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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내 휴대폰은 울린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혹시 몰라서 전화를 받는 타입인데, 아니 웬걸? 아주 다양한 모르는 번호로 전화와 문자가 들이닥친다. 처음부터 받지 말껄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거래업체 사장님들이 판매 사장님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얼마나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지 걱정이 되서 일일이 상황 설명과 더불어 보충 설명까지 해주고 있다.
 
하루에도 이런 문자와 전화가 수십 통씩 온다
 하루에도 이런 문자와 전화가 수십 통씩 온다
ⓒ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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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전화와 문자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전화와 문자
ⓒ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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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입니다. 생수 작은 거 40개..."
"아, 죄송해요. 번호가 바뀌었네요. 아직 전 사장님이 안바꾸셨나 봐요."

"OO지하입니다. 박카스 O박스와 생수 O개, 계좌 알려주세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번호가 바뀌었습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거래하시길 바랄게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OOO호인데요, 생수랑..."
"번호 바뀌었습니다. 전 사장님이 안 알려주셨나봐요. 많이 불편하실 것 같은데, 한번 알아보세요. 수고하세요."


현재 내 번호를 사용하던 사장님이 아마 생수나 잡화 등을 취급했던 것 같다. 거래 업체들이 전화와 문자로 다양한 품목을 콕 집어 필요한 수량과 받아야 할 날짜 등을 이야기하신다.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사장님도 계시지만, 다짜고짜 계좌이체했으니 물건을 보내라고 하는 사장님도 있다.

이럴 땐 정말 난처하다. 돈을 실제로 보내시긴 했을 텐데, 주문한 물건은 안 오고 판매 사장님의 번호도 바뀐 것을 알게 된 거래업체 사장님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세무서 담당 직원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한 적도 많다. 통화한 날의 대부분은 5월이었다. 5월은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는 날이라서 자영업자 사장님들에게는 '세금의 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세무서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OOO 세무서, OOO입니다. OOO 사장님이시죠?"
"아... 아닌데요."
"네? 아니시라고요?"
"네, 아니에요. 번호가 바뀌었는데 이전 사장님이 이런 걸 다 변경 안해놓으셨나봐요."
"그래요? 정말 OOO씨 아니세요? 아... 알겠습니다."


통화한 세무서 직원은 적잖이 당황한 목소리였다. 누군가를 특정할 때 휴대폰 번호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과 주소를 알아도 그 사람과 연락하기란 쉽지 않다. 휴대폰 번호를 알아야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연락할 수 있다. 판매 사장님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으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모르는 번호로 하루에 수십 통씩 오는 전화와 문자를 감당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 일일이 대답을 해주는 것도 꽤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부재중의 의미

일일이 대응을 해주던 중 한 거래업체 사장님과 길게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거래업체 사장님은 소위 말해 '물건을 떼다가 되팔고' 있는 소매업체를 운영 중이라고 했다. 판매 사장님은 그러니까 큰 도매업체를 운영 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거래업체 사장님의 거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나도 물건을 떼다가 파는 입장이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그때 바로 택배를 보내거나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니 민원이 많이 들어와요. 그러다보니 주문 수량도 줄어들고요.

매일 거래하던 업체 사장님이 전화도 안 받고, 그 가족도 전화를 안 받으니 알 방법이 없드라고요. 수십 년동안 거래하던 곳이라 실제 방문해서 거래하질 않고 간단하게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거래했거든요. 근데 전화가 안되는 건 잠적이에요, 잠적."


그러다보니 거래 업체 사장님은 어쩔 수 없이 도매업체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안된다는 건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긴 우리가 살아오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격언 비슷한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만, 정말 무소식이면 걱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생업이 달린 자영업자 사장님들의 입장은 얼마나 더할까? 사람의 부재는 여러 측면에서 영향이 크다. 여전히 오늘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와 문자가 온다.

자영업자 사장님이 쓰던 번호를 그대로 받아서 쓰니 직업의 혼란(?)도 느낀다. 한번도 자영업을 해보지 않았는데 간접체험하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연락이 오는데 거래를 원하는 업체 사장님들은 원활하게 거래하고 있을까? 번호 하나 바뀐 게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켰을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판매 사장님도 아마 고의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바뀌기 전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바뀐 번호로 알려주는 알림 서비스가 있다. 그러나 원래 사용하던 번호를 누군가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면(나처럼) 이런 서비스도 이용할 수가 없다. 즉, 여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번호를 사용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지금 상황에서 해결방안은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는 사람이 번호가 바뀌었다고 일일이 알림 서비스를 해주는 것뿐이다. 나처럼. 또 전화를 건 상대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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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괴물'로 착각하곤 합니다. 깊게 알지 못하면 편견과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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