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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오전 공판을 끝마친후 법원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7.2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오전 공판을 끝마친후 법원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7.2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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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결심공판이 진행 중이던 27일 오전 10시 56분께. 세 명의 변호인 사이에 앉아있던 피해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공개법정에서 처음으로 진술을 시작하자 법정 안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바로 직전까지는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이 추가 증거 제출을 두고 다소 어수선하게 신경전을 주고받았었다.

검은색 재킷 차림의 피해자는 "발언 기회를 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린다"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조병구 재판장(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이 "힘들면 앉아서 진술해도 됩니다"라고 말을 건넸지만 ,그는 서서 진술을 이어갔다. 가장 먼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3월 6일 이후, 지난 5개월 동안에 대해 "통조림 속의 음식처럼 늘 갇혀 죽어있는 기분이었다"라고 표현했다.

"매일 매일이 피해를 당하는 날 같았다"

이날 그는 검찰 수사와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로서 겪은 어려움을 털어놨다. 피해자는 "8개월간 범죄를 당했던 악몽 같은 시간들, 도려내고 싶은 피해의 기억들을 떠올려야 했고, 반복되는 진술을 위해 계속해서 그 기억을 유지해야 했습니다"라면서 "매일 매일이 피해를 당하는 날 같았습니다"라고 밝혔다. 또 피고인 측 주장이 편향되게 언론에 보도된 일 등을 언급하며 "유무형으로 몰아쳐 오는 피고인의 힘 앞에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특히나 비공개 법정에서 16시간 동안 진행된 피해자 신문 과정은 '미투'(성폭력 피해 고발) 이후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날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자신을 신문한 방식을 떠올리며 "그들이 마치 5명의 안희정처럼 느껴졌다"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정조'라는 말이 언급됐다고 이야기할 땐 심하게 흐느꼈다. 그는 "제가 긴 시간 진술한 증언들까지 모두 한순간에 수치스럽게 만들어 정말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고만 싶었습니다"라면서 "그게 어떤 심정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라고 털어놨다.

'애정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피고인 측 주장도 반박했다. 피해자는 "(피고인 측은) 사건을 불륜으로 몰아가 사건의 본질을 흩뜨리려 하였습니다"라면서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수행비서는 지사님 옆에서 지사님이 업무 하는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게 하는 역할이라고 인수인계를 받았고,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라면서 "그때는 제게 성실하다고 칭찬했던 주변 동료들이 이제는 법정에서 저의 성실함을 피고인에 대한 사랑인 양, 애정인 양 몰아가는 것에 다시 한번 좌절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30분 넘게 피해자 진술이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에서는 어떠한 말소리도,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곳곳에서 새어 나온 울음소리만 끊이지 않았다. 이날 303호 형사대법정 앞에는 재판 시작 2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방청을 원하는 시민들이 줄을 섰다. 오전 9시를 막 넘겼을 때 80여 방청석이 모두 동났을 정도였다. 오른쪽 방청석에 위치한 취재진 자리에서도 눈가를 매만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피해자와 맞은편에 앉은 안 전 지사는 안경을 벗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가 피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차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7.2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차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7.2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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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왜 네 번이나 당했냐고..."

피해자가 재판의 쟁점인 '위력'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땐 집중도가 한층 높아졌다. 그는 "피고인은 제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었고,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정치인이었다"라면서 "삶의 목표가 오로지 일밖에 없었던 제게 직장에서 뛰쳐나온다는 것은 자멸하는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피해 당시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무서운 눈빛에 제압당하고, 꼼짝달싹 못 하고 얼어붙게 됐습니다"라고 표현했다.

이어서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을 향해 "그때 제가 어떻게든 문을 열어서 막 뛰어나와, 복도에서 뛰면서 다른 방문을 두드려서 '지사님이 저를 성폭력 해요' 외치면서 신고해달라고 소동을 일으켰어야 할까요? 위력이 있는 관계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어떤 피해자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저는 지사가 저에게 하려는 행동을 당하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나 폭력이 올 것 같은 공포의 상황이었습니다"라고도 덧붙였다.

피고인석을 향해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피고인 안희정에게 꼭 말하고 싶습니다"라면서 "당신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나와 다른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사죄하라"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서는 "사람들에 제게 왜 네 번이나 당했냐고 묻습니다"라고 말한 뒤 "제가 피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네 번이나 제게 그랬냐고"라고 했다.

피해자는 끝으로 재판부에 "처음부터 피고인과 저는 상호 동등하거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합의할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였습니다"라면서 "피고인 안희정의 행위는 권력에 의한 폭행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제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습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지금 저를 살게 해주는 유일한 힘입니다"라면서 "공정한 법의 판결을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공판은 피해자 진술과 피해자 변호인의 의견 진술을 들은 뒤 오전 11시 45분께 휴정했다. 검찰 구형과 피고인 측 최후 진술 및 최후 변론은 오후 1시 30분부터 진행 중이다.


태그:#안희정, #결심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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