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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9일 오후 검찰관계자가 대통령기록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검찰은 강제 어민 북송, 월성원전 조기 폐쇄 결정 등과 관련해 세종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나섰다.
 2022년 8월 19일 오후 검찰관계자가 대통령기록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검찰은 강제 어민 북송, 월성원전 조기 폐쇄 결정 등과 관련해 세종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나섰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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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전성시대. 이 상황에서 대통령기록관도 예외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 5월 10일부터 올해 5월 9일까지 1년간, 대통령기록관은 총 열한 번 압수수색 영장을 마주해야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해 한 번, 탈북 어민 강제 북송 관련해 두 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여덟 번이다. 영장이 집행된 일수로 헤아려보면 무려 193일이나 된다(사건별로 중복 포함). 심성보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어떤 날은 검찰에서 세 팀이 동시에 압수수색을 온 날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주목 받는 이유는, 주로 전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이어서도 있지만, 또하나 중요한 점은 압수수색의 대상이 주로 법적으로 엄격히 보호하고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지정기록물은 최장 30년까지 보호기간을 정해놓고 관리된다. 그 기간 안에 외부에서 해당 기록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거나(이건 개헌선으로 매우 문턱이 높다),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는 경우다. 따라서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을 손에 든 검찰에 의해 대통령기록관이 시쳇말로 자꾸 '털리게' 되면, 근본적으로 대통령기록물의 생산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기록을 제대로 생산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한 사건에 한번은 모르겠지만, 한 사건에 대해 영장을 여덟 차례나 발부하는 건 지나친 것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영장은 대전고등법원장이 발부했고,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영장은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했다. 그런데 단 한 차례 발부된 월성 1호기 영장의 집행기간은 2022년 8월 19일부터 2023년 2월 1일까지 거의 6개월이었다. 심 전 관장의 말을 들어보자.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은 횟수는 여러 번이지만, 이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판사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13일 인터뷰 하고 있는 심성보 전 대통령기록관장.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은 횟수는 여러 번이지만, 이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판사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13일 인터뷰 하고 있는 심성보 전 대통령기록관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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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1호기의 영장은 그 범위가 대단히 넓었다. 그래서 검찰이 영장 범위 안에 있는 1항 찾고, 2항 찾고, 3항 찾고, 또 다시 1항에 대해서 1시기 찾고, 2시기 찾고, 3시기 찾고… 이런 방식으로 6개월 동안 영장을 집행한 거다."

한마디로 검찰이 자유롭게 뒤질 수 있는 영장을 내줬다는 의미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은 달랐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보면, 영장은 여덟 번 발부됐지만, 각 영장이 집행된 기간이 대부분 하루 이틀이었고, 길어도 2주 안에 끝났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하나의 기록물을 보기 위해서는 영장이 세 번 필요하도록 발부되어 있었다. 첫 번째 영장은 기록물의 목록을 볼 수 있는 목록 열람 영장이었다. 그리고 나서 검사가 그 중 본문을 열람해야겠다는 기록물 제목을 적시해서 다시 영장을 청구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기록물을 볼 수 있게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영장은 그 기록물 본문의 첫 쪽만 볼 수 있는 영장을 발부했다."

첫 쪽만? 왜?

"보통 첫 쪽에 개요나 기록물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가 그 첫 페이지를 보고 진짜 이 기록물이 필요하다면 재차 청구하게 했고, 판사는 그때 필요성을 다시 판단하여 비로소 사본을 교부 받을 수 있도록 세번째 영장을 발부했다."

심 전 관장은 "대통령기록물법에 의하면, 국회의 의결이든 법원의 영장이든 최소한만 열람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면서 "서울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은 횟수는 여러 번이지만, 이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판사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기록관장으로서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 상황은 영장의 범위를 놓고 종종 다툼을 수반하게 된다"면서 "개인적인 바람은, 사건이 모두 종료되면 이번 서울고등법원장의 영장들이 공개돼서 다른 영장 발부에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대통령기록관, #심성보, #압수수색, #검찰, #고등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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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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