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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족대로 잡은 물고기를 확인하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족대로 잡은 물고기를 확인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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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커졌다. 환호성이 터졌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갈색 족대가 흔들흔들 춤을 췄다. 주르륵 쏟아지던 물이 빠지기도 전에 모래밭에 안착했다. 얼룩덜룩 노란 빛의 검은 줄무늬가 보였다. 금강에서 자취를 감춘 '미호종개'였다.

민물고기에 푹 빠진 학생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한 책 속에 빠졌다. 책에 나오는 '각시붕어'와 '돌고기'가 마음을 빼앗았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꿈속에서도 웃게 했다. 그날부터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물가를 찾는다. 물고기를 채집하고 사진을 찍어 자료를 모은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탑은 훗날 무분별한 자연 훼손을 막을 것이다.

24일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과 만나기로 했다. 아침부터 눈발이 날렸다. 미끄러운 눈길이 차량의 발목을 잡았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 지나서 그가 왔다. 두꺼운 안경을 쓴 마른 체격에 180cm는 되어 보였다. 그와 동행하여 물고기 조사를 하기로 했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충남 공주시 정안천과 유구천의 지천이 목적지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본류에서 2km가량 떨어진 (공주시 신관동) 작은 보 주변이다.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주춤하던 눈발이 세차게 몰아쳤다.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 장화로 갈아입었다. 족대를 챙기고 물고기를 담을 통은 목에 걸었다.

폭설이다. 쏟아지는 눈발을 뚫고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걸어 물속에 들어갔다. 작은 어도는 제구실을 못 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높낮이는 컸다. 강물은 차가웠다. 비닐처럼 얇은 장화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기가 몰려왔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푹푹 빠졌다. 모래 위에 펄층으로 느껴졌다.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부유물이 떠오르면서 시큼한 악취가 풍겼다.

발에 밟히는 감촉은 물컹했다. 물가 수초에 족대를 대고 수풀을 헤집었다. 손바닥만 한 잉어가 올라왔다. 큼직한 돌무덤도 뒤졌다. 허탕이었다. 족대를 받치고 발목 깊이부터 허리까지 잠기는 곳을 첨벙거렸다. 작은 수초 더미 속에서는 10여 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올라왔다. 말없이 첨벙거리던 성무성 학생이 말했다. 

"수온이 떨어지면 물고기들이 한곳에 모여서 동면에 들어가죠."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족대로 잡은 물고기를 확인하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족대로 잡은 물고기를 확인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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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 9마리, 붕어 1마리, 떡붕어 1마리, 납자루 1마리, 줄몰개 2마리, 참붕어 1마리, 누치 14마리, 돌마자 5마리, 피라미 4마리, 대농갱이 2마리, 민물검정망둑 4마리, 밀어 5마리, 베스 1마리, 블루길 4마리, 대륙송사리 1마리, 얼룩동사리 1마리 등 2시간가량 잡은 물고기는 56마리 정도다.  

블루길 치어들은 많았다. 족대를 대는 곳곳에서 손톱만 한 치어가 올라왔다. 인기척을 느끼고 혼비백산하는 베스도 보였다. 잡히는 종들로 보아 큰 강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생태계 변화를 겪으면서 지천으로 밀려난 듯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공주보 하류 1.5km지점 유구천 합수부로 이동했다. 4대강 사업으로 최근까지 2m 정도의 깊은 수심이 유지되던 곳이다. 지난 10일 하류에 위치한 백제보의 수문개방으로 1m가량 수위가 낮아졌다. 제방 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석축에 찍힌 물 자국이 선명하다. 본류와 만나는 지점은 온통 펄밭이다. 몇 발짝 들어간 곳은 모래가 쌓여 있었다. 작은 웅덩이도 만들어졌다.

금강 본류에서 1.5km 떨어진 충남 공주시 유구천의 물은 유리알처럼 맑았다. 모래가 물살에 씻기면서 그림을 그려 놓은듯하다.
 금강 본류에서 1.5km 떨어진 충남 공주시 유구천의 물은 유리알처럼 맑았다. 모래가 물살에 씻기면서 그림을 그려 놓은듯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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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맑았다. 유리알처럼 바닥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래도 보였다. 상류로 거슬러 오른 상황은 달랐다. 녹조 사체가 바닥을 덮고 있다. 좀처럼 물고기가 걸려들지 않았다. 이따금 베스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만 포착됐다. 거대한 콘크리트가 물 밖으로 드러났다. 고슴도치처럼 철근이 삐쭉삐쭉 박혀 있다.

4대강 사업 당시 철거되었던 유구천 합수부의 보의 구조물은 철거가 되지 않았다.
 4대강 사업 당시 철거되었던 유구천 합수부의 보의 구조물은 철거가 되지 않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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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전 본류와 유구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던 콘크리트 보의 구조물이었다. 당시 4대강 본류 준설이 진행되면서 구조물이 깨지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4대강 탓이라는 논란에도 정부는 무관하다고 했다. 급하게 철거가 이루어졌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공사는 부실을 낳고 물속에 잠겨 있었다.

누군가 쳐놓은 불법 어구도 발견되었다. 방치된 것인지 침전물이 덕지덕지한 그물을 끌어 올렸다. 거북이 무덤이었다. 죽은 거북이도 보였다. 질긴 그물 속엔 속살이 빠진 거북이 등딱지만 남아 있었다. 다행히 보호종인 '자라'나 '남생이'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물살이 빠른 콘크리트 보 구조물 아래에서 몇 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

참중고기 1마리, 모래무지 8마리, 누치 1마리, 피라미 30마리, 줄몰개 1마리, 민물검정망둑 1마리, 밀어 2마리, 얼룩동사리 1마리 등 총 45마리 정도다. 허탈했다.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상류로 더 올라 갔다. 1.5km 지점 공사용 임시교량이 있는 곳이다. 모래톱도 보였다. 물의 깊이가 달랐다. 모래밭을 지나 발목이 찰랑찰랑 잠기는 구간부터 깊은 곳은 허벅지 정도였다. 물살은 빨랐다. 깨끗한 모래밭에 족대를 넣고 뒷걸음질 쳤다. 내용물을 확인하던 학생의 눈이 커졌다. 뛰면서 소리쳤다.

"미호종개예요, 미호종개"  

금강 본류에서 1.5km 떨어진 유구천에서 잡힌 미호종개는 천연기념물 제454호다.
 금강 본류에서 1.5km 떨어진 유구천에서 잡힌 미호종개는 천연기념물 제454호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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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손에 올려놓은 3.5cm 크기 '미호종개' 치어였다. 연한 황갈색이다. 몸속 뼈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반원형 무늬도 보였다. 꼬리지느러미에 검은색 점도 확인했다. 미호종개는 천연기념물 제454호다. 1984년 미호천 본류인 청주시 팔결교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미호천의 '미호' 이름을 따 미호종개라 부른다.

금강 본류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서 환경부 지정 포획 금지 보호종인 어린 ‘자라’도 잡혔다.
 금강 본류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서 환경부 지정 포획 금지 보호종인 어린 ‘자라’도 잡혔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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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지정 포획 금지 보호종인 어린 '자라'도 잡혔다. 수문이 눕혀진 우성면 옥성양수장까지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물고기가 올라왔다. 하얀 백로와 왜가리가 보였다. 낮은 여울과 맑은 물, 고운 모래가 깔린 덕분에 여울성 어종은 풍부했다. 작은 통에 물고기로 가득 찼다.

잡은 물고기는 사진을 찍기 위해 족대에 넣어 모았다.
 잡은 물고기는 사진을 찍기 위해 족대에 넣어 모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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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1마리, 납자루 10마리, 납지리 1마리, 참붕어 1마리, 돌고기 2마리, 줄몰개 2마리, 참마자 43마리, 모래무지 15마리, 쉬리 1마리, 돌마자 100이상, 피라미 50이상, 미호종개 1마리, 점줄종개 5마리, 동자개 2마리, 대농갱이 1마리, 베스 3마리, 민물검정망둑 4마리, 밀어 7마리, 얼룩동사리 2마리 등 250마리 이상이 채집되었다.

인간의 간섭이 적은 공간에는 많은 물고기가 서식했다. 뿌듯했다. 잡은 물고기는 작은 이동용 수조에 넣어서 사진을 찍고 방류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힘든 일정도 피곤하지 않았다. 물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성무성 학생에게 물고기 추천을 부탁했다.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잡은 물고기를 작은 수조에 넣어 사진을 찍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잡은 물고기를 작은 수조에 넣어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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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블루길 베스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들 때문에 천대받고 욕을 먹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쉬리'라는 물고기를 추천하고 싶다. 쉬리는 여울의 지표종이다. 쉬리를 볼 때마다 너무 아름다워서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쉬리를 찾은 사람은 일본인이다. 1935년 모리 다메죠(Mori Tamezo 森爲三)라는 어류학자가 발견했다. 오죽 예뻤으면 '아름다운 조선의 황어'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서식한다."

그의 물고기 사랑은 특별했다. 중학교 2학년 그가 사는 경기도 이천 이포대교 부근에서 꾸구리와 돌상어를 채집했다. 그런데 6개월 후 4대강 준설 소식을 접했다. 중학생이었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혹시나 벌어질지 모르는 제2의 4대강 사업을 막고 싶다고 한다. 부끄러운 삶을 살기 싫어서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금강을 찾는다.

"2012년 정안천 합수부에서 흰수마자 160개체를 채집했었다. 그렇게 많았는데 오늘은 보지 못했다. 정안천은 펄과 침전물만 가득 쌓여있었다. 흰수마자는 지류에 살다가 5월경 (본류) 큰 강으로 이동해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이후부터 1cm 치어들이 지류로 이동해 살아간다. 모래가 사라진 금강에서는 더는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를 보기가 힘들다. 앞으로 이들을 보기 위해선 연구기관이나 대학교 표본 수장고에서 봐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학생은 주말마다 물가에 찾는다. 어류 채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고했다.

"대규모 하천 정비를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를 밟는다.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것을 누락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조사한 곳에 개발행위가 진행될 때면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에게 그동안 모은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내일도 물가를 찾는다고 했다. 바지 장화부터 족대와 장비를 담은 봇짐을 챙겼다. 환한 미소로 떠나던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천벌이라는 말은 자연 파괴자를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족대로 강바닥을 훑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3학년 성무성 학생이 족대로 강바닥을 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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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사업, #물고기 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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