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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큰딸, 초등학생인 둘째 딸과 막내아들, 매달 학원비가 만만찮다. 곧 다가오는 방학을 맞이해서 키가 작은 큰딸은 성장클리닉에 보냈으면 좋겠고, 비만에 들어서려 하는 둘째 딸은 비만클리닉에,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 막내는 스키를 배울 수 있는 단기 특강에 보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늘 바람뿐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라지만 그의 월급을 가지고 양가 부모님께 보내드리는 용돈이며, 매달 공과금에 대출비, 학원비를 충당하느라 급급하다. 생활비로는 성장기 아이들의 배를 채우고 교통비며 용돈을 주느라 하루 현금으로 10만 원이 훌쩍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 키우며 체력이 바닥이 난 나는 집에서 가까운 헬스장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갈등했다.

'3개월에 13만 원! 그동안 자녀 키우느라 망가진 몸매! 단돈 13만 원으로 해결하세요!'

3남매 전부 모유수유를 한 탓인지 사실 나는 살이 찌진 않았다. 그러나 기초체력이 너무 고갈되어 있었고,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나면 다시 쓰러져 잠을 자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워서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던 터였다. 3개월에 13만 원... 큰돈도 아니고 체력이 있어야 아이들도 돌볼 수 있으니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현수막 문구에 설득되어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우리 아파트에는 헬스장이 없다).

신선하다. 운동복을 입고 러닝머신을 뛰는 분들이 멋있어 보인다. 헬스기구를 들었다 놨다 하는 분들을 보니 '오~ 나도 저렇게 되는 거야?' 싶어 설렜다.

안내데스크에서 트레이너로 보이는 여성 분이 나와 어떻게 오게 됐는지,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꼼꼼히 물어본다. 평소 근육량이 없는 것 같고 체력이 바닥이라고 대답하니 인바디 체크를 한번 해 보자고 한다.

체크표를 받아보니 내 생각과 동일하게 근육량이 없고 체력이 바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운동은 처음 할 때 잘 해야 한단다. 와서 러닝머신만 주구장창 뛰고 가시는 분들 중 무릎이 나간 분들도 계시단다(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 팔과 다리에 살이 많이 쪘으니 그곳을 집중적으로 운동하자고 했다. 맞다. 내 팔뚝과 다리가 찌긴 쪘다.

머릿속으로 '저 헬스기구들을 잘 배워서 필요한 부위의 살을 빼고 러닝머신을 통해 유산소운동을 좀 해야지'라고 나름 계획해 본다. 여성 트레이너분은 자신이 예전에 살쪘던 모습을 핸드폰 사진으로 보여주고 현재의 사진을 또 보여준다. 정말 감탄사가 나온다. 부럽기도 하면서.

헬스장 러닝머신(트레드밀)
 헬스장 러닝머신(트레드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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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려면 운동을 제대로 배워서 해야한단다. 먼저 러닝머신에서 워밍업으로 15분 걷고 내려오면 기구를 가르쳐 주신다고 해서 생애 처음 러닝머신 위에서 기분 좋게 워밍업을 했다. 내려왔더니 기구 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내가 서툴게 하니 몇 번 가르쳐 주다가 다시 상담하자며 자리로 데리고 간다.

기구만 가지고는 안 되고, 1:1로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하는 게 나에게 맞다고 설득한다. 아기 낳고 키우느라 어깨도 많이 굽었고, 몸이 많이 망가졌다면서. 그때야 비로소 가격표가 보였다. 개인 PT(personal training) 10회에 70만 원. 그것도 세일 가격! 이제 본격적인 설득이 들어온다. 한 달에 생활비 좀 덜 쓰면 나에게 한번쯤 투자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 다시 현실 앞에서 정신 차린다.

"그건 남편과 상의 좀 해 볼게요."
"그럼, 계약서라도 먼저 쓰고 가시겠어요? 안 하실 거면 내일 폐기해도 돼요."

계약서? 그 말에 바짝 정신이 차려진다.

"아니에요. 해도 내일 쓸게요."

거절하고 마무리 운동을 하는 내내 찝찝하다. 결국 나를 위한 투자라고 눈 딱감고 3개월에 13만 원에 라커비, 운동복까지 16만 원을 현금으로 떡하니 결제를 했다. 그런데도 생애 처음이자, 육아의 끝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인데, 장삿속으로만 이용하려는 사업주가 미워진다.

70만원짜리 PT는 당연히 거절할 건데, 헬스 기구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러닝머신만 주구장창 하고 와야 하나? 소심한 편은 아닌데도 소심한 생각이 자꾸 든다. 그동안 자녀 키우느라 망가진 몸매, 바닥난 체력은 단돈 13만 원으로 해결함을 받을 수 없다는 역설적인 태도에 배신감을 느낀다.


태그:#헬스장, #PT, #헬스장PT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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