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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재판이 오는 12월 7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김용균 재판은 2022년 2월 10일 제1심에 이어 2023년 2월 9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대표이사는 1, 2심 모두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는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책임도 인정되지 않았고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도 1심에서 유죄 판결받은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산안법 위반 행위에 대해 2심에서는 모두 무죄로 선고되었습니다. 한국서부발전 임직원은 아무도 산안법 위반의 책임을 지지 않았고 다만 태안발전본부의 중하위급의 관리자들만이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인정되었습니다.

이에 재판정 밖에서 투쟁을 이어오던 유족과 동료, 시민들이 마지막으로 대법원 재판부에 진짜 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보내려고 합니다. - 기자말  

 
산재, 재난 유가족, 피해자, 종교, 인권,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재계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훈 작가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세월호참사 피해자 최순화씨 등이 참석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김훈 작가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산재, 재난 유가족, 피해자, 종교, 인권,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재계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훈 작가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세월호참사 피해자 최순화씨 등이 참석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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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님의 참혹한 죽음의 소식이 세상으로 알려지고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접근을 시작했을 때 저는 제 친구 생각이 정말 많이 났습니다. 제 친구 진균이는 2005년 철도공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선배 누나와의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조치원역 철도 입환 작업 중 새벽녘 달려오는 기차에 치어 죽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사고가 일어났는지 사고 직후 넋이 반쯤 나간 유족과 예비신부와 함께 철도노조 측을 찾아 설명을 들었을 때 마음이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사고가 비일비재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특히 그랬습니다.

사실 정확히 지켜본 이가 없으니 그 사고를 추정할 뿐이었습니다. 워낙 이런 사고가 많이 난다는 이야기와 함께 노조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2인 1조 작업자 둘이 해야 하는 작업인데 한 명은 기차가 오는지 망을 보아야 한다고, 그런데 인력이 모자라 망을 보는 신호수를 두지 않고 그냥 일하도록 하다가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인력이 부족해 정비작업을 위해서 이곳저곳 기차에 뛰어 타고 뛰어내리는 비승비강 작업을 하는데 그건 불법이지만 현장에서 부족한 일손에 어쩔 수 없이 행해지기도 한다고요. 그러다가 순식간에 기차에 빨려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 진균이가 정말 어떻게 작업하다가 기차에 치여 허리가 두 동강이 나서 죽었는지 2005년 당시만 하여도 더 이상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뉴스 자막에 한 줄 "조치원 역사 작업인부, 기차에 치여 사망"이란 보도가 끝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비슷한 사고는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노동조합뿐 아니라 나부터, 우리 사회가 매일같이 6명씩 반복되는 산재 사망이 더는 없도록 싸우고 지혜를 모았더라면, 진작에 2인 1조 작업이 되고 인력이 충원되었더라면, 내 친구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처음으로 '안전'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사람이 김용균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김용균의 죽음에 큰 빚을 졌습니다.

저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로 알려진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노무사이기도 합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은 김용균님이 일한, 까만 석탄 가루가 날리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 반대로 '먼지' 하나 없는 '클린룸'에서 일하는 환경입니다. 먼지 개수조차 통제하면서 미세회로를 새긴 반도체 칩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독성 강한 세정 약품을 비롯해 수백에서 수천 종의 화학물질이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됩니다.

반도체 산업은 첨단산업이기 이전에 집약적인 화학산업으로 안전보건에 특히 더 주목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산업입니다. 클린룸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백혈병이나 림프종, 뇌종양과 같은 질병 산재 피해를 입고 있지만, 기업의 영업비밀 주장과 국가핵심기술 주장에 가려 진상규명이 어렵습니다. 아직까지도 어떤 공정에서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제대로 밝혀지지도, 기업이 정보를 내놓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산재 사망으로 추정되는 병은 있을지언정 사업주를 처벌해 달라고 싸워오지 못했습니다. 억울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업주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보니 반도체 대기업들은 산재를 더욱 은폐하고 책임을 면피하였고 피해자들을 입막음만 하면 된다는 회유책으로 참 힘들게 했었습니다.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의 입증 수준을 낮춘 행정소송을 통해 간신히 산재 인정을 받아왔지만 그마저도 증거를 대는 것이 녹록지 않은 처지가 노동자나 유족의 처지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 본 피해자들은 내 피해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정의로운 판결을 받으면 그것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에 이번 판결에 대하여 같은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김용균님은 죽으러 일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대법관님도 이미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동시대를 사는 한국의 시민들도 김용균님의 죽음 이후 중대재해 발생의 원리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산재 사망이 어느 한 개인의 실수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안전 문제에 책임을 떠넘기기 좋은 원·하청 구조, 인력 부족, 생산성만 강조하는 기업문화, 가장 큰 이윤을 벌어들이는 쪽에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는 불평등 속에서 계속 되풀이된다는 것을요.

따라서 저는 대법관님이 우리 시대에 억울하게 죽은 산재 노동자의 상징이 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원청 대표이사에게 유죄를 내려줄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김용균을 비롯해 억울하게 일찍 떠난 모든 산재 사망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을 함께 닦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의로운 판결로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2023. 11. 28.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이종란 올림

[호소문①] 김용균 죽음, 판결 바로잡을 곳은 이제 대법원뿐 https://omn.kr/26la0

태그:#김용균재판, #대법원, #중대재해, #산업재해,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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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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