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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가족모임에서 형부의 2024년 버킷리스트 첫 번째가 '할아버지 되기'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더랬다. 결혼 5년 차에 접어드는 조카 부부의 과감한 결단과 적극적인 협조가 있지 않고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식구들 모두는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 낳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우리 세대에게 아이 없이 사는 조카 부부는 왠지 불안정해 보였다.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전적으로 본인들이 결정할 문제이기에 조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만날 때마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슬쩍 내비치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 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있게 살고 있는 조카가 아이 없이 사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조카가 며칠 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깜짝 임신 소식을 전했다. 임신 초기에는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서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 알리고 싶었다며 벌써 11주가 되었다고 했다.
   
딸이 사촌언니에게 받은 복권. 신세대는 임신소식을 전하는 방법도 유쾌하다.
 딸이 사촌언니에게 받은 복권. 신세대는 임신소식을 전하는 방법도 유쾌하다.
ⓒ 심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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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기다렸던 소식이었고, 막내 조카가 태어난 이후로 20년 만에 집안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릴 걸 생각하며 가족 모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34년 전 조카가 태어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조카가 아기를 가졌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집들이를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조카의 임신 소식으로 모든 화제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맞춰졌다. 여자들에게 았어서 임신과 출산 얘기는 남자들의 군대 얘기만큼이나 밤을 새워도 모자를 만큼 그 무용담이 넘쳐난다. 나와 언니(조카의 엄마), 동생은 이미 20~30년 전에 겪었던 출산 경험을 어제 일인 양 생생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조카에게는 요즘 젊은 세대의 임신과 출산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가장 격세지감이 느껴진 대목은 산후조리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으며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우리 때와는 다르게 요즘은 대부분 산후조리원에 들어간단다.

'산후조리원 동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젊은 산모들 사이에서 산후조리원은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 정도 지내는데 적게는 몇 백만 원에서 많게는 거의 2천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식사는 물론, 체형교정과 마사지까지 산모를 위한 각종 서비스가 제공되고, 산모가 온전히 몸조리할 수 있도록 아기를 엄마와 분리해 따로 돌봐준다고 하니 요즘 산모들은 참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예전에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것을 대신해서 받는 서비스이니만큼 친정엄마가 산후조리원 비용을 대주는 경우도 있다고.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딸만 둘인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아기용품들에 관한 이야기도 서로 물려받고 물려주며 아이를 키웠던 우리 때와는 사뭇 달랐다. 고급 수입 유모차를 비롯해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아기용품들은 그 가격이 엄청 비쌌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에다가, 아기를 많이 낳지 않아 물려받을 곳도 마땅히 없는 요즘 젊은 부모들은 그 비용이 무척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또, 결혼식만큼이나 성대하게 치러지는 아이의 돌잔치와 걷기도 전부터 시작되는 각종 유아 놀이 활동과 사교육까지, 요즘의 육아 문화에 대해 듣고 있자니 신혼부부들이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비용뿐만 아니라 육아에 대한 인식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우리 세대와 많이 달랐다. 모유 수유 때문에 산모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아기를 따로 재워야 한다고들 생각한단다. 아기와 함께 자며 밤중에 수시로 일어나 젖을 물리는 것이 당연했던 우리에게 젊은 엄마들의 이런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요즘은 남편들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여성들의 수고가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고 느껴졌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나는 밭 매다가 애 낳았다"고 하시던 말씀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초보 엄마들은 육아에 대한 부담을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여행 다니는 걸 유독 좋아하는 조카도 아이를 낳으면 가벼운 외출조차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거라며 심란해했다.
 
'부모'라는 거룩한 인생에 첫발을 내딛는 조카 부부에게 넘치는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부모'라는 거룩한 인생에 첫발을 내딛는 조카 부부에게 넘치는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 ⓒ erstbelichtung, 출처 Un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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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젊은 부부들이 왜 출산을 기피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시대에는 정보들이 넘쳐나 젊은이들이 경험하기도 전에 미리부터 겁을 내는 것 같다. 또,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생활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무척 꺼리는 것 같다. 나도 요즘 시대에 그 나이를 살았더라면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한 생명을 낳아 키워내는 것은 물론 아주 길고도 힘든 일이다. 돈도 많이 들고, 제약도 많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뒤돌아보면 자식을 낳아 키운 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부모가 되고나서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귀한 감정이다. 

많은 고민과 갈등을 이겨내고, '부모'라는 거룩한 인생에 첫 발을 내딛는 조카 부부에게 무한한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임신과출산,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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