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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책상.
 교실 속 책상.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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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중소도시 공립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어언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대학 입시제도는 참 많이도 바뀌었다. 백년지대계는커녕 십년지대계? 아니다. 삼년지대계라 해야 하나?

아무튼 요즈음 대세는 학생부종합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특목고, 자사고, 서울 강남의 유명 사립고는 정시 전형이 대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의 경우 서울 소재 대학에 가장 많이 진학할 수 있는 전형은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내신 소점이다. 일단 중간,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중요한 요소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줄여서 '과세특'이다. 다음으로 창의적 체험활동의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이 중요한 요소이다.

내신 소점은 학생들이 중간, 기말고사를 잘 준비해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니 교사들보다 학생들에게 주도권이 있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또 창의적 체험활동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담임교사들이 기록하는 것이니 모든 선생님들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모든 선생님들과 연관되면서 학생부종합전형에 매우 중요한 요소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다.

딜레마에 빠지는 교사들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까? 매년 교육부에서 만들어 각 학교로 보내주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이라는 책자가 있다. 거기에는 '학생참여형 수업 및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 등에서 관찰한 내용을 입력한다', '모든 교과(군)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력한다', '특기할 만한 사항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입력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기할 만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입력함'이라는 부분이다. 솔직히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는 학생들은 한 반에 다섯 명 안팎일 터이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쓰라니. 어쩌란 말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특기할 만한 사항'을 창작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우리 학교에는 운동부 학생들이 있다. 수업에 들어와서 고요히 멍을 때리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곤 한다. 이 학생들도 '특기할 만한 사항'을 찾아내어 써 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뭐라고 쓴단 말인가? 어쨌든 교사들은 꾸역꾸역 쓴다. 왜냐고?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쓰라고 되어 있으니까.

'학생 참여형 수업 및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 등에서 관찰한 내용을 입력'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학생 참여형 수업에서 관찰한 내용을 입력하는 일이다. 이 말대로 하려면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고 관찰한 내용을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일반계 고등학교 중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는 곳은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통계 낼 방법은 없으니 우리 학교나 우리 지역 학교의 경우를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그렇게 높은 비율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한다면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쓰는 데 어려움은 크게 없을 터이다. 하지만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지 않고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과세특을 써야 할까?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지 않고 과세특을 쓰는 것은 학교생활부 기재 요령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과세특을 쓴다, 써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500자 제한 글자 수까지 꽉꽉 채워서.

강의식 수업을 하면서도 '학생 참여형 수업에서 관찰한 내용'을 써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학생부종합전형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라 할 수 있겠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강의식 수업을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바꾸면 된다. 수업 방식만 바꾸면 되니, 매우 간단하다 할 수 있겠다. 허나 오랫동안 몸에 밴 수업 방식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또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성을 잘 바꾸지 않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학생 참여형 수업은 시대가 요구하는 수업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을 만들고, 대답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발표하는 수업이 학생 참여형 수업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묵묵히 들으며 필기하는 강의식 수업과 비교해 보면 어떤 수업 방식을 우리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지는 23개월 된 우리 손녀딸에게 물어보아도 답은 뻔할 것이다.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누구나 '수업'이라고 답할 것이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교사들이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또 학교 관리자인 교장과 교감도 교사들에게 수업 잘하라고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교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좋은 수업 방식에 대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직에 발을 들인 지 30년이 넘었지만, 다른 교사들과 함께 오롯이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핑계로 들리겠지만, 학교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오롯이 나눌 만한 공간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교사가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자꾸 강조하고 독려해야 그 일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누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겠는가?

학년말, 과세특을 쓰는 시기가 되면 늘 이런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팩트만 쓰자니 학생이 울고, 포장을 하자니 양심이 운다.'

수업 방식을 학생 참여형으로 바꾸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생각은 굴뚝 같았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느덧 1년 반 후에는 정년을 맞는다. 나만이라도 수업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해서 수업 방식을 바꾸었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쓸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절대다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나타나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 방식을 확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본다.

태그:#수업, #학생 참여, #학종, #과세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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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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