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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해자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세상을 떠난 혜빈이가 얼마나 밝고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오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분당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 고 김혜빈(20) 양의 가족과 친구의 인터뷰를 읽었다. 한국의 정서상 피해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가족분들의 의미 있는 결정에 마음에 울림이 일었다. 

벤치위에 박힌 그리운 이름 

뉴욕 인근의 섬에 살다 보니 가까운 곳에 걷기 좋은 보드워크(Boardwalk)가 깔린 해변들이 있다. 걷다가 뛰다가 잠시 쉬어가는 벤치에는 어김없이 작은 패가 박혀있다. 먼저 하늘로 간 가족을 기리는 마음으로 벤치를 기증하며 붙인 기념패이다.

오늘 앉은 벤치에는 가족들이 준비한 듯한 작은 화병이 매달려 있다. 사연도 제각각,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한두 줄에 그리움을 담은 이도 있고, 업적을 적은 꽤 큰 패도 있다. 
 
추모의 글이 제법 길게 쓰여진 기억의 기념패도 있고 간혹 꽃병이나 작은 인형을 메단 벤치도 만난다.
▲ 가족의 이름으로 기증된 벤치 추모의 글이 제법 길게 쓰여진 기억의 기념패도 있고 간혹 꽃병이나 작은 인형을 메단 벤치도 만난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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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뿐 아니다. 어디든 벤치만 보면 그리움을 담은 기념패가 박혀 있을 거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 공연장 에버리 피셔홀의 의자 등받이에도 이름 패가 붙어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의 이름으로 기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벤치가 하나 있다. 버지니아의 어느 해변이었는데, 16살의 아들을 하늘로 떠나보낸 가족이 기증한 벤치였다. 가족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열여섯 해 동안 그가 가족에게 준 큰 기쁨과 웃음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는지 새겨져 있었다. 

이곳 앞바다에서 '요트 항해 중 사고로 먼저 하늘로 떠난 아들 누구에게'

추모의 패 위쪽에 쓰인 글을 한참 동안 멍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그랬을 것이다. 자식이 바다에 빠져 사고로 죽었는데 이런 작은 쉼터와 벤치를 만들어서 기념을 한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자식은 가슴에 묻고 두고두고 슬퍼해야 하고, 이런 쉼터는 뭔가 업적이 있는 이를 위해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열 여섯살 소년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후,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당했는지 보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 어떤 존재였고, 어떤 기쁨을 주었고, 어떤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되뇌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벤치에서 그 기억과 이름을 나누는 문화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몇 년 전,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 슬픈 일이 있었다. 열세 살, 중학생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전에 그와 같은 반이었던 둘째 아이가 여러 날 동안 슬퍼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들이었지만, 동네 공동체와 학교는 이 사고를 덮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반대로, 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일들이 진행됐고, 학교에 함께 모여 추모식을 가졌다. '자전거 사고로 죽었다'가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의 야구팀에서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활약했는지, 뮤지컬과 하키도 즐겼고,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곧잘 바꾸었으며 남녀노소 누구와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장례 이후, 가족과 몇몇 기증자들이 학교에 작은 쉼터를 만들었다. 나무를 심고, 필드 방향으로 벤치를 만들고, 꽃을 심어 정원을 조성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잇는 사잇 길 곁,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학교 야구 필드와도 가까운 곳이다. 사고가 있었던 2019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시즌 첫 학교별 친선 야구 경기에는 가족중 한 사람이 시구를 하도록 초청 받고 있다. 가족은 13살 소년의 이름을 딴 소액의 장학금 만들어 매년 학교로 전해온다. 

아들 이름 딴 장학금... 서로를 기억하는 법
 
친구이자 아들, 학생이었던 한 소년을 위해 가족과 기증자들이 조성한 작은 기억의 정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후문 가까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에 만들어졌다.
▲ 학교 한쪽에 조성된 기억의 정원 친구이자 아들, 학생이었던 한 소년을 위해 가족과 기증자들이 조성한 작은 기억의 정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후문 가까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에 만들어졌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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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의 장학금이라 하니 생각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었을 때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체인이 벗겨져 길가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근처 집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자전거를 고쳐주었다. 같이 찾아가 감사 인사와 선물을 드렸는데, 아들 이야기를 꺼내셨다. 고등학생이었던 아드님을 자전거 사고로 먼저 하늘로 보내셨단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아이들만 보면 한참을 보고 있게 된다고 하셨다. 한 동네이니 우리 학교 학생이었을 테다. 

세월이 지나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작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아이 이름을 기억하셨던 건지, 우연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고쳐주셨던 그분이 주신 장학금이었다. 십수 년째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으로 소액의 장학금을 전해오고 계셨던 것이다.

장학금은 뭔가 장학 제단이나 기업에서 주는 목돈쯤으로 여겼었는데, 재학생이었던 아들의 이름으로 매년 그 후배들에게 전하는 소액의 가족 장학금이 훨씬 가치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더불어 살아 간다는 것'(gathering) 즉 사회적 연대의 힘도 종종 배운다.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상흔을 남긴 911 테러.  그 역시 잊으려거나 저 멀리 어딘가에 추모 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무너진 빌딩이 서 있던 그 자리, 맨해튼의 번잡한 거리위에 추모 공원을 세웠다. 당시 현장으로 달려갔다가 희생된 소방관들이 많았다. 때문에 뉴욕 인근의 소방서에는 그분들의 추모 동상이 세워진 곳이 꽤 많고 우리 동네에도 세 곳이 있다. 

'우리 동네 참전 용사와 전사자' 배너는 중요 공휴일에 종종 내걸린다. 우리의 이웃이었던 이들을 우리가 사는 오늘 이곳에서 잠시 바라보며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사회적 연대, 함께 슬퍼하고 함께 이겨내기 
 
우리 동네의 참전 용사, 순국 장병의 배너가 종종 걸린다. 마침 한국전 참전 용사의 배너를 발견해 사진으로 담았다.
▲ 참전 용사의 배너가 걸린 다운타운 우리 동네의 참전 용사, 순국 장병의 배너가 종종 걸린다. 마침 한국전 참전 용사의 배너를 발견해 사진으로 담았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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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1일, 고등학교 마칭 밴드 학생들이 탄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미국은 마칭 밴드가 학교와 지역의 주요 행사를 도맡아 하기에, 자부심이 큰 중요한 학생 활동이다. 선생님 한 분과 발렌티어 한 분이 돌아가시고, 십수 명의 학생들이 다치는 큰 사고였다. 지역 언론은 물론 CNN이나 abc 같은 주류 언론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뉴욕 주지사도 연일 성명을 내놓았다. 

우리 동네, 우리 아이들의 이웃 학교가 당한 사고였다. 지근거리에 있어 자주 그 앞을 지나던 학교였다.

그런데 연휴 동안 매일 학교로부터 공지 알람을 받았다. 지역구 의원,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 클럽 게시판, 학부모 게시판 등에도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사고를 당한 이웃 학교와의 '연대'를 위해 연휴가 끝나는 화요일에는 모두 이웃 학교의 상징인 초록색 옷을 입고 등교하자는 공지였다.

우리 학군의 상징은 빨강과 검정이다. 설마 초록색 옷 한두 개쯤은 있겠지 하고 방심했다가 등교 전날에야 옷장에 온통 빨강과 검정 옷뿐이라는 걸 알고는 헐레벌떡 집 근처 크레프트(수공예재료전문)가게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색색깔의 면 티셔츠를 쌓아놓고 팔기 때문이다. 그런데 2XL 두 장, 3XL 한 장, 큰 사이즈의 면티만 달랑 세 장 남아있었다. 긴 소매도, 후드티도 매진되고 하나도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거라도 사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서있는데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연대를 위해 초록 옷을 입는 학교들이 더 있나 보다. 이렇게 초록 옷이 동이 날 정도라니. 사고를 당한 학교는 얼마나 고맙고 든든할까. 세월호 생각도 났고, 이태원 사고 생각도 났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이겨내자는 연대의 마음. 그 외에 다른 무슨 목소리가 더 필요할까. 

떠나간 사람의 생을 가까이에서 더 깊게 기억하는 문화 
 
버스 전복 사고로 큰 슬픔을 겪는 이웃 학교와 연대하기 위해, 그 학교의 상징인 초록색 옷을 입고 등교하자는 공지와 게시물이 연휴동안 꾸준히 올라왔다. 지역 의원은 인근 학교의 교사와 스텦들에게 함께 초록옷을 입으며 연대해달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여러 학교가 참여했다. 우리 아이들도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고 초록 옷과 소도구를 준비해 연대에 동참했다.
▲ 슬픔을 겪는 이웃 학교와 연대하기  버스 전복 사고로 큰 슬픔을 겪는 이웃 학교와 연대하기 위해, 그 학교의 상징인 초록색 옷을 입고 등교하자는 공지와 게시물이 연휴동안 꾸준히 올라왔다. 지역 의원은 인근 학교의 교사와 스텦들에게 함께 초록옷을 입으며 연대해달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여러 학교가 참여했다. 우리 아이들도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고 초록 옷과 소도구를 준비해 연대에 동참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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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떠난 이를 향한 마음이 달라지게 됐다.  먼저 떠난 사람과 공유했던 시간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곧 추석이다. 제사나 차례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문화라는 게 한 번에 다 바뀔 수는 없겠지만, 떠난 이를 기리는 방법을 조금씩 바꿔보면 어떨까. 애도의 표현을 곡소리에서 따뜻한 기억 나눔으로, 저 멀리 어딘가에 그들을 떼어놓기보다 우리 곁 이웃의 쉼터로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 가면서. 나무 한 그루로, 의자 하나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죽음과 이별이 주는 무거움은  덜고, 먼저 떠난 이들의 생을 기억하며 따뜻한 미소쯤 나눌 수 있는 시대가 이제쯤 되지 않았나 싶다. 밝고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고 김혜빈양을 더 진하게 기억하는 것을 시작으로.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추모, #생을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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