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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중요한 서류봉투를 놓고 왔다"며 점심 때까지 가져다 달라 한다. 남편 회사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 장도 볼 겸 서둘러 서류봉투를 챙겨 마트로 갔다. 이것저것 먹거리를 산 후 남편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어디서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두운 지하 주차장 한 켠에 강아지가 묶여 있었다. 주변에는 개 오줌과 똥이 널려 있었고, 시커멓게 때가 찌든 방석이 놓여있는 개 집 위에는 "강아지 판매 3만 원. 관리실로 문의"라고 쓴 종이가 붙어있었다.

트렁크에서 소시지와 과자 한 봉지를 가져다 손바닥 위에 올리고 내밀었다. 아이는 냉큼냉큼 잘 받아먹으며 간간히 내 손에 얼굴을 비볐다. 포메라니안과 시츄를 섞어놓은 얼굴에 허리는 길고 말랐다. 아직 추운 2월, 옷은 작아 몸의 사분의 일이나 겨우 가려진 데다, 소형견이 대형견의 목줄을 한 탓에 목은 여러 번 칭칭 감겨있고, 털은 때가 찌들고 엉켜있었다.

나를 발견하신 경비 할아버지가 반갑게 말을 거신다. "우쩐 일로 오셨대유?" 남편은 15년 전부터 그 건물에서 작은 사업을 한다. 그분 또한 15년 이상 그곳에서 경비로 일하셨고, 나는 명절 때마다  양말이나 과일 같은 선물을 드렸다. 때문에 나와는 잘 아는 사이다.

경비 할아버지께 드리려고 산 음료수 한 박스를 차에서 꺼내 드리며 왜 강아지가 여기 있는 지 여쭸다. 충청도 사투리를 정겹게 구사하시는 이 분은 이렇게 말했다.

"글씨요... 누가 여기 버리고 갔지 모예유. 아니 키우던 걸 버리고 가면 우쩐 대요. 그래서 관리소장님이랑 청소 아주머니, 내가 밥 주고 똥치우고 돌보고는 있는데, 하루 종일 자동차 매연 맡으며 있는 거 보면 불쌍해유. 딴 데서 키울 데도 없구. 누가 데려가서 키우라고 써 붙여 놓았는데 아무도 안 데려가유."

벌써 1년도 넘었다며 이름은 "복실이"라고 하셨다. 명절 때마다 왔었는데 그때 나는 지상에 차를 주차해서 못 봤었다.

남편에게 서류봉투를 전해주고 집에 온 후 복실이가 머리에 둥둥 따라다녔다.

우리 집에는 하얀 푸들 미미와 갈색 포메라니안 미나가 같이 살고 있다. 가족이 된 지 8년이 넘었다. 아기 때 우리 집에 와서 이제 같이 갱년기를 겪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가족회의를 하고 복실이를 집에 데려오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미미, 미나의 목욕 및 산책은 모두 남편 몫이었기 때문에 나는 복실이 목욕을 담당하고 둘째아들은 산책을 시키기로 했다. tv에서 강아지 훈련사가 보여주는 "낯선 강아지끼리 친해지기" 프로그램도 숙지했다.

복실이가 집에 왔다. 낯선 집이 무서울까 봐 조심조심 집에 들이는 순간 미미 미나가 짖기 시작했고 복실이도 이빨을 보이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서로의 반응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졌다. 나는 우선 때에 찌든 복실이를 목욕탕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한참을 바닥에 같이 앉아 복실이가 진정하길 기다렸지만 복실은 문밖에서 들리는 미미, 미나의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절부절 했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준비한 간식을 주며, 슬며시 목줄을 빼고 목욕을 시켰다. 털이 어찌나 많이 빠지는지 하수도 구멍이 막혀서 두 번을 뚫어가며 목욕을 간신히 마쳤다. 털을 말리는데 온 욕실이 복실이 털로 가득차서 눈을 뜨기도 힘들고 재채기가 계속 났다. 복실이도 익숙치 않은 목욕에 드라이까지 하느라 몸부림을 쳤다.

우여곡절 끝에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미미, 미나가 다시 짖었다. 안고 있던 복실이가 품에서 뛰어내려 맹수처럼 미미에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미는 복실에게 두 번을 물리고 엉덩이에서 피가 났다. 미나는 오금도 못 펴고, 얼굴을 내 무릎에 파묻고 떨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가족 모두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숙지한 동영상은 무용지물이었다. 둘째아들은 미미를 안고 서서 소독약을 미미 엉덩이에 반복해서 발라주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남편은 쉴 새 없이 영역표시를 하는 복실이의 잔여물들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미나를 안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복실이는 미미 미나를 향해 계속 짖었고 인터폰이 울렸다. 너무 시끄럽다는 민원이 접수됐다고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복실이를 진정시키려 안방으로 안고 들어갔지만 복실은 더 크게 짖으며 내 애를 태웠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너무 답답했다. 조금만 얌전히 있으면 우리 모두가 같이 살  수 있을 텐데.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두 번째 인터폰이 울렸다.

복실에게 엉덩이 물린 미미
▲ 미미 복실에게 엉덩이 물린 미미
ⓒ 문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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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복실이를 다시 제자리로 데려다 놓자고 했다. 나도, 둘째아들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빨아놓은 미나 옷을 꺼내 복실에게 입혔다. 너무 미안해서 만찬이라도 먹여 보내고 싶었지만 흥분한 복실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휴지통에 버렸던 때 묻은 목줄을 다시 하려는 순간 복실이가 앞발로 목줄을 막았다. 불길한 예감이라도 한 듯이.

나는 목이 메어 고개를 돌리고 주섬주섬 간식용 캔을 잠바주머니에 넣었다. 차디 찬 지하주차장에 복실이를 두고 올 생각을 하니 손 쓸 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집 밖으로 나오니 복실이 잠잠해졌다. 내 품에 안겨 큰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본다.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복실이를 쓰다듬기만 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고 밥 그릇에 닭고기 캔을 부었다. 자기 집이라고 편안했는지 잘도 먹는다.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복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내 눈물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상황을 대충 눈치 챈 경비 할아버지는 "아이쿠. 우리 복실이 말끔하니 이뻐졌네유. 한 나절 복실이가 없응께 너무 썰렁하고 허전했슈. 여기서 잘 지내니깐 걱정 마유. 내가 가끔 옥상으로 산책도 시켜유..." 하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값싼 동정심으로 복실이를 더 혼란스럽게 한건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다.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다. 쉽게 데리고 오고, 쉽게 다시 데려다 놓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것인데. 복실에게 그러지 못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 날 이후 남편은 출근길에 복실에게 들러 간식을 주고 놀아준다. 다행히 그 건물에서 일하는 다른 분들도 복실이를 보러 와서 서로 마주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중에 한 분이 본인의 반려견(나이가 많고 병이 들어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이 죽으면 복실이를 데려 간다고 한다.

부디 복실이가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복실아, 미안해.


태그:#유기견, #강아지, #반려견, #사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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