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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고령화라는 현실에서 경제활동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부산은 광역시도 중 인구감소가 두드러진 곳이어서 지방소멸이라는 이슈에 자주 회자되곤 하는데, 부산의 지속적인 인구감소와는 대조적으로 이주민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이주민은 부산인구의 2.3%인데 공단지역과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 거주비율이 높다.

지난해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실시한 <부산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실태와 지원방안>을 위한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부산지역 이주민 상담센터, 노동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민들을 만나 730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20명에 대한 면접조사를 실시하였다.
 
실태조사 결과, 부산 지역 이주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에서 장시간 일하며, 건강이 손상된 채 일하고 있었다.
 실태조사 결과, 부산 지역 이주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에서 장시간 일하며, 건강이 손상된 채 일하고 있었다.
ⓒ <부산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실태와 지원방안>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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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보고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 비중이 전체노동자 11.9%, 이주노동자는 33.6%이다. 이번 부산지역 실태조사에서는 주 52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이주노동자는 48.6%로 전국 통계보다도 훨씬 높았다. 실태조사에서 주 52시간이 아니라 50시간 이상으로 질문했다면 더 높아졌을 수치다.

건설업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는 "작년부터 1년 반 동안 휴가 써본 일이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이 노동자는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휴일은 2주에 하루뿐이었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휴가조차 써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는 "원래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혼자 하고 있어서 너무 바쁘다. 기계 4대를 혼자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한 회사에서 10년을 일했는데도 임금은 근속이 짧은 한국인보다 적고 승진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낮에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공장에서 야간노동을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의 규모는 30인 미만 55.9%, 50인 미만은 76.4%에 달했다. 교대근무를 하는 비율은 23.7%, 야간근무가 5.2%로 그 비중이 매우 높았다.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는 "저녁 7시 반부터 아침 7시 반까지 일한다. 아침에 퇴근하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아이가 아플 때는 병원에 데리고 간다. 집에 와서 잠을 자려고 하면 동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설친다"고 했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예외일리 없지만 그 어려움의 강도는 훨씬 높았다.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데는 이주아동에 대한 보육료 차별이 있었다. 한국 국적의 아이들은 어린이집 보육료를 전액 지원받지만 외국국적 아동은 1인당 월 30~50만 원에 이르는 보육료를 내야 한다. 이에 경기도와 인천시, 경상남도 등은 조례를 제정해 이주아동 보육료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으나 부산시는 관련 지원책이 전혀 없다.

강도 높은 노동과 높은 불안정성

작은 사업장의 열악한 환경,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 야간노동·교대노동은 모두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해치는 요소다. 업무로 인한 사고와 질병은 4명 중 1명이 겪었고, 건설업 종사자의 경우 47%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사고와 질병 이유에 대해 이주노동자 스스로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일을 빨리 하라고 해서, 근무시간이 너무 길거나 휴식시간이 부족해서'의 순으로 응답하였다. 모두 높은 노동 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치료비를 본인이 모두 부담한다는 응답이 49%로 절반에 달하고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16%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는 "입원할 정도가 아니면 치료비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다쳐서 일을 못하는 기간의 임금도 월급에서 뺀다. 그래서 아파도 일단 출근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이주민들은 사업장 변경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열악한 노동조건과 산재 발생 위험, 폭언과 폭행, 직장내 괴롭힘을 피해 이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계약과 체류연장의 열쇠를 사업주가 쥐고 있어 위험해도, 부당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만하다. 고용허가제(E-9)로 근무 중인 미얀마 노동자는 프레스기계의 센서가 고장 나 두렵다. 그렇지만 사업장 변경이 쉽지 않을뿐더러 향후 장기 취업비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한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며 사업주가 동의를 해주어야 하기에 그저 긴장을 놓지 않고 참으며 일할 계획이다.

어렵사리 장기취업이 가능한 E-7-4 비자를 취득하더라도 열악함과 종속성은 피할 수가 없다. 숙련기능인력(E-7-4) 자격의 파키스탄 노동자는 "무릎 연골이 파열되어 6개월은 쉬어야 하는데 4개월 만에 산재 요양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출입국에서는 산재로 일을 못해도 기준 임금액에 미달하면 비자연장이 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뭐가 제일 중요한 건가?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출입국에서는 그건 당신 문제지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출신의 영어강사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원에서 폭언과 폭력과 같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원장이 이적동의서를 안 써주면 학원을 옮길 수가 없다"고 한다.

어떤 곳이어야 살고 싶은 도시가 될까?

정부와 지자체의 제도와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일시적으로 머무는 노동자', '돌아갈 사람'으로 취급하지만 이주민의 정주화 경향은 각종 통계자료와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이주민이 정주하며 노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거와 의료, 보육과 교육, 문화체육 등 생활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생애주기를 고려한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고 보다 확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꼽은 개선사항 1순위는 '노동자를 위한 복지혜택에 이주민도 동등하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실태조사는 '부산시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국적이나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권리들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부산시 이주민 정책의 기본원칙이 되어야 함을 제언했다.

사업장 변경제한, 지역이동 제한과 같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주민에게 족쇄를 채워 소멸위기의 지방을 회생시킬 수 있을까?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인권과 다양성이 숨쉬는,이주민을 비롯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어야 마을이, 도시가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그루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부산이주노동자실태, #이주노동자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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