완료했다고 답했다. 투쟁은 투쟁이고 선거는 선거라며 할머니가 엷은 주름 미소를 보내 주신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보지 말아야 할 어느 집 대문의 호소문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부디 차기 대통령은 아픈 국민들을 진심으로 보듬고 위로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거 용역들이) 무단 침입하고, 그동안 분실물 등을 (빨래 건조재 등) 고발 조치할 것임.....<주인백>"

아직도 이곳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제발~~~
 아직도 이곳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제발~~~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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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개인우지구 , #재개발, #철거 용역 폭력, #생존권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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