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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박상희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바다와 하늘 사이의 섬, 영종도다.[기자말]
영종성당 옆 민재네 할머니 댁 종이 위에 수채화(36x25.5cm, 2020). 박상희 작가의 아들 친구 민재의 영종도 할머니 댁. 꽃구름 둘러싸인 집에서 할머니가 버선발로 나와 반길 것만 같다. ⓒ 박상희
 
영종성당 앞, 할머니 집
 
민재네 할머니 댁은 인천 영종도에 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섯 형제도 이 섬에서 나고 자랐다.

"벚꽃 필 때 오지 그랬어."

영종성당 바로 앞에 있는 할머니 집은 사시사철 예쁘다. 봄이면 노랑, 빨강, 하양 꽃망울이 터지고, 여름이면 싱그러운 풀숲이 대지를 덮는다. 겨울 햇살마저 따사롭다. 그래도 할머니는 뭍에서 온 손님들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왔으면 더 좋으련만 싶다.
 
차이분(93) 할머니는 영종도 토박이다. 나이가 아흔이 넘도록 섬을 떠나 산 적이 없다. 할머니 집은 2006년에 지어졌다. 살던 동네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하늘도시'가 들어서면서 이리로 떠밀려 왔다. 떠나야 했지만, 멀리 가고 싶진 않았다. 가족이 다니던 성당 가까이 양지바른 자리에, 허물어가던 집을 사들여 추억을 다시 지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모여 있던 동네였다. 섬사람들은 뱃일을 하거나, 곡식이고 과일을 키우며 농사짓고 살았다.

"시골 부자는 일 부자라고 했어. 부잣집이라고 해서 시집왔는데 일복만 있었지. 그 덕에 먹고사는 형편은 좀 나았어." 열여섯 나이에 맏며느리로 와, 평생을 논밭에서 허리 굽혀 일하고 일꾼들 밥해 먹이며 살았다. 그렇게 아들 셋, 딸 넷 가르치고 잘 키워냈다. "살림살이 불리며 자식들과 오순도순, 지금은 떠난 영감과도 오래도록 살았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야."
 
지금은 대학생이 된 민재의 개구쟁이 어린 시절, 옛 할머니 댁에서 ⓒ 김기학 제공
 
처음엔, 네 개의 섬이었다
 
육지와 다리로 이어진 '섬 아닌 섬'이지만, 영종도는 처음 오롯이 섬이었다. 그것도 영종도(永宗島)와 용유도(龍遊島), 삼목도(三木島), 신불도(薪佛島) 네 개 섬이었다.

둘째 아들 김기옥(63)씨는 고향 땅 발 딛는 곳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다. 학교 가는 길에 논둑을 따라 개구리를 잡으며 놀고, 남의 집 나무에 열린 감을 따다 주인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 배를 얻어 타고 바다낚시를 할 때면 얼마나 가슴 설레던지.

좀 커서 육지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덜컹덜컹 낡은 지프를 타고 마을에서 구읍뱃터까지 가, 작은 목선을 타고 파도를 넘은 끝에야 만석부두에 이를 수 있었다. 해무가 바다를 뒤덮기라도 하는 날엔, 바다 너머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만 봐야 했다. 돌아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영종도 토박이 차이분 할머니와 막내아들 김기학(민재 아버지)씨 ⓒ 임학현
 
섬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1990년 6월 14일 영종도가 공항 부지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자연도(紫燕島)라 불리던 섬, 제비가 날아들던 자줏빛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오르게 된 것이다. 1992년을 한 달 남긴 겨울이었다. 한적하던 마을에 덤프트럭들이 줄지어 나타나 섬과 섬 사이에 흙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종도와 용유도가 한 몸이 되고 그 한가운데 거대한 활주로가 났다. 그리고 2001년 3월, 역사적인 인천국제공항 개항. 대한민국의 새 하늘길이 열렸다. 도시가 솟아나고 사람이 모여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가 놓였다. 그렇게 섬의 운명이 바뀌었다.

"상전벽해예요. 조용하던 마을이 세계로 가는 관문이 됐으니까요." 민재 아버지, 막내아들 김기학(53)씨는 송도국제도시에 산다. 어린 시절 배 타고 두 시간이 넘게 걸리던 길을, 인천대교를 건너 10여 분 만에 오간다.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고향 풍경은 어릴 적 기억에서 멀어져 간다. "그래도 고향만 한 곳이 어디 있나요. 세월 따라 모든 게 변하더라도 마음은 한결같아요. 머물고 싶고, 그리운."
 
고향집에 걸린 십자가. 나이 든 어머니는, 오늘도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 임학현
 
변했든 그대로이든, 누구나 가슴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섬의 유일한 성당이었던 영종성당엔, 120여 년 시간이 깃든 예배당 종소리가 아직 울려 퍼진다. 고향집을 지키는 나이 든 어머니는 그 안에서 오늘도 기도한다. 자식들 건강하고, 내일 더 행복하기를.
 
차덕분 창가에서 종이 위에 수채화, 펜(31x20.5cm, 2021). 차 한잔으로 다가오는 봄을 음미하는 시간. 창밖으로 100년 만에 제 이름을 찾은 섬 ‘물치도’가 보인다. ⓒ 박상희
 
찻잔에 담긴 쉼, 그리고 봄
 
2000년 11월 영종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구읍뱃터는 유일하게 섬사람들의 삶을 육지와 하나로 잇는 길이었다. 다리가 들어선 후에도 뱃길은 끊기지 않았다. 지금도 월미도 선착장에서 구읍뱃터까지 갈매기의 마중과 배웅을 받으며 배가 오간다.
 
영종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던 구읍뱃터 ⓒ 임학현
 
뱃길로 10분. 오래된 나루터가 있는 한적한 바닷가에, 몇 년 사이 바다를 전망하는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안성근(40), 여지선(36) 부부는 1년 전 뱃터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찻집 '차덕분'을 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이 섬으로 왔다. 10년이 넘도록 부평에서 서울까지, 집과 일터를 하릴없이 오가며 살아왔다.

불현듯 가속도 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종도가 있었다. 처음엔 딱 10년만 살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이제 다섯 살 된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삶이 단단하게 뿌리내리면서, 섬을 떠나지 못했다. 영종도는 이제 그들에게 몸과 마음이 머무르는 '집'이 됐다.
 
찻잔에 담긴 봄, 그리고 쉼 ⓒ 임학현
  
부평에서 영종도로 온, 카페 ‘차덕분’의 안성근 대표 ⓒ 임학현
 
"차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이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쉬었다 가면 좋겠습니다." 차를 내리는 안 대표의 손길이 섬세하고 정성스럽다. 창 너머로 물치도가 보인다.

섬은 100여 년을 일본식 이름 작약도로 불리다 지난해 여름에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물치(勿淄), '밀물이 거세게 섬을 치받는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 오늘 바다는 잔잔하다. 찻잔에 담긴 향기 어린 시간을, 다가오는 봄을 가만히 음미한다.
 
노래하는 가수와 백운산 종이 위에 수채화, 펜(21x29cm, 2021). 이 봄, '생각의 산' 백운산 기슭에서 백영규의 무대가 열린다. ⓒ 박상희
 
백운산 아래, 봄날의 음악회
 
'나의 거대한 책상이자, 생각의 산'. 가수이자 작곡가 백영규(69)가 백운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수더분한 산세와 수려한 경치에 반해, 지난해 백운산 기슭으로 집을 옮겼다. 그 후로 그는 매일 하루 세 시간 산을 오르내린다. 두 다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채 걷고 또 걸으면, 생각이 숲이 우거지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산길을 걷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술잔을 기울이고, 틈틈이 작품을 쓰며 영종도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낯선 감정 없이, 오자마자 정이 들었어요. 다리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집니다. 바다가 있고, 밤이면 하늘에 별이 보이고. 어제는 예쁜 초승달이 걸렸더라고요." 봄이 무르익어가는 3월, 어느 화창한 날엔, 백운산 기슭을 무대로 노래할 생각이다. 공연은 그의 유튜브 채널 '백다방TV'로 관객을 찾는다.
 
'영종도에 문화예술의 꽃이 피길...' 같은 꿈을 꾸며 서로 희망이 되어주는, 가수 백영규(오른쪽)와 오진동 ⓒ 임학현
  
문화예술 기획자 오진동씨가 영종도에 연 복합문화공간 '별난 스페이스' ⓒ 임학현
 
최근 백영규의 정규 앨범 14집이 14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추억의 신포동1·2', '인천의 성냥 공장 아가씨1·2', '꿈의 나라 송도로 가자'...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만든 곡들로 꽉 채웠다. 언젠간 영종도를 노래하는 작품을 써 내려가리라. 앨범 재킷의 아트 디렉팅은 문화예술 기획자 오진동(57)씨가 맡았다. 한국적인 정서를 기반하면서도 다채로운 그의 음악적 행보를 기리며 색동옷을 입혔다.

"백영규 형님 같은 아티스트들이 영종도에 관심을 두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나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예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같이 놀 수 있는 판을 마련했습니다. 지원이 있다면, 대중문화가 자생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겠지요."

개항장 문화지구에서 꽤나 잔뼈 굵은 그는 지난해 영종도로 와 복합문화공간 '별난 스페이스'를 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췄지만, 예술의 씨앗이 뿌리내리기엔 땅이 아직 척박하다. 그래도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이 섬에 스며들어 서로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머지않아 영종도에 문화예술의 꽃이 필 겁니다. 자, 힘냅시다."
 
구읍뱃터. 멀리 영종대교가 보인다. ⓒ 임학현
 
하늘길 대신 풍요롭던 바다를, 땅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섬은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누군가를 위해 품을 활짝 열고, 여정에 기꺼이 날개가 되어준다. 그 시간이 20년. 기억 너머 바다와 하늘 사이 그 어디쯤, 그 섬 영종도가 있다.
 
인천 그림을 그린 박상희 작가. 인천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도시의 불 켜진 야경 안에서 드러나는 욕망, 끊임없이 노동하는 현대 사회의 불면의 밤을 작품에 담아왔다. 개인전을 22회 열었고, 인천아트플랫폼과 OCI 미술관 레지던시 등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인터넷 신문 <인천in>에서 '빛으로 읽는 도시, 인천'을 연재하며 인천의 다채로운 풍광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박상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1년 3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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