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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설마 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풀려났다. 검찰 발표만 봐도 증거가 차고 넘치는 듯 했는데도, 재판부는 범죄 성립 여부를 둘러싸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단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의 우려가 이런 식으로 나타날 거라고는 일주일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법률가적 판단으로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MB는 구속됐어야죠. 블랙리스트만 해도 그 정도면 엄청난 범죄죠. 그런데, 지금, 그의 신병을 처리할 수 있어요? 아무리 쓰러져 가는 권력이라고 해도, 그 권력을 둘러싸고 있는, 그 권력을 여전히 지지하고 지탱하는 특정 정치 세력들이 있어요. 현재 상황에서도 예측 불가능한 점이 있다는 것이죠. 상식적 판단을 넘어서는 상황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역사는 때로 상식적 판단을 넘어서곤 했다.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린 전 대통령을 사전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이 구속시킨 것은 상식적이었다. 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범죄를 부정하는 자서전을 당당하게 내놓는 '비상식'과 마주하기에 18년이란 시간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너무나 짧다.

그런데 벌써부터 적폐 청산의 피로도를 따지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적폐 청산을 감정풀이 또는 정치 보복으로 사실상 규정하고 "대한민국을 발전시켜 나가고 번영시켜 나가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공항 성명'과 그 맥락이 통하는 분석과 진단이 포함된 경우도 꽤 많다. 출범한 지 200일도 안 된 문재인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프레임이다.

화장실 가는 시간 아껴가며 옮겨 쓰다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 지난 17일 등 두 차례에 걸쳐 이 의원을 만났다. 방대한 양의 적폐들을 일일이 옮겨 적었던 그다. 국가기록원에서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이 품고 있던 비밀을 세상에 풀어놓았다. (관련기사 : 이재정이 물도 안 마시고 화장실도 안 간 이유)

덕분에 국정감사 기간 동안 숱한 적폐들이 '단독'이란 이름으로 쏟아져 나왔다.

- 아직 공개 안 한 기록이 있습니까?
"있어요. 중요한 내용들은 거의 다 공개한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조사가 더 필요한 기록들이 몇 개 있어요."

이것말고도 더 많다고 했다. 이른바 '캐비닛 문건'의 양이 굉장히 방대해 아직 국가기록원에는 "시간이 부족해 미처 보고 오지 못한 문서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 단체장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에 대한 사찰 같은 경우는 1/100 수준만 적어온 것"이라고 했다. 또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다르니" 미처 이 의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경우도 꽤 많았다고 했다. '눈'으로만 적어 온 기록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여론 유포를 장관들에게 맡겨요. 대통령 해외 순방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장관들에게 할당하고, 다음 회의에서 어디 출연 계획을 잡아 청와대에 보고하도록 했어요. 일정표가 딱 나와 있어요. 예를 들어 무슨 장관 몇 월 며칠 무슨 라디오, 무슨 장관 어디 인터뷰 이런 식으로 쫙 도표로. 대통령 업적을 홍보하기 위한 장관 스케줄을 청와대에서 관리했던 거죠. 그리고 70점, 80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겨요."

이 의원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고유 업무에 얼마나 열중하고 어떤 정책적 성과를 냈는지가 아니라 대통령 치적 홍보를 어떻게 했는지를 두고 장관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더구나 "노골적인 방식으로, 회의록에 남길 정도로 그렇게". 어느 정도 짐작을 했지만 그 내용이 너무 노골적이라 충격을 받은 내용은 또 있었다.

"국가정보원에서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한 문서 중에는 동향 보고나 정보 보고와 같은 것만 있지 않았어요. 단순히 어떤 제안이 아니라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듯한 일종의 기획안, 이미 소통된 기획이라고 봐야죠. 그런 기획안을 청와대 뭐 어디에서 했다고 하면 그 내용을 떠나 조직 체계상 이해할 만 하다 싶겠어요. 그런데 그게 국정원에서 올라온다는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이재정이 던진 두 가지 질문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 실제 기록으로 확인하면서 많이 놀라셨던 거 같습니다.
"예, 그럼요. 국정 교과서 같은 경우는 거의 1년, 아니 1년 반 넘도록 장기 프로젝트였던 거 같아요. 그 기간 동안 주 3회 열리는 '실수비(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회의 할 때마다 점검했더라고요. 그 수석 비서관 회의란 게 거의 장관 이상의 파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모든 국정 상황들을 점검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예를 들어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해서는 '종북단체 정대협의 실상을 알려라' 이런 논의를 하고 계신 거예요. 대통령에 대해 어떤 글이 인터넷에 돌고 있는지, 심지어, 시쳇말로 찌라시가 홍대에 유포되고 있다, 이런 얘기까지...

주로 한국당 의원님들이 이런 얘기를 하세요.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했다면 지정 기록물이 됐을 거라고. 하지만 저는 확신해요. 만약 그랬다면 모두 폐기됐을 기록물이다(웃음).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는 기록들이다. 왜냐하면 굉장히 노골적으로 많은 내용들을 적어놨어요. 노출하면 안 되는 범죄 증거들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기록관에 이관했을까요? 당분간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향후에 공개되는 방식으로 보존했을까요? 폐기됐을 기록물을 건진 것이죠."

- 이명박 정권 당시 적폐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드러내기 어려운 것 같은데요.
"4대강 사업이나 자원 외교 같은 경우 꼭 어떤 직접적 증거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봐요. 자원외교의 경우 투자해서 실패했다면, 또는 진짜 사기를 당했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과정, 이런 것만 살펴보더라도 청와대 캐비닛 문건 이상의, 다른 방식으로 증거가 드러날 수 있다는 거죠. 실제 법정에서도 명백하게 손에 잡히는 물적 증거 뿐 아니라, 정황 등 여러 가지가 증거로 활용되잖아요. 블랙리스트 같은 경우는 이 정도면 충분히 입증된 것이고요.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구속감이죠."

그리고 이 의원은 이렇게 되물었다. "공항 성명까지 하는 그런 태도에서 이 전 대통령의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느냐"고. "촛불 시민과 역사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부 야당 의원들, 탄핵에 동참했던 MB 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의원들이 대거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도 잇따랐다. 이 의원이 든 생각은 이러했다.

"지금 드러난 것만으로도... 수사를 해야 할 의무만 남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스스로 발을 저리게 만들 수 있구나. 아직 다 안 드러난 것 같지만,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는 그들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찔리는 거죠. 아니, 단순히 찔리는 정도가 아니라 급해졌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MB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런 위기감이 MB를 둘러싼 정치 세력들의 급작스러운 복당으로 이어졌고, 공항 성명을 통해 나온 그 MB의 일성들이 더 격앙된 것 아닌가."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관진 전 장관의 석방이 보여주듯, 이 의원 표현대로 "법률가로서의 상식이 먹히지 않는 지금"이다. 그런 지금이니 '적폐 청산 피로도'란 말은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따르면 "상대편의 언어"일 수 있다. 이 의원 역시 "적폐 청산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있을 것 같다. 고민"이라고 했다. 그 고민의 끝을 그는 일단 이렇게 유쾌하게 정리했다.

- 의원님은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소속 위원입니다. 박범계 위원장이 "끝까지 간다"는 각오를 밝힌 적이 있는데요.
"지난 번 상임위에서 장제원 의원이 '여당이면 태도를 바꿔야지', 농담처럼 던지셨어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야당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적폐 청산 끝나고 그러면 내년에는 여당 하겠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도 마무리 안 되면, 지금 이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내 입을 닫을 수 있는 방법은 날 위원장 시켜주는 거라고, 그랬어요(웃음). 다만 국민 여러분께서 피로감을 느끼니까 하지 말라고 하시면 안 할게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말할 국민은 아무도 없지 않겠어요?"

- 혹시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해서 현재 따로 준비하고 있는 건 없는지?
"제가 뭐...(웃음) 이미 어느 정도 증적(증거가 될 만한 흔적이나 자취), 혐의가 드러난 이상, 수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의무만 남은 거지, 그걸 풀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그래서 검찰의 행보는 계속 돼야 하고요. 저도 향후 수사 추이를 계속 지켜 볼 것이구요. 그런데 만약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정치적 타협으로... 그렇게 된다면 정말, 저도 용납이 안 될 거고, 국민도 용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 유쾌한 재정씨, 두 번째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태그:#이재정, #김관진, #국가기록원, #캐비닛 문건,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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