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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지시각으로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거행됐다. 사진 왼쪽으로 김건희 여사도 보인다.
 영국 현지시각으로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거행됐다. 사진 왼쪽으로 김건희 여사도 보인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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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19일, 영국의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이 거행되었다.

런던에서 거행된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이 운집했다. 일본의 나루히토 덴노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웨덴, 스페인 등 각국의 상징적 군주가 런던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행정수반도 국장에 함께했다.

고위급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자 영국 정부는 이들의 수송 대책 마련에 열을 올렸다. 각국 정상을 버스로 수송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영국의 코미디언 지미 카(Jimmy Carr)는 "(이동에 걸리는) 45분 동안 세계의 리더는 버스기사"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런던은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을 추모하는 현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각국 수반이 운집한 외교의 현장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가 국장에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영국 내에서는 이번 국장에 대해서, 나아가 왕실 자체에 대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국가원수로 인정하는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 가운데 자메이카나 앤티가바부다 등에서는 벌써 공화제 전환 여론이 심상찮게 나오고 있다. 상징적으로나마 존재하던 국왕의 지위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그간 영국이라는 "연합 왕국"이 그 왕국의 깃발 아래 행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또 틀린 움직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 주요국 정상이 한날 한시 런던에 운집하는 것이, 국왕의 영결식 말고는 또 어떻게 가능할까.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은 왕실의 존재 이유에 대해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왕실의 가치다. 왕실이 아니었다면 세계의 정상을 런던으로 모아 한 번에 버스로 수송하겠다는 놀라운 계획이 나올 수 없다.

아무런 권력도 없이 오직 상징으로 존재하는 군주제의 의미를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 물음은 분명 중요하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습되는 특권계층의 존재는 이론의 여지 없이 문제적이다. 하지만 어떠한 권력도 없는 권위이기에 만들 수 있는 장면도 있을 것이다.

전직이기는 하나 여전히 일본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다. 비극적 죽음을 맞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 역시 국장으로 치러지지만, 국장 참석을 두고는 각국의 정치적인 논란이 거세다. 그렇다면 현지에서 각국 정상과 대표단이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범위도 분명 제한될 것이다.

영국 왕실은 아무런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권위였고, 그렇기에 세계 정상은 런던에 모일 수 있었다. 꼭 각국 정상과 대표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버킹엄 궁 앞에 헌화와 추모를 위해 줄을 선 수없는 영국의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니었다면. 실제 권력을 행사한 처칠이었다면, 대처였다면. 선뜻 그 긴 줄 뒤에 설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보다 적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한 영국의 왕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추모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영국인들이 한 시대를 회상하게 만드는 매개가 될 수 있었다.

영국뿐 아니라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왕실은 그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왕실은 그 어떤 정치적 기능도 수행하지 않으며, 오직 누습과 관례에 기대 그 존재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기능이 없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던 셈이다.

물론 이것은 엘리자베스 2세라는 군주의 특수한 사례일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부터 70년 간 영국의 왕위에 있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긴 집권이었다. 그 사이 세계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냉전부터 코로나19까지 그 모든 사건을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의 국왕으로서 함께 거쳐 왔다. 영국인의 회한과 추모는 이제 끝나가는 한 시대에 대한 것이지, 꼭 국왕 개인을 향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제 찰스 3세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 영국의 국왕이 되었다. 찰스 3세가 엘리자베스 2세만큼이나 상징적인 군주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찰스 3세는 그만큼 오랜 기간 재위할 수 없을 것이며, 왕실이 기대고 있던 구습은 이제 형해화되고 있다. 다이애나 비와의 이혼을 비롯한 일련의 스캔들로 찰스 3세 본인에 대한 호감도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국의 왕실에,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은 현대 사회의 왕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보여주었다. 행사되지 않는 권위, 한 시대를 상징하는 회상으로 남을 수 있는 권위만이 현대 왕실이 나아갈 길이다. 오직 그것만이 세계의 정상을 런던으로 불러모을 수 있었다.

런던에 운집한 각국의 정상은 이제 뉴욕으로 향해 UN 총회에 참석한다. 엘리자베스 2세를 조문하기 위해 모인 "사적 외교"는 끝나고, 이제 각 국가의 대표로서 만나는 "공적 외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적 외교"와 "사적 외교"의 선이 분명하다고,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사적 외교"를 매개하는 틀만이 현대 왕실이 가진 유일한 의미다. 하지만 그 상징성도 권위도 추락해가는 왕실이 무엇으로 한 시대를 상징할 것인지는, 여전히 영국 왕실에 영국의 국민이 던지고 있는 의문이다.

태그:#영국, #엘리자베스, #찰스, #왕실,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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