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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에서 델리, 다시 델리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작은 공항을 나와 시내로 향합니다. 숙소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저는 몇 번이나 작게 웃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당장 오늘 아침까지 보던 풍경과 너무나도 다릅니다. 곧게 뻗은 도로. 큰 가로수와 넓은 공원, 도심 곳곳의 녹지. 시원한 바람. 깔끔하고 잘 만들어진 건물들. 멀리 설산까지 보입니다. 소가 유유히 걷던 인도의 골목을 떠올리니 웃음이 났습니다.
 
숙소 앞 설산이 보이는 풍경
 숙소 앞 설산이 보이는 풍경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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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꼭 제가 인도에서 왔기 때문은 아닙니다. 알마티는 굳이 다른 곳과 비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걷기 좋은 도시였고, 그러다 지치면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도 좋은 도시였습니다.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입니다. 중앙아시아를 선도하는 도시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사실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는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인구수는 우즈베키스탄이 가장 많지요.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경제적으로는 카자흐스탄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전체 GDP의 60%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는 우즈베키스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GDP를 기록하고 있죠.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우즈베키스탄의 절반 수준이지만, GDP는 세 배 정도입니다.

물론 카자흐스탄의 성공은 지하자원의 힘에 기댄 면이 큽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카자흐스탄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죠.
 
알마티의 빌딩가
 알마티의 빌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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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카자흐스탄은 독재국가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더 심각한 독재국가였죠.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카자흐스탄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의 독재를 오랜 기간 겪었습니다. 1990년 4월부터 대통령에 재임한 나자르바예프는 2019년까지 만 28년을 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여느 국가와 같은 강력한 국가 통제와 부패한 집권자. 카자흐스탄 역시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씨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파벌 정치도 여전했습니다. 정치 엘리트와 그 후원 집단만이 참여하는 정치구조가 만들어졌죠.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는 알마티지만, 수도는 북부에 건설한 신도시 '아스타나(Astana)'입니다. 이 도시의 이름도 '누르술탄(Nursultan)'으로 변경되었죠. 물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누르술탄은 자신에 한해 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하고 영구집권을 꿈꿨습니다. 스스로를 '국가 지도자'로 칭하고, 자신과 가족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여했습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201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권력자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안전보장회의 이사장으로서 정보기관을 장악했죠. 여당 당수직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여느 독재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왕 정치'였습니다.
 
카자흐 국립박물관에 걸린 국기
 카자흐 국립박물관에 걸린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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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용히, 변화는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누르술탄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누르술탄 정권에서 총리와 외무장관, 상원 의장 등을 역임한 정권의 2인자였습니다. 누르술탄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한 상황에서, 변할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집회의 자유와 야당의 활동이 일부 보장됐습니다. 의회에서도 야당의 역할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죠. 거주지 등록 의무가 폐지되는 등 국민에 대한 통제도 조금씩 완화되었습니다.
 
젠코프 성당 앞의 광장
 젠코프 성당 앞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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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2년, 카자흐스탄 정치의 일대 변화가 찾아옵니다. 코로나19와 국제 물류망의 마비로 인해 벌어진 물가의 급등이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특히 2배 이상 오른 LPG 가격이 큰 문제가 되었죠. 1월 초 알마티를 중심으로 거대한 시위가 일었습니다.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최대의 정치 위기였습니다.

독재국가의 정부는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습니다. 각 도시에 비상사태가 선언되었고,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민간인 164명이 사망했습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시위는 진압되었고, 비상사태는 해제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카자흐스탄 정치에 큰 변화를 남겼습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안전보장회의 이사장을 비롯한 모든 지위에서 물러났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남았지만, 내각은 총사퇴했죠.

시위 진압 두 달 뒤, 카자흐스탄 정부는 개헌을 선언합니다. '카자흐스탄 제2공화국'을 선포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제약하는 개헌안을 발표했죠.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었고, 헌법재판소가 신설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당직 겸직을 금지하고 선거제도 개혁도 선언했죠. 사형제도 폐지했습니다. 수도 누르술탄도 이름을 다시 아스타나로 바꾸었습니다. 개헌안은 지난해 9월 최종 확정됐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전원 사면하기로 했습니다.
 
알마티 타워
 알마티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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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앞으로 카자흐스탄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11월 조기 대선을 치러 당선됐습니다. 2029년까지 집권을 이어가게 되죠. 물론 신헌법에 따라 재선은 불가능하지만, 2029년에는 무엇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말했듯 여기에는 지하자원의 역할이 컸습니다. 국제적인 가격 변동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지요. 지난해 시위 역시 그런 취약함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알마티의 주택가
 알마티의 주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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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는 사실 관심에서 많이 비켜나 있는 존재입니다. 당장 지난해 초 발생한 거대한 시위의 소식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았죠. 카자흐스탄이 지난 몇 년 동안 겪어온 정치적 진보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알마티의 평화로운 거리 위에서도,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모르는 사이 금세. 또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인식의 지평 밖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때로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아바이 광장
 아바이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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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빠르고 혼란스럽게 많은 것이 변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이곳은 반대였습니다. 천천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변화하는 나라입니다.

시위 이후 1년이 지났고, 제가 방문한 알마티의 거리는 평화로웠습니다. 도심의 공원에는 잔디밭 위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있었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알마티의 광장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세계지도 어딘가, 눈길이 잘 닿지 않던 도시에 제가 앉아 있다는 사실이 왠지 신기합니다. 그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고, 더 나은 삶을 바라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 봅니다.

언젠가 사람과 세상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오겠죠. 그럴 때면, 이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회상해볼까 합니다. 오늘의 생각을 돌이켜볼까 합니다. 평화, 변화, 그리고 알마티를요.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카자흐스탄, #카자흐, #알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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