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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나도 따라가네
▲ 추석 보름달의 자태 구름에 달가듯이 나도 따라가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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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군산은 작은 시골이고만. 이렇게 명절 때는 사람들 차들로 붐비니. 하지만 얼마나 다행이냐. 갈수록 인구가 줄어서 걱정인데 추석 때라도 사람 사는 동네같이 훈짐 나고 좋아.'

유독 빨리 찾아온 추석을 두고 평소에 마음 써준 분들에게 인사드리려 분주히 다니다가도 지인과 통화하면서 '그래도 이 작은 도시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수다를 떨었다.

대학을 핑계로 군산을 떠난 지 20여 년 만에 아들 손잡고, 딸을 품에 안고, 군산에 낯선 남편과 돌아왔었다. 다시 20년이 지난 후 추석 전야를 친정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시댁에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예전처럼 추석 전날부터 모이는 관습이 사라지고 당일 시부모님의 산소에서 만난다. 언제나 조상님들 모실 상차림에 가장 극진한 예를 다하는 엄마를 뵙고 고생하셨다고 용돈도 드리고, 동생들과 저녁을 먹으며 미리 덕담을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허전하여 지인에게 산보하자 하니 홀로 있는 즐거움을 느껴보라 했다. 얼마 전 이사를 해서 어수선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책방으로 차를 돌렸다. 추석 전야에 보는 달이 진짜 더 둥근 거라는 세간의 말을 믿고 하늘을 보니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월명산 꼭대기에 있는 책방에서는 보이겠지'라며 언덕배기를 올라서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달님이 '짜~안'하고 나타났다.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런 환대가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월명공원내에 세워진 정자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군산의 명관이다
▲ 월명산 정자 위에 떠오른 달님 월명공원내에 세워진 정자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군산의 명관이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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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변에는 서너 개의 정자가 있다. 그중 책방에서 월명산 수시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정자가 예쁘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금강 하구를 중심으로 군산 내항, 장항, 오성산, 군산 도심 등이 다 보인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군산의 명경인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무슨 야행 행사라도 해서 이 아름다움을 같이 느껴보자고 홍보라도 하고 싶다.

팔각정을 둘러싸고 비춰주는 조명 덕분에 정자 위에 서 있는 내가 마치 무대 위 주연배우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와 손 내미는 달빛과 미소를 카메라에 담아 지인들과 가족에게 나눠주고 싶은 맘이 둥둥거렸다.

매일 한시를 보내주시는 선생님, 종일 전을 부치느라 고생했을 친구 현숙과 정연이, 가을 산의 꽃 사진과 글을 보내준 소정이, 때마침 코로나 걸려 격리 중인 진성이, 책방지기 효영이, 구르미를 포함한 많은 지인, 그리고 사랑하는 내 동생들에게 둥근 보름달을 가득 안아서 보내주었다.

"네 세상처럼 부러운 것이 없다. 추석날 정자에서 달님과 얘기하며 홀로독경을 누리는 네 팔자가 상팔자다."

맞는 말이어서 크게 웃었다. 집이라는 박스에만 있지 말고 잠깐이라도 나와서 하늘을 보라고, 달이 안 보여도 밤하늘 한번 보라고 말했더니 진짜 추석날 밤에 나간다고고 했다.

실과 바늘인가. 잠시 후 남편이 친구와 함께 찾아왔다. 아픈 친구여서 남편이 늘 안타까워하는 분인데, 이런 곳에서 추석을 맞을 줄 몰랐다며 군산 야경이 좋다고 했다. 밤공기도 맑고 경쾌하니, 귀뚜라미가 들려주는 환대의 협주곡 좀 들어보시라 권하면서 팔각정의 주인행세를 했다. 남편은 나와 다른 각도에서 달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분주했다.

열심히 달 모습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아침에 받은 한시, 정도전(鄭道傳, 고려시인) 中秋歌(중추가, 한가위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정도전 하면 오로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만 여겼는데, 고려시인이라는 타이틀로 만나니 그의 모습이 새로웠다.

게다가 한가위의 달을 보며 인생무상을 전한 구절이 있는데 해마다 달은 같은 달이나 인정(人情)에 따라 내 마음의 달이 달라진다는 시인의 맘이 꼭 내 맘 같았다. 달 마중을 마치고 책방에 와서 남편과 차를 마셨다.

새벽 5시, 여느 때처럼 눈이 떠졌다. 오늘은 책방에서 보내는 아침 편지에 무슨 말을 담을까.

"인연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작년 이맘때 군산시 관광과에서 주최한 '군산 여행 에세이'에 글 하나 써볼까 하니, 말랭이마을만 처음 보는 곳이었지요. 한순간이라도 체험이 없으면 글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 낮과 밤 두 번을 왔었답니다. 낮에 본 마을은 옹기종기 야트막한 언덕 위에 모여 있는 집 모습이 마치 작은 콩나물시루같이 정겨웠습니다.

밤의 모습은 월명산아래 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명한 밤하늘에 달이 떠 있었답니다. 응모에세이 속에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의 한 구절을 넣었지요. 부족한 글이 영화로운 달빛을 받아 당선이 되고, 또 이곳 책방지기까지 되는 행운이 왔으니 이보다 더 큰 인연은 없겠지요.

추석 전야, 책방 위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은 참으로 밝고 예뻤습니다. 얼마나 멀리 있기에 이 세상을 다 감싸주는 팔을 가졌는가. 얼마나 차고 넘기게 담고 있길래 이 세상에 다 쏟아도 저 빛이 줄어들지 않는가. 달이 하도 예뻐 지인들에게 사진으로 보내니, 건물에 치여 달이 안 보인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오늘은 추석, 달빛이 가장 환한 가을 저녁이라 하여 월석이라고도 하지요, 당신의 소망을 듣고자 이쁜 미소와 넓은 품으로 찾아온 달 손님을 박대하지 마시고 꼭 밤 하늘 보며 눈길 한번 주세요. 당신의 모든 희노애락을 공감해주는 따뜻하고 속 깊은 인연이 되어줄 거예요. 오늘의 시는 윤인애 시인의선물.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어떤 이는 걱정하며 말한다. 매일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이냐고. 무슨 책임감이 아니라고. 힘들면 매일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나 나의 편지 덕분에 매일 시 한편을 읽고 느끼는 행복이 정말 고맙다고 말한다. 나도 역시 대답한다.

'나의 편지는 그냥 내 모습이에요. 오늘도 모니카가 일어났다는 신호예요. 시를 보내는 일은 어느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보내는 매일 아침 선물이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나. 그런데 이왕이면 나도 행복하고 다른 이도 행복하면 더 좋잖아요.'

추석, 월석에 찾아온 보름달이 보름빵으로 보여 한 조각 떼어먹고 싶다는 어느 어린이의 동심이 우리 어른들 맘에도 들어오는 추석이길 소망한다. 저 달빛을 받아 나보다 더 아래서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 빛을 한줄기라도 전해주는 프리즘이길 희망한다.

어디 햇빛 달빛이 계층 사다리를 구별하던가. 어디 생명의 크고 작음을 차등하던가. 모쪼록 모두가 추석 만월을 품고 고운 꿈 꾸며 평화로운 시간이길 기도한다. 윤인애 시인의 선물을 들려드린다.
 
선물 - 윤인애

지난해 추석
두 시간 거리에 사는 시인께
- 보름달이 참 밝습니다
문자를 띄웠더니
이곳엔 달이 오지 않아 쓸쓸하다고
날아든 답장이
홀로 비운 술잔 같다

마침 내게는 두 개의 보름달이 있어
연못에 걸린 달을 급행으로 보내주고
빈자리에는 흰 구름 한덩이 걸어 두었다

도착했노라,
소식을 듣던 깊은 밤
시인의 마을에서는 달도 시를 쓰는지
계수나무 아래서 은유를 즐기고
떡 방앗간 토끼도 별을 빚는다는데
이번 한가위에는
교통체증으로 복잡할 하늘길 피해
덜 여문 달이라도 서둘러 부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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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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