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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 2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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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 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했다. 한국은 165개국이 참여한 1차 투표에서 고작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당초 한국은 1차 투표에서 사우디의 가결 정족수 3분의 2를 저지해 결선투표에서 역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사우디 119표, 한국 29표, 이탈리아 17표로 결선투표를 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한국 언론들은 세계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자 다양한 원인을 이유로 내놓았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한국 언론의 가스라이팅 결과'라며 언론의 보도 행태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언론들은 투표 직전까지도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백중세'(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형세)라고 보도하거나 '빠르게 추격', '판세 뒤집혀'라며 희망 회로를 돌렸다(관련기사: "대역전극", "석패"... '희망회로' 돌린 엑스포 보도 참사). 

언론 보도의 문제점과 세계 엑스포 유치 실패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한국 언론, 검증 없이 대통령실 말만 받아쓰기
 
 세계엑스포 부산 유치 관련 국내 언론 보도들
  세계엑스포 부산 유치 관련 국내 언론 보도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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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엑스포 판세 '부산 70, 리야드 70' 백중세" 

지난 8월 16일 <부산일보>가 단독이라며 내놓은 엑스포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한국의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가 각각 70표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소스는 대통령실이었다.  

<부산일보>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 지지를 선언하거나 우호적인 국가 25개국이 우리나라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물밑으로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이탈리아를 지지했던 유럽 국가 가운데 20여개 국 이상이 우리에게 투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지지 25개국과 이탈리아 지지 20여 개국을 합치면 최소 40표였다. 하지만 한국은 고작 29표를 득표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말이 거짓이거나 엉터리였다는 증거이다. 

한 달간 60개 이상 회담… 대통령실 "100년간 외교사에 없어"

<뉴시스>는 지난 9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브리핑을 인용하면서 윤 대통령이 최근 한 달간 60개 이상 정상회담을 한 것과 관련해 "그런 정상은 100년간 외교사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김 차장은 "(정상들의) 양자 회담은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상대 국가를 선별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150개 이상의 국가 정상들과 일일이 양자 회담으로 접촉하면서 엑스포 지지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150개 이상의 국가 정상과 만났음에도 엑스포 유치에 소극적이었던 이탈리아보다 고작 12표 더 얻었다. 외교적 성과가 거의 없거나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대통령실의 브리핑과 고위 관계자의 말을 아무런 검증 없이 보도했다. 소위 말하는 '받아쓰기'만 한 셈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검증하는 언론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보도였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비를 정부가 대량 사용했는데, 그 집행 대상이 언론이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든다"며 "정부의 해외 순방과 외교 활동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음을 언론인들이 알고 있었을 텐데 대패가 아닌 석패라는 등 무책임한 보도가 쏟아졌다"고 지적했다.

부산 엑스포 참패의 진짜 원인은? 
 
지난 8월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은 세계잼버리대회 참가자들이 물웅덩이 위의 플라스틱 팰릿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모습을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지난 8월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은 세계잼버리대회 참가자들이 물웅덩이 위의 플라스틱 팰릿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모습을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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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세계 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한 원인을 꼽자면 가장 먼저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파행일 것이다. 170개국 4만여 명이 참석한 국제 행사였지만 준비 부족과 안일한 대처로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실패는 엑스포 유치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잼버리는 잼버리이고, 월드 엑스포는 월드 엑스포다.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겼다. 

영국 매체인 디 아티클(The Article)은 '2030 엑스포 결정의 날' (World Expo 2030: the day of decision)이라는 기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훨씬 낫다면서 "부산이 엑스포에 적합한 경쟁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규모 국제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에 대해서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재앙으로 변하면서 그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하면서 "4만 3000명의 청소년도 관리하지 못한 나라에서 28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이는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할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나라가 많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의 영접을 받은 뒤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의 영접을 받은 뒤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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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엑스포 유치 실패의 두 번째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이다. 윤 대통령은 세계 엑스포 유치 결정을 한 달여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오마이뉴스> 오태규 기자는 "윤 대통령의 방문으로 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훨씬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투자를 해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갑이고, 투자 유치를 사정하는 대통령이 을"이라며 "한국 대통령이 유치 결정 한 달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것은 다른 나라가 보더라도 뭔가 '물밑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낳기 아주 좋은 소재"라고 지적했다(관련기사: 윤 대통령, '부산 엑스포 경쟁국' 사우디 방문 적절했나).

세계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대다수 언론은 '오일 머니' 때문에 패배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엄청난 오일 머니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영업사원 1호'를 강조하며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윤 대통령의 행보는 유치 실패를 예견했거나 아무것도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종이학 접기? 70년대식 민·관 동원 유치 행사

세계 엑스포 유치 참패 이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며 처음부터 불리한 여건으로 시작했다"면서 전임 문재인 정부의 늦장 대응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난 27일에도 "안타깝게도 문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늦게 출발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입장문에서 "엑스포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정하고도 사우디보다 1년 늦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야 본격적인 유치전에 나선 게 뼈아픈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 [부산IN] 부산 구청 공무원의 현실... 엑스포 유치, '종이학 접기'에 동원된 아동과 공무원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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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년여 동안 부산에 거주하며 취재를 했다. 당시 부산시민들은 엑스포 유치에 관심이 없거나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부산시는 구시대적인 '종이학 접기' 같은 행사 등을 하며 공무원과 언론을 동원해 부산엑스포 관련 행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위 동영상 참고).  

경제효과 61조를 강조하며 BTS까지 동원하고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29개 국가만이 한국을 지지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무능이 가장 큰 원인이다. 아울러 검증 없이 홍보 기사만 남발한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세계엑스포, #부산엑스포, #언론, #윤석열, #받아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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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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