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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민심이 '흉흉'하다. 지난 2일 인천지법 13민사부(이동기 부장판사)가 진행한 한국지엠 노동자 7769명의 통상임금 1심 판결에서 사실상 패소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통상임금 포함 여부는 모두 인정되나 노사합의나 신뢰 관계에 바탕을 둔 신의칙에 반해 허용될 수는 없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미지급 법정수당을 지급할 경우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해 새로운 재정적 부담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현재 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재판 이후 개최된 제45년 차 정기대의원대회의 결정에 통상임금 소송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22일 이에 대한 의견을 14년 동안 통상임금전담위원으로 활동해온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창원지회 박태엽 대의원에게 물었다.


박태엽 위원 '한국지엠은 적자 기업이 아니라 적자 기업으로 만들어진 회사'
 
통상임금 소송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박태엽 통상임금전담위원 통상임금 소송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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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해서 억울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품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줘서 미안합니다. 사실 2차 소송 마지막 결심재판에서 담당 판사에게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도대체 왜? 한국지엠 일급제 생산직 조합원들에게만 이렇게 냉혹하게 철저히 그 '신의칙'을 적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산직 조합원들에게 체불임금을 주면 회사가 망한다고 하면서 2023년 1월 회사는 통상임금소송에 참여도 하지 않은, 그것도 법적 임금 지급시효가 3년이 훨씬 지난 사무직 1800여 명에게 584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지급하였습니다. 이는 2023년 5월 법원에 문서제출 요구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한국GM은 결코 적자 회사가 아닙니다. 한국지엠은 적자 회사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대우자동차를 헐값에 인수한 GM은 지난 22년 동안 온갖 수법을 동원해 악랄하게 한국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수탈해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지엠 통상임금 소송은 단순히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차원을 넘어 22년 동안 GM 자본의 납득할 수 없는 경영행태를 밝히는 소송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GM 자본이 수십 년 동안 적자라고 말은 하지만 적자인 회사를 GM이 운영할 리가 없습니다. 많은 사례를 찾아 사실을 근거로 재판부에 제출하였지만, 전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이번 통상임금 소송 판결의 구체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통상임금 소송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박태엽 통상임금전담위원 통상임금 소송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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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소송에서의 대법 판결 있었음에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번 2차 소송 판결문을 보면 10년이 지난 2013년 12월 18일 갑을오토텍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해 선행 사건인 남상욱 외 4명의 대법원 패소 판결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청구금액에 있어 1만643명을 판단기준으로 2384억 원으로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원고들이 2018년 희망퇴직으로 인해 2874명이 소송에서 제외돼서 7769여 명으로 원고 인원이 줄었습니다. 저희는 청구금액을 1785억 원으로 재판부에 인용을 요구했었습니다. 어떤 근거로 재판을 진행했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또한, 2017년, 2019년, 2021년 대법원에서는 '신의칙'에 관련하여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들을 내놓고 있으며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할 때는 사실심 변론 종결 당시(판결 직전 시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 등과 같은 유사소송에서의 대법원 판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려 되지 않습니다. 아니 법원은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 전담위원은 판결 이후 가슴 속이 답답했는지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의 숨 고르기 이후 말을 이어갔다.
 
통상임금 소송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박태엽 통상임금전담위원 통상임금 소송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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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닙니다. 법원은 2011년~2021년까지의 당기 순이익 누계액이 마이너스 5조1153억 원이라는 회사 측 주장만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왜? 그렇게 적자가 되었는지는 그 원인은 무엇인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수차례 준비서면을 통해 의도적인 비용 떠넘기기 사례들을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그 또한 전혀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회사의 주장대로 수년 동안 수조 원의 적자가 계속됐다면 글로벌GM이 가만 있었겠습니까? 한국에서 철수해도 12번은 했을 겁니다.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2014년 초 한국지엠 유럽, 러시아 철수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럽 철수의 모든 비용을 한국지엠에 떠넘기면서 본격적으로 부실기업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연구개발비, 높은 이자율, 로열티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해 한국지엠에서 돈을 빼내 갔었습니다."

 
2023년, 그는 노동조합 대표 중 한 사람으로서 회사 측과 임금협상에 참여했었다. 박 위원에게 그때 당시 교섭대표로서 경영진들에게 문제 제기했던 사안들을 말해달라고 물었다.
 
2023년 임금협상에서 노측 교섭대표로 참여했다.
▲ 박태엽 통상임금전담위원 2023년 임금협상에서 노측 교섭대표로 참여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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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 투자에 각종 비용 청구 등... 적자 유지" 주장

"'생산직 조합원들에게 체불임금을 주면 회사가 망한다고 하니, 아무리 차를 많이 잘 만들어도 회사가 적자라서 돈을 주지 말라고, 법원에서 신의칙이라는 이상한 법리를 정부와 사법부까지 동원되어 GM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렇다면 돈을 줘도 망하지 않는다' '한국지엠은 적자 회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밝히면 되는 것 아닌가를 경영진에게 물었습니다.
 
GM이 한국지엠에서 돈을 빼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물량을 많이 만들어 수출할 때는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상품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 변화에 따른 시장 상황이 바뀌면 한국지엠 공장운영(2010년 12월 8일 산업은행과 GM이 맺은 CSA 비용분담합의 이후 한국지엠은 더는 독립적인 회사가 아닌 글로벌GM의 하나의 공장으로 전락하였다)을 명분으로 각종 비용청구로 뜯어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한국 철수를 미끼로 정부와 산업은행을 협박해 국민 세금까지 받았습니다.

특히,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당시 엄청난 수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생상품으로 포장된 손실로 수십조 원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런데도 2023년 3월 다시 파생상품 관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밖에도 2012∼2013년 2조1000억 원에 달하는 우선주 조기상환을 한국지엠에 떠넘기고 그 돈은 GM에서 빌려주고 5.3%에 달하는 고리대금, 현대, 기아는 물론 삼성, 쌍용차보다 높은 원가율, 수출 차량에 대한 이전가격조작, 로열티, 회계조작, 직영서비스센터 부지 매각대금 빼돌리기 등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2023년 2월 GM 주주총회가 끝나고 3월에 2005년부터 2013년까지 그렇게 손실(수조 원에 이른다. 특히 2008∼2009년에 있었던 GM 부도로 인해 그 피해는 엄청났다)을 많이 봤던 파생상품에 2023년 3월에 계약한 사실을 2023년 회계감사보고서 분석과정에서 발견하고 질문했지만, 처음에는 계약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증거 자료를 제시하니 인정은 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약 내용(1달러당 얼마의 원화로 계약했는지?)은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 위원은 2023년 임금협상을 회상하며 지금도 이해할 만한 답변을 하지 않는 경영진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지엠 통상임금 소송의 쟁점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물었다.

"GM 자본은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 시기에 맞춰 5년 동안 8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는 거짓 투자 약속을 하면서 한국지엠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GM 회장과의 면담 석상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어 9월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통상임금 해결을 위한 전원합의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12월 18일 양승태 대법원장을 앞세워 '신의칙'이라는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 냅니다. 2014년 1월 10일 자 서울신문에 따르면 1월 9일 외국인투자기업 대표 신년 간담회 자리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확인까지 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지엠 통상임금소송에서 GM 자본과 박근혜 정부 그리고 사법부의 사법 농단이 시작되게 됩니다."


조립노동자, 정비사, 대의원, 통상임금 전문위원으로 32년간 근무한 베테랑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박태엽 통상임금 전담위원은 1992년 7월 당시 대우조선국민차 사업 부문 대우국민차(현 한국지엠 창원공장) 입사해 현재 한국지엠 직영 창원서비스센터에서 차량 정비 업무를 맡고 있으며, 창원지회에서 대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창원공장은 대우그룹이던 1991년 당시 대우국민차 창원공장은 대우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없었던 공장이었다.
 
대의원으로서 조합원을 위해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 박태엽 통상임금전담위원 대의원으로서 조합원을 위해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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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장 생산직 직원 대부분이 군대를 막 제대한 사회초년생들로 구성돼 있었고 직업 훈련생 신분으로 국내, 외 연수를 1년 동안 수료해야 입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현장 분위가 거의 군대식으로 운영됐습니다. 향우회 등 같은 사모임에 대한 회사관리자들의 감시하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노무관리가 이뤄졌습니다.

공장 초기에는 그런 식의 현장 감시와 통제가 될 수 있었지만 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설립되는 상황에서 대우국민차 또한 대우자동차와 지역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2000년 3월 26일 창원공장에서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당시 부서대표로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모임에 참석하면서 노동조합이 설립이 되자 부서 대의원으로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무노조 시절에 알지 못했던 임금과 단체협약, 근로기준법 등을 학습하면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산재, 개인 휴가, 임금, 복지 등)조차도 그동안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원상회복 시키는 활동을 하면서 특히, 임금성에 관련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비사, 대의원, 통상임금전담위원으로서 일하고 있다.
▲ 박태엽 통상임금전담위원 그는 정비사, 대의원, 통상임금전담위원으로서 일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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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나라도 먼저 해야"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지금은 내가 존재했을까? 과거에 많은 선배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묻는다고 했다.
 
"돈도 안 되고, 집에서도 싫어하고, 다치고 힘 드는 이 일을 왜 하냐"고. 누군가는 지금도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선배들을 말 떠올린단다.

"박태엽 동생,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잖아요.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뒤에 또 들어오는 후배들이나 우리 자식들을 위해 누가 해야 한다면 나라도 먼저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앞으로 5년 10개월 남은 정년까지 마지막으로 작은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진정한 동반자로 인정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조합원들에게 신뢰받는 회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10년 전 GM의 일방적인 한국지엠 구조조정 과정에서 너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조합원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그:#한국지엠, #GM, #통상임금, #박태엽, #창원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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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대외정책부장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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