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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6월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지난 2021년 6월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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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해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운림54번)를 덮쳤다. 이 사고로 사망자 9명, 부상자 8명 등 사상자 17명이 발생했다. 모두 운림54번 탑승객이었다.

7일 광주지방법원 형사11부(박현수 부장판사)가 광주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일명 '학동참사'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건축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7명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이날 법정에 선 이들은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와 하청, 재하청업체 관계자들이다.

이날 재판부는 하청업체 한솔기업 현장소장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재하청업체 백솔건설 대표 B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감리 C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불법 시공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HDC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D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00만 원을, 현대산업개발 공무부장 E씨와 안전부장 F씨에게는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어서, 한솔 등과의 불법 거래를 통해 불법적인 재하도급을 조장했던 다원이앤씨 현장소장 G씨에게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현대산업개발(2000만 원)과 한솔(3000만 원), 백솔(3000만 원)에도 각각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규탄했다. 박 재판장은 "무엇을 더 잃어야 외양간을 고치겠느냐"며 "돈만 벌면 된다는 이기심과 안전 불감증 탓에 언급하기도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나 HDC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은 일부 인정되지 않았다. 박 재판장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에게는 철거 작업 사전 조사, 작업계획서 작성 및 준수, 붕괴 위험 관련 안전 진단 의무만 있을 뿐, 구체적인 관리·감독 책임은 없다"고 밝혔다.

학동참사 유족들 "집행유예 선고, 현대산업개발에 면죄부"

이날 판결에 대해 '학동참사' 유족들과 광주 지역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판결 공판 직후 학동참사 유가족 협의회와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을 총망라한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 참사 시민대책위'는 "재판 결과,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힘없는 하청 기업과 감리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며 "이번 판결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합리가 다시 한번 재현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9일, 학동참사 1주기 추모식이 광주 동구 학동에서 열렸다.
 지난 6월 9일, 학동참사 1주기 추모식이 광주 동구 학동에서 열렸다.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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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회와 대책위는 "현대산업개발의 현장소장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불법 공사를 공모하고, 참사의 직접 원인으로 꼽히는 직접 살수까지 지시했다. 그런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현대산업개발에 면죄부를 주고자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몸통은 내버려 둔 채, 깃털들만을 건드린 '봐주기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장은 선고에 앞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이기심을 질타했다. 하지만 판결 결과는 재판장의 인식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상황 인식과 괴리된 재판부의 판결에서 유족들은 더 큰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유족회와 대책위는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이 관행은 재판장이 지적한 산업안전보건법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있어도 이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핵심 이유"라며 "다름 아닌 재판부의 판결이 이 가슴 아픈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규탄했다.

검찰을 향한 메시지도 있었다. 유족회와 대책위는 "우리는 결코 부조리한 이번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현대산업개발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이것은 최소한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일이고, 불법 공사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검찰은 즉각 항소하여 참사 피해자 및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고, 안전을 도외시한 불법 공사에 대한 엄정한 처벌로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밝혔다.

태그:#학동참사, #산업안전보건법, #HDC현대산업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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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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