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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76)님의 꽃밭이야기 글쓰기
▲ 내가 심은 꽃씨가 이렇게 자랐어요 성심(76)님의 꽃밭이야기 글쓰기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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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는 떠나간 임을 기다리는 얼굴 / 날마다 한곳 만 바라보는 노랑 빛깔을 뜨는 예쁜얼굴 / 해를 기다려서 해바라기 인지 / 임을 기다려서 해바라기 인지 / 그 이름 누가 지었는지 궁금하네" - 정엽님(78)의 시 <해바라기 순정>의 1연입니다. 

지난주 어머님들께 내드린 글쓰기 숙제는 '내가 심은 꽃 이야기'였습니다. 올 4월 어느 날, 동네 빈 공터의 잡초들을 갈퀴와 호미로 정리를 하더니 꽃씨를 뿌리셨어요. 군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말랭이(산등성이의 지역방언)동네가 문화마을로 변장하면서 관광객의 발걸음이 많아지자 동네분들이 마음을 모았답니다. '시 행정이 무엇을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동네 얼굴을 우리가 이쁘게 꾸미자'라고요.

아침부터 하루내내 꽃씨 심을 땅을 다듬느라 어머님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때마침 새참을 드실 시간에 만난 저는 글방선생 대접만 받고 오동나무 아래에서 맛난 음식을 먹었네요. 그 꽃씨들이 자라서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로 얼굴을 보였길래 글방 수업에서 '시 쓰기' 숙제를 내드렸던 거지요.

"대나무 아래 코스모스가 총총히도 피었구나 / 그 사이에 코스모스도 얼굴을 내민다 / 코스모스 위에 잠자리도 앉았구나 / 너무나 아름다운 꽃밭이 이루어졌구나" - 덕순님(71)의 시 <마을 꽃>입니다.

성인 문해교육을 말랭이마을에서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째로 들어왔습니다. '기역 니은 디귿'의 자음과 '아야 어여 오요' 모음부터 시작했던 방자님(86)부터 평생학교기관에서 중등학교를 마친 흥자님(75)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배우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묶여진 말랭이 동네글방 학생들.
 
정엽님의 시 <해바라기 순정>을 낭독하는 아름다운 그녀
▲ 해바라기는 떠나간 임을 기다리는 얼굴 정엽님의 시 <해바라기 순정>을 낭독하는 아름다운 그녀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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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마다 수업 30분 전부터 오셔서 글방선생들을 기다립니다. 저는 문해교육 기초 교과서로 진행하고 동료선생은 그림책과 시를 수업교재로 선택합니다. 총 20여 차 수업과정을 마친 후 가을에는 당신들의 글로 된 멋진 시화전을 준비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4회차 정도의 수업을 남기고 시화전을 위해 다른 지역 문해 교실의 작품들이 실린 책도 보여드렸지요.

시화집 <꽃을 좋아한게 그림마다 꽃이여>에 실린 두 개의 글을 읽어드리면서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면 시가 되는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봄 되면 논에 언덕에 노물 캐러 갔어요. 쓴 노물을 캐러 갔는디 노물 캐다 삶아 먹으면 맛있어요. 노물 캐러 가는디 꼬맹이가 하나 따라올라고 그려. 오지마라고 내가 쫓아붓어요." - 김막동 할머니의 시 <논에 언덕에 노물캐러> 중에서.

"우리 영감을 다방에서 만났어. 나를 나오라고 하데. 나는 생전 시집을 안 간다고 맹세를 했는디 우리 오빠가 나를 중매해야겠다고 했는갑데. 다방에서 커피밖에 먹을게 있간이. 커피 먹고 이야기하다가 오라해서 무조건 영감 따라서 집으로 와브렀어." - 도귀례 할머니의 시 <다방에서 만났어> 중에서.

이 글을 듣고 난 어머님들은 당신들의 짝꿍 생각이 났는지 유독 화창하게 웃었습니다. 그런 후책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우리 이름이 책에 나온다고?' 등의 설왕설래가 있었지요. '글도 잘 못쓰는디, 그림은 또 어떻게 그리는가' 등의 걱정과 손사래가 언뜻언뜻 보였지만 글방 학생들의 결연한 의지를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안현미 시인의 <기차표운동화>를 함께 낭독하는 학생들
▲ 시 낭독시간 안현미 시인의 <기차표운동화>를 함께 낭독하는 학생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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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들! 이제는 제가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지요. 꼭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작년에 어머님들 인터뷰해서 어머님들의 인생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잖아요. 그리고 올해는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시의 형식과 그림을 빌어서 시화전을 해낼 거예요. 이 책들보다 더 멋진 이야기가 책 속에 담길거고요, 우리 말랭이마을의 주인인 어머님들이 시를 쓰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릴 거예요"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답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고 곧 이루어 질거라는 것을 모두가 믿고 있지요. 수업 때마다 매번 발전하는 학생들의 언어구사능력은 시는 물론이고 이러다가 소설 쓴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니까요. 이번주는 받침자로 '시옷, 지읒, 치읓'이 들어가는 낱자를 배우면서 글자의 소리는 비슷한데 다른 모양의 글자임을 배웠지요. 진짜 공부하는 맛이 난다며 교과서에 한 자 한 자 따라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 한방울 뚝 하니, 마음에 작은 우물 한 정이 생겼답니다.

풀을 베는 '낫', 낮과 밤의 '낮', 얼굴을 말하는 '낯'을 그림에 맞추어 글자를 채워 넣으면서 '그렇구나, 이 글자고만'이라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 어머님들. 또 이런 받침 글자가 들어간 단어 말하기부터 낱말 잇기 게임에 이르기까지, 분명 힘들고 어려울텐데도 어디에서 그런 배움의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지 가르치는 저도 신기했습니다.

동료 선생과 함께 안현미 시인의 <기차표운동화>를 낭독한 후 '신발'에 대한 글쓰기를 숙제로 받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주제어를 가지고 짧은 글짓기를 하는 일도 이제는 두려움의 장막을 저멀리 보내버린 것 같습니다. 배워서 안다는 것은 진짜 용기를 만들어주고요, 더불어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글방수업 때마다 저는 지식이 부족해도 온 마음을 다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 저에게서 강한 믿음이 나오겠지요. 한 사람도 결석없이 공부하는 어머님들께 다음 주에는 논어에 나오는 이 표현하나 알려드려야겠습니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꽃씨로 뿌려진 해바라기가 여름해를 다 모아 마을을 비춥니다
▲ 마을어머님들이 기다린 해바라기 꽃씨로 뿌려진 해바라기가 여름해를 다 모아 마을을 비춥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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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산말랭이마을, #동네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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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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