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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폴란드 코르쵸바 국경검문소 인근 임시 난민수용시설 앞에 인파가 모여있다.
 5일(현지시간) 폴란드 코르쵸바 국경검문소 인근 임시 난민수용시설 앞에 인파가 모여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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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사람 마테우슈를 안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게임 길드(온라인 게임에서 형성되는 유저들의 모임)에 속해 있고 온라인에서 상대 길드의 방어기지를 깨부수는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다. 상대 나라를 침략하여 전리품을 뺏어내고 공격포인트를 획득하는 것이 가상의 공간에서는 허용되며 레벨이 높아질수록 칭송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2월 24일 이런 일은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군사작전 개시 명령으로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와 피난민이 늘어나고 있다. 길드원들은 우크라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의 친구를 한 목소리로 걱정했다. 현실에서는 평화를, 게임 세계에서는 전쟁을 즐기고 있다며 우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폴란드 사람이 보는 러시아 침공은 어떤 의미일까? 마테우슈 마로카와의 인터뷰는 지난 4일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 본인 소개를 해 달라.

"내 이름은 마테우슈 마로카(Mateusz Malocha)로 35세이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거주하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한다."

- 한국 독자들에게 폴란드를 소개한다면.

"폴란드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로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과 직접 맞닿아 있다. 폴란드 영토는 한국의 3배 크기이지만 폴란드 사회 규모는 한국보다 작다. 한국처럼 기후는 온화하고 따뜻한 편이다. 폴란드는 내각제의 나라로 우크라이나와 굉장히 유사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대통령의 역할이 더 크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 지금 거주하는 곳은 우크라이나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바르샤바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150마일(약 24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내 고향인 루블린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국경지대인 도로후스크에서 불과 50마일(80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이다. 가족 대부분은 루블린에서 살고 있고 나도 거기서 대학을 졸업했다."

- 지금 폴란드 상황은 어떤가?

"지금 폴란드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이 있었던 첫날에는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졌고 상점들도 기본 생활필수품들이 부족했다. 현재로서는 모든 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으며 폴란드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는 이웃과 가족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 침공 소식 듣자마자 풀뿌리에서 기초용품 모으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구호품을 나르는 모습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구호품을 나르는 모습
ⓒ 마테우슈 마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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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사람들에게 이 전쟁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사람들 사이의 대화나 모든 웹사이트, TV 뉴스에서 유일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우크라이나 사건들이다. 나도 일상생활을 충실히 하고자 하지만 매일 벌어지는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이 직업인 만큼 우크라이나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거주할 곳을 찾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폴란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온 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있으며 돕는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의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폴란드 사람들은 즉각 음식과 의약품, 기저귀와 생활에 필요한 기초용품들을 모으는 것에 중점을 두는 풀뿌리 계획을 체계적으로 잡기 시작했다. 직후인 일요일에는 바르샤바에만 28개 거점들이 있었다. 거기서 기증받은 물품들이 차에서 기차로 옮겨졌다.

이후 곧바로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수많은 여성들, 아이들과 노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도시와 마을 당국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자원봉사자가 되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안전한 쉼터와 잠잘 곳, 먹을 것을 비롯한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도록 거점을 조직했다. 폴란드에서 숙소와 모든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많은 폴란드인들이 자신의 집을 피난처로 제공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큰 차량이 있는 사람들은 이동을 원하는 피난민들을 태우기 위해 우크라이나 경계로 차를 몰고 갔다. 대가를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폴란드의 모든 대중교통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젯밤 10시쯤 루블린에 사는 아버지가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생후 6주가 되는 아기를 데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성이 쉐미셜 기차역에 앉아 갈 곳이 없어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쉐미셜은 루블린에서 차로 3시간 거리였지만 아버지는 즉시 차를 몰고 갔다. 새벽 4시에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여성 2명과 아이 2명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지금 부모님 집에 있으며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다.

왜 이들을 돕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있고 그들의 고향은 침공을 당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 러시아의 다음 목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없나?

"처음에 우리 모두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아주 빠르게 도착했으며 며칠 내로 똑같은 시나리오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으로 보고 무서워했다. 지금은 러시아 군대가 보기보다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닌 것을 보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아주 용감하고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로서는 핵공격을 더 무서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 시작된 폴란드와 같은 처지"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구호품을 모으고 있는 모습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구호품을 모으고 있는 모습
ⓒ 마테우슈 마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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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사람들은 이번 러시아 침공이 있기 전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대하는 감정이 달랐나?

"긴 세월 동안 폴란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형제와 자매로 대했다.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계속적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수십만의 용감한 이들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20세기 이후로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역사가 있다. 비단 2차대전뿐만이 아니라 소련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던 1945년에서 1989년 사이의 기간에 모스크바에서 떨어지는 지령을 수행하던 '꼭두각시 정부'가 있었다. 폴란드로서는 굉장히 암울한 시기였고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할 말이 별로 없다. 내 생각에는 전범이자 많은 이들을 학살한 사람이고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그것을 갖기 위해 무슨 일이든 벌일 사람이다."

- 폴란드인 입장에서 볼 때 이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내게는 많은 의미가 있다. 항상 역사에 관심이 있었지만 신문과 역사책에서 보았던 장면을 내가 다시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전쟁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지금과 같은 문명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이 시작된 1939년 9월의 폴란드와 같은 처지에 있다. 전 세계가 왜 과거의 사건과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우호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분명 가능하다고는 보지만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푸틴과 그의 하수인들이 더 이상 러시아 정치에 몸을 담지 않은 후일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 순간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오랜 기간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유럽 국가는 이 두 나라가 미래에 좋은 관계를 가질 것을 바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공통점이 많고 서로 이웃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웃으로 살아갈 것이다. 반면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에 원한을 가진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집을 뺏으러 온다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태그:#우크라이나, #러시아,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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