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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가 시작되네요. 며칠 전부터 만월을 준비하는 달님의 동작을 보느라 밤마다 하늘을 보았습니다. 말랭이마을에 온 후로 낮이든 밤이든 하늘을 보는 날이 많아졌어요. 어젯밤 책방의 밤하늘은 두터운 구름 때문인지 제 얼굴을 감추고 있었지만 저를 알고 있었죠. '이틀만 더 기다려다오. 이쁘게 더 이쁘게 보여주려고 단장하고 있으니'라는 달님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요. "

"추석 전에는 인사드려야 할 분도 많아서 정신없이 다니지만 이런 부산함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특별히 어제는 나운복지관의 무료급식 혜택을 받는 분들 330여 명에게 추석 선물로 떡을 나누었어요. 저를 믿고 기부를 해주신 분들의 후원으로요. 점심 한 끼를 얻기 위한 삶의 현장을 보면 늘 마음 한쪽이 아리지만 그 또한 외면하면 안되는 모습이기에 한 번이라도 함께 있으려고 해요.

명절은 아프고 외롭고 멀리 있는 그 누군가를 더 생각하고 챙기라고 있는 특별한 날이에요. 밝고 맑은 보름달님이 비춰주는 소외받는 당신의 이웃. 부디 당신의 따뜻한 눈길이 한순간이라도 머무는 추석이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시는 박노해 시인의 <나눔의 신비> 봄날의 산책 모니카."


책방에서 보내는 오늘 아침 <시가 있는 아침편지> 내용이다.

9월이 오자마자 태풍 힌남로의 소식으로 온 나라가 긴장한 채 첫 주간이 지났다. 군산에서도 대부분의 학교와 학원이 휴교령을 내리면서 초비상상태를 준비했었다. 다행히도 우리 지역은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남쪽 지방에서는 큰 인사 사고와 물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뉴스가 마음 아프게 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추석은 시기가 빨라서 명절을 앞두고 태풍 피해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상심의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서 마음 아프다.

필자가 봉사활동하는 군산나운종합복지관은 요즘 코로나 재 비상사태로 도시락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며칠 전 급식소 직원들과 태풍 얘기와 추석 얘기를 했다. 어려운 생활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태풍도 무섭고 추석도 슬픈 것이라면서 갈수록 기부도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순간 작년에 학생들과 함께 활동한 것 중 기부받은 중고책을 되팔아 모인 돈과 글쓰는 지인이 기부한 돈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학생들의 봉사활동으로 이뤄지는 '중고북비지 장터'는 군산의 한길문고(문지영 대표)에서 매월 1회씩 운영되는 중고책 장터이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규칙적인 활동이 부족해서 책 판매 대금 역시 소액이었다. 올해까지 더 모아서 좋은 곳에 기부하자고 문 대표와 의논했었다.

나운복지관 어르신들에게 추석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맘에 저축된 기부금 사용 여부를 문 대표에게 물으니 부족한 부분은 한길문고에서 후원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또한 온라인으로 만나는 '작가와의 명함' 팀의 스마일 박정 작가가 보낸 기부금 역시 동일하게 사용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얼굴도 한번 보지 않은 나를 믿고 기부금을 준 그녀의 선행이 헛되지 않도록 사용내역을 상세히 알리는 것은 나의 책무였다. 기부금 사용 진행 절차를 일일이 알려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그녀에게 나야말로 고맙기 그지없다고 전했다.

일을 하는데도...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봉사자들이 일사분란한 손길로 급식 수혜자들에게 드릴 330여 개의 선물이 만들어졌다
▲ 추석 선물로 기부받은 떡과 사과  봉사자들이 일사분란한 손길로 급식 수혜자들에게 드릴 330여 개의 선물이 만들어졌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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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로 백설기 떡 330개를 준비했다. 어제 아침(9월 8일) 일찍 급식소에 가보니 사과 몇 상자가 보였다. 어른 주먹보다 큰 사과들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니 비과(표면에 상처가 난 사과)가 많이 보였다. 복숭아 과수원을 하는 시댁에서는 비과만을 가져가는 단골고객들이 있다. 값이 현저히 싸고 맛이 달기 때문이다. 사과를 기부한 농부 역시 얼마든지 수익이 될만한 사과임을 알고 있을 텐데 급식소에 기부해준 것이다.

센터에서 준비한 기부자의 이름이 쓰인 스티커를 떡에 일일이 붙였다. 봉사자들은 별도의 비닐에 떡과 사과를 담았다.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해서 그런지 일사분란하게 선물을 준비하는 그들의 손끝은 언제나 따뜻하고 정성이 가득했다. 오늘은 남편이 따라와서 과수원집 아들답게 비과 중에서도 무른 사과들을 골라내는 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장 사진을 찍느라 봉사자들의 모습을 제3자 입장에서 볼 때가 많다. 누군가의 마음의 기쁨을 헤아리며 봉사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작은 덕담을 주고 받고, 연휴 기간 동안 수혜자들의 먹거리를 걱정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많은 봉사현장이 있지만 밥을 대접하는 이 공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이 탄생하는 곳이다.

"전쟁 같은 명절이에요. 점심 한 끼를 받으시는 분들에게는 긴 명절이 행복하지만은 않아서요. 오늘은 떡과 과일이 함께 나가서 다들 좋아하셨지만 나눠주는 저희들은 정신이 없었어요. 다른 때보다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도시락도 부족해서 난리였어요. 명절 잘 보내라고 저를 보고 웃으면서 인사하시는 어르신들이 있어서 바쁜 맘에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요. 후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나운종합복지관 영양사 박윤희님의 말이다.

서로의 무게를 나누는 '나눔'
 
'군산한길문고' 문지영 대표와 '작가와의명함' 팀의 박정 작가의 기부금에 감사드린다
▲ 두 명의 기부자들의 후원으로 준비한 떡 330개 "군산한길문고" 문지영 대표와 "작가와의명함" 팀의 박정 작가의 기부금에 감사드린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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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나눔'이란 말을 생각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을 가장 쉽게 실천 할 수 있는 방법 중 으뜸은 나눔이 아닐까. 새롭게 더해서 나누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내 것의 한 조각을 내어놓기만 하면 되는 가장 쉬운 일. 나의 무게도 가벼워지고 이웃의 무게도 가벼워지니 이 얼마나 좋은가. 나이 들수록 정말 가볍게 사는 지혜가 무엇일까를 매일 기억한다. 시인 박노해는 대신 말해주었다.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 신비로운 삶을 알 수 없다고 말이다.
 
나눔의 신비 - 박노해

(중략)

내 미소를 너의 입술에 옮겨 준다고
내 기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빛은 나누어줄수록 더 밝아지고​
꽃은 꿀을 내줄수록 결실을 맺어가고 ​
미소는 번질수록 더 아름답다​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고
자신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
시간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태그:#나눔, #군산나운종합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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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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