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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제3공수여단 상황실장으로 광주 진압에 나섰던 최명용(77, 가운데) 전 소령이 20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5·18 당시 제3공수여단 상황실장으로 광주 진압에 나섰던 최명용(77, 가운데) 전 소령이 20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김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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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전직 특전사 영관급 장교가 20일 광주광역시를 찾아 "1980년 5월 20일쯤 시위 진압 과정 전후로 숨진 시민 10여명을 부하들을 시켜 전남대학교와 광주교도소에 가매장했다"고 공개석상에서 증언했다.

5·18 당시 대위 계급으로 제3공수여단 상황실장을 맡았다고 밝힌 최명용(77) 예비역 소령은 이날 광주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 주최로 열린 '5·18 증언' 행사에 증언자로 나서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 전 소령은 "당시 전남대 주변에서 시위하던 시민 150여명을 붙잡아 군용 트럭 3대에 나눠태우고 덮개(호로)를 씌웠다. 광주교도소로 출발하기 전 우리쪽 누군가, 사람을 태운 밀폐된 차량 안에 최루탄을 터트렸다"며 "광주교도소에 도착해 살펴보니 트럭 뒤에 타고 있던 시민 10여명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숨진 시민이 12명인지 17명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 전 소령은 광주교도소 이동 전 전남대 주둔 당시 상황도 언급했다.

여공들 수백명이 몰려와 시위...진압 과정서 숨진 이들 부하 시켜 묻어

그는 "당시 전남대 인근에 회사 공장이 있었는지 여공들이 엄청 몰려왔다. '군인들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고 데모를 했다. 군인들이, 우리들이 몽둥이로 때리고 진압해서 몇 분이 돌아가셨다"며 "죽은 (시민) 시신을 사병들이 내 앞으로 들고 왔길래 대학 건물 뒤편에 부하들을 시켜 묻었다"고 말했다.

최 전 소령은 그러면서 "가매장 등은 당연히 최세창 당시 3공수여단장의 명령을 따랐다"고 덧붙였다. 

이어 "5·18이 완전히 진압된 이후 보안부대 요원이 찾아와 가매장지를 가르쳐준 바 있다"며 "그 뒤로 시신 행방은 모르겠다. 2년 전쯤 교도소와 전남대를 다시 가서 살펴보니 전남대 가매장지엔 건물이 들어섰고, 교도소 쪽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 회장이 "보안사 측이 시신을 몰래 화장했거나 암매장 했을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최 전 소령은 "모른다. 추측성 답변은 할 수 없다"고 했다. 
 
5·18부상자회 등 5월단체가 주관한 5·18 증언행사
 5·18부상자회 등 5월단체가 주관한 5·18 증언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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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 소령은 5·18 부상자회원 등 방청객이 '최루탄을 터트린 군인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알고 있다. 당시 소령이었으며 이후 5·18 진압을 내세워 장성에 진급하려고 시도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안다. 실명은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최 전 소령은 5·18의 성격을 두고는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광주시민들이 앞장 서 뛰신 것으로 안다"며 "지금도 일부에서 '북한군 개입' 등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한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의 살상, 발포 등 명령 지휘체계에 대해서는 "최세창 여단장 등 간부들이 줄곧 '위험 상황이 닥치면 조치해라. 직접적으로 사격 명령은 없었으나 조치하라는 말은 곧 사격 명령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공수부대는 부대 이동 시 항상 실탄을 휴대한다"며 "일부 공수부대원이 우월감에 사로잡혀 (시민들을 향해) 사격한 사례도 있는줄 안다. 직접 듣지는 않았으나 사격 명령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일부 5월단체 회원 "증언, 구체성 없고 새롭지 않아"...가해자 고백 계속돼야

이날 '5·18 증언' 행사는 지난 3월 14일 제1차 행사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날 행사에는 5·18 당시 특전사 상황실장을 지낸 이가 증언자로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5·18 피해자 등 방청객이 50명가량 몰렸으나 "새로운 증언은 없었다"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나왔다.

일부 방청객은 "당시 상황실장으로 근무했으니 헬기투입 명령, 실탄지급 시기, 발포 명령자에 대해 들은 대로 밝혀달라"고 요청했으나, 최 전 소령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직접 보고 들은 것 외에는 말할 수 없다"고 연거푸 답하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5·18 단체 한 관계자는 "최 전 소령은 최근까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등 진실 고백에 앞장선 분"이라며 "증언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분도 있겠지만 당시 진압군으로 나섰던 이가 직접 보고 듣고 행동한 내용을 공개석상에서 증언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태그:#5·18,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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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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