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람의 언덕에서
▲ 빰쁠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길 바람의 언덕에서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항상 아침이 문제다. 발에 전해지는 통증은 마치 처음인 듯 새로웠다. 자는 동안 말랑말랑해진 발이 신발에 적응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운이 좋으면 신발을 신고 오분 만에 괜찮아졌지만, 대개 한 시간쯤 걸어야 제 걸음을 찾았다.

빰쁠로나를 나서는 길
 빰쁠로나를 나서는 길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급할 이유는 없었다. 발이 괜찮아질 때까지 20km 남짓만 걷기로 했다. 밤마다 일정을 뒤엎고 다시 짜던 일을 관두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수수수수수수수수정 내 일정', 내 일정을 담은 문서는 앞에 '수' 자가 여덟 번 정도 붙고 나서야 '내 일정'이라는 간단한 이름을 되찾았다.

"계획대로 되는 게 인생이던가요? 빨리 간다고 빨리 가는 길도 아닌걸요."

'너 왜 아직 여기 있어? 너무 빨리 가서 못 볼 줄 알았더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너스레를 떠는 내 얼굴에는 웃음이 흘렀다. 많이 컸다, 짜식.

잘 걷기 위해선 얼마나 잘 쉬느냐가 관건이다.
▲ 성당 앞에서 쉬는 순례자 잘 걷기 위해선 얼마나 잘 쉬느냐가 관건이다.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피곤한 순례자는 잠시 성당에 들러 쉬었다 간다.
▲ 사리끼에기 마을의 성당 안 피곤한 순례자는 잠시 성당에 들러 쉬었다 간다.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걸을수록 삶은 단순해진다

걸을수록 하루는 점점 단순해졌다. 지도를 펼쳐 높은 언덕이 있는지, 마을 간격이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살피고,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 어디서 쉴지를 정한다. 걷는다. 씻는다. 먹는다. 쉰다. 삶이 단순해지니 걱정이 줄었다. 다만 모든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근데 우리 이래도 되나? 주위에 친구들은 다 취직했는데, 나는 뭐해 먹고 살지?"
"에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불쑥 찾아오곤 했다. 내 옆을 걷던 선주도 한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휙휙 저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빼르돈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리 속도 모르고 끝이 없었다.

빼르돈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
 빼르돈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산티아고로 가는 길 다운 길이 점점 시작된다.
▲ 밀밭의 시작 산티아고로 가는 길 다운 길이 점점 시작된다.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너는 못을 제대로 박은 거야(You've nailed it)."

빼르돈 언덕을 오르며 숨이 턱턱 차던 중에 존 아저씨를 만났다. 영국에서 온 그는 은퇴 후에 매년 아내에게 '허가'를 받고 한 달쯤 홀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못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을 때, 망치를 가지고 쾅 하고 눌러버리면? 못이 쏙 들어가서 딱 맞춰지지, 영국에선 누군가가 옳은 일을 했을 때 이 표현을 써."

'여행하고 있지만 불안하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내 푸념을 듣던 존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진작에 일하고 있어서 네가 불안할지도 모르지, 내가 장담하는 데 시간이 흐른 뒤에, 네 친구들은 네 나이 때에, 지금 네가 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 분명! 내가 그 산증인이야, 넌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넌 지금의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자, 네 앞에 펼쳐진 걸 봐봐."

언덕을 오를수록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좋았다. 바람도 적당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새삼 놀라울 때가 있다
▲ 길을 오르다 뒤를 내려다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새삼 놀라울 때가 있다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바람의 언덕이라 불릴 만큼 바람이 강하다, 능선을 따라 풍력 발전기가 있다.
▲ 빼르돈 언덕 바람의 언덕이라 불릴 만큼 바람이 강하다, 능선을 따라 풍력 발전기가 있다.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정말 그럴까요? 누구는 내 나이 때 여행하라고 하고, 누구는 내 나이 때 좋은 직장 잡으라고 하고…"

존 아저씨는 방긋 웃어 보이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언덕 정상을 바로 앞두고 작은 쉼터가 나왔다. 벽에서 손가락만 한 PVC 파이프를 타고 물이 쫄쫄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거의 다 벗겨지고 덩치가 조금 있는 중년 아저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앞에 멈춰섰다. 손을 모아 물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시더니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야."

물 한 모금에 가장 기쁠 수 있는 날을 걷고 있었다. 볕이 따가웠다. 점점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오래된 건물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도 그렇다면 좋았을 걸 아쉬움이 스친다.
▲ 저 건물은 몇 년이나 됐을까?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오래된 건물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도 그렇다면 좋았을 걸 아쉬움이 스친다.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언어, 인종, 나이를 넘어 '물집'으로 하나 되는 곳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을 때, 종탑이 멀리서부터 우릴 반겼다. 뾰족하게 우뚝 서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였다. 아마 중세의 순례자에게는 등대와 같은 존재였으리라.

멀리 보이는 푸엔테 라 레이나의 종탑
 멀리 보이는 푸엔테 라 레이나의 종탑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양말을 벗으니, 양발에 물집이 다섯 개였다. 물집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바늘과 실을 가지고 식당으로 갔다. 바늘에 실을 연결해 물집을 관통시킨 뒤 실을 그대로 두면, 물집에 있던 물이 실을 따라 빠진다. 물집이 있던 자리는 굳은살로 변한다. 내가 써본 방법 중 최고다.

"Blisters?!"

선주가 바늘에 실을 꿰고 있으니까 누군가 다가와 '물집?'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하자, "여기 물집 수술 중이야!"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까미노에서 처음 배운 영어 단어가 'Blister(물집)'였을 정도로, 물집은 순례자에게 최대 관심사다. 다들 신기한 듯 우릴 쳐다봤지만 하나같이 '으악'하는 표정이었다. 서양인들은 대부분 물집이 생기면 '세컨드 스킨(Second Skin)'이라고 부르는 재생밴드를 붙이고 만다.

멕시코에서 온 청년, 영국에서 온 존 아저씨, 미국에서 온 피부 검은 남자 선교사, 일본어 전공인 스웨덴 여자 교수 등 다양했다. 선주가 바늘을 내 물집에 밀어 넣었을 때, 다들 함께 몸을 비비 꼬았다. 누구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묻다가도, 물이 빠지는 걸 보고 '와우'하며 놀란다. 다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집을 주제로 이야기꽃이 폈다. 물집을 두고 하나가 된 셈이다.

까미노에서 '물집 없이 걷는다'는 건 큰 자랑거리다. 고통 없이 걷는다는 말이다. 행운이다. 그렇다고 물집이 잡힌 사람을 놀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낼 뿐이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으면 재밌는 일이 생겼다. 언어 때문이었다. 존 아저씨가 영어로 말하면, 나는 선주에게 한국말로 통역을 해줬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스페인 사람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멕시코 사람한테 스페인어로 통역을 해줬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선주는 일본어가 전공인 스웨덴 여자 교수와 일본어로 말했다. 중간에 막히면 선주 말을 내가 영어로 바꿔주고, 내가 막히면 선주가 내 말을 일본어로 바꿔줬다. 멕시코 사람이 말을 하면 스페인 사람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통역해줬다.

온전한 통역이 이뤄질 리가 없었다. 말이 섞이다 보면 모두가 다른 내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됐다. 문제가 되진 않았다. 'blisters(물집)', 'needle and a piece of cotton(바늘과 실), 'gone(끝)' 정도면 모두가 핵심을 다 알아듣고 깔깔댔다.

모두가 함께 깔깔대고 있으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마음속 경계가 온전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여행하면서 겪었던 인종차별, 동양인으로서 느꼈던 위축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처음이었다.

모두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건 서로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 다양한 사람들 모두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건 서로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 박현광

관련사진보기


"가장 좋은 점이 뭔지 알아? 이 길 위에선, 모두가 똑같다는 거야. 언어도, 인종도, 나이도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은 순례자가 되는 거야. 이렇게 순수한 관계를 맺어본 적이 있니?"

해 질 녘 종탑 근처를 배회하는 칼새를 관찰하던 존 아저씨가 말했다. 순수한 관계라, 군대에서 훈련병일 때? 피식 웃음이 났다. 훈련소에서 훈련병이란 이름 아래에서 모두가 동등했듯이, 까미노에서 순례자란 이름 아래에서 모두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어색했던 순례자(Pilgrim)라는 단어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2017년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걸어서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태그:#산티아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