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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 영전사 대웅전 전경이다. 1층은 사찰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풍기 영전사 대웅전 전경이다. 1층은 사찰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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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 영전사의 '관음보살좌상', 아직도 이런 불상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창원황씨 종택(宗宅) 답사를 가던 인근 영전사에 좋은 불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전사의 본찰은 이미 폐찰 되었고, 영전사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소 먼 거리로 이거해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비구니 스님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불상의 존재를 물었다.
 
다소 경계의 눈빛이었지만 관음보살좌상은 이층 대웅전에 있었다. 전문가가 아니지만 섬세한 조각 기법에 너무 놀라웠고,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십여 년 전 다시 개금을 하는 바람에 색상을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범상치 않은 유물이었다.
 
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면서 불상이 어떤 연유로 영전사에 있는 것인지, 더불어 영전사의 유물이 맞는 것인지 물었다. 스님은 영전사가 이거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파묻혔던 것을 찾아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대웅전에 안치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이다.
 대웅전에 안치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이다.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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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둘러 문화재 전문가를 초청하였다. 주수완 문화재청 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전문위원이 불상 조사를 진행했다. 순치 4년 1647년 제작된 목조 불상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보살좌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기 보살좌상과 차별화 되는 특징을 보였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드러난 인체를 평판적으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이 상은 숄을 걸친 착의법으로 상체가 많이 노출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까지 자주 보이던 방식으로 성리학이 확립되던 조선 중기에는 보기가 힘들다. 즉, 17세기 중반까지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현재 영전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영주영전사석조여래입상을 보호하고 있다. 2001년 입상 문화재 지정 당시, 불좌상도 학술 조사를 진행했었다. 공교롭게도 조사 진행 직후 도난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2002년 감천 파출소의 통보를 받아 회수했다.
 
회수 받은 후 2002년 3월, 개금불사 및 점안식을 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봉안했다. 현재는 복장물이 유실되었고, 불상 발원문은 도난 전 조사당시 사진만 남아있다.
 
영전사 주지 해득스님은 "불상을 다시 되찾은 후에 절 전체에 CCTV를 설치했다, 다행히 더 이상 도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 중이다. 다만, 도난 당시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쓰인다"고 성보유물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선 중기에 보기 힘든 양식으로 제작된 목조불좌상, 이제 더 체계적인 조사와 보호를 위해 문화재로 지정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립니다.


태그:#영전사, #목조불좌상,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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