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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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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이다. 다른 뉴스거리를 보려면 첫 화면을 넘겨야 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각자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옹호하며, 상대 후보를 싫어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왜 그를 지지하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먼저 제목과 달리 이 글은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나 비판을 담고 있지 않음을 밝힌다. 다만 책 한 권의 도움을 받아 '대체 왜, 누가 상대편 후보를 지지하는지' 알아보고자 함이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심상정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다른 누군가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말이다.

진보의 도덕성과 보수의 도덕성, 진보의 상식과 보수의 상식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대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윤석열을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아마도 '윤석열 지지자는 기득권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학력 빈곤·고령층'과 같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관련기사: 황운하 '윤 지지자=저학력·빈곤층' 표현 논란... "사과드린다"☞http://omn.kr/1w7xh)

이들이 보기에 '상식을 가진'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도저히 윤석열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저학력이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이라는 논리가 도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운하 의원의 발언은 설화를 넘어 많은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진영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대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이재명을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보기에 지난 몇 년간 나라는 망하기 직전에 치달았고, 이재명이 당선되면 나라가 베네수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왔을 것이다.

매번 대전역 광장을 지날 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문재인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이 할 일이 없는 고령층이어서, 저학력이어서 그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알바비를 받으러 나온 것도 아닐 것이다. 이들도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의 마음으로 추운 날 아스팔트 위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듯 진보와 보수의 '상식'은 다르다. 비단 우리 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2016년 미국의 대부분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상했다. 그녀가 미국 사회가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를 가진 후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쇠락한 공업지대'에 거주하는 백인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했다. 그가 진정 미국을 위하는 후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비롯된 것일까?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도덕적 세계관

뉴욕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조너선 하이트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 자신도 열성 진보파로 민주당이 공화당을 이기길 바라며 진보 진영에 도움이 되고자 정치 심리 연구를 시작했지만, 이라크 전쟁을 벌인 후에도 부시 정권이 재선한 것을 보고 공화당을 이해해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도덕적 세계관(이 책에 따르면 '도덕 매트릭스')이 다르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책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 담아냈다.

  
<바른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바른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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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학력이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주의적인 특성이 강한 문화적 환경을 가진 사람일수록 도덕이 '자율성의 원리'에 국한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들 진보주의자들은 도덕과 정의의 기준을 '배려와 공평성의 차원'에서 찾는다. 가난한 이들, 이민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나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 부자나 기업에 대한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정책이 진보의 아젠다가 된 이유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도덕적 정의가 차별금지법이나 성 평등 정책, 종합부동산세 등의 이름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사건이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사건이 진보층의 감수성을 자극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도덕의 범위가 더 넓다고 말한다.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도덕과 정의가 배려나 공평성의 차원에서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충성심, 권위, 고귀함, 자유'라는 차원을 포함한다. 전통적인 권위나 위계에 대한 존중, 군대와 참전용사에 대한 존중, 성적 역할이나 이성애에 대한 옹호, 자유로운 발언/기업활동/소유에 대한 찬동은 여기로부터 나왔다.

우리 나라에서 천안함 사건이나 최저 임금 인상, 소득세나 부동산세 증세가 보수층의 감수성을 자극한 것도 바로 이러한 '충성심, 권위, 고귀함, 자유'를 포함하는 도덕적 세계관 때문이다. 왜 많은 이들이 박정희 시대, 권위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것이 '대체 누가 왜 윤석열을/이재명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는지. 진보주의자들은 도덕과 정의의 기준을 '배려, 공정성'이라는 차원에서 찾고, 보수주의자들은 도덕과 정의의 기준을 '배려, 공정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 자유'에서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차원의 개수 차이가 어떤 집단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두 집단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세계관(도덕 매트릭스)'이 두 진영의 근본적인 차이를 낳는 것이다.
 
2011년, 13만 2천여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도덕성 기반 설문(Moral Foundations Questionnaire) 결과
 2011년, 13만 2천여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도덕성 기반 설문(Moral Foundations Questionnaire) 결과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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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도덕적 세계관이 다르기에 서로가 서로를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것, 아니 대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부족과 같은 도덕 공동체 속에서 … 신성한 가치를 빙 둘러싸고 … 왜 우리가 백 번 옳고 저들은 백 번 그른지 사후 논변을 지어낸다. 그러면서 상대방은 눈이 멀어 진실, 합리성, 과학 상식을 못 본다고 여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신성한 대상을 이야기하는 순간 눈이 멀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550p."

이분법을 떠나 서로를 더 존중하는 법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가치나 공약 논쟁 대신 가장 대중에게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잘 먹히는 '네거티브'만이 뉴스를 도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는 지역이나 거주 형태에 따라 같은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이 모이고, SNS나 유튜브에서도 개인화된 '필터 버블' 안에서 각 진영의 정치적 편향성은 공고해진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빨갱이'나 '좌파', '토착 왜구'나 '일베충'이 된다.

<바른 마음>의 말미에 조너선 하이트는 이런 보수-진보를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상대편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쪽에서 신성시하는 것을 따라가 보면 된다. 그려면그럴려면? 첫 걸음으로 여섯 가지의 도덕성 기반(배려/공평성/충성심/권위/고귀함/자유)을 떠올려보고, 그중 … 가장 중시되고 있는 기반 한두 개를 찾아낸다. 더불어 여러분이 진정 마음을 열고 싶다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먼저 열어야 한다 … 이렇게 되면 … 이분법을 떠나 서로를 더 존중하는 건설적인 '음양'의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551p"  

누구나 세상에 자신의 도덕적 세계관과 다른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혹은 평생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쉬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이 가장 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도덕적 세계관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토착 왜구'이거나 '빨갱이'인 것은 아니다. 저들도 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들이자, '음양'의 거대한 조화를 이루는 일부분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집까지 태워준 버스 기사, 어머니 치아의 신경 치료를 해 준 치과 의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택배 기사, 대출 갱신을 위해 상담한 은행원, 도서 카드를 만들어준 도서관 사서, 저녁에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내려준 카페 종업원…

이분들을 나누는 어떤 이분법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에 상관없이 같은 땅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소중한 이들,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살아 갈 동료 시민들이 보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스물 세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대선, #윤석열, #이재명, #바른마음, #조너선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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