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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되풀이하곤 하는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올해에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한 반의 아이들을 책임지는 담임으로서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교사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건 단지 나만이 느끼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해를 달리할수록 거칠어져 가고, 그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의 권한은 갈수록 그 위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올해에도 나는 역시 어떤 아이들을 맡게 될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물론, 그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나는 학교 생활 감독자나 성적 관리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 또한 그 아이들이 그저 말썽만 피워대고 제멋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중뿔난 청춘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모두 다 자기 잘난 멋에 사는 시시껄렁한 놈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년 내게 어떤 아이들이 배정될지 그것이 늘 궁금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 해의 내 운명이 바로 그 아이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에 나는 2학년 담임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담임으로서 지금까지의 나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운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반 배정표에서 녀석의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오로지 담임으로의 내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빗나가지 않게 건사하고, 반 성적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관리 감독하면서, 그 아이들 모두 한 해를 별탈없이 지내도록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실 그 사십여 명의 아이들 중에 단지 몇 명의 아이들만이라도 제 길을 갈 수 있게끔 지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큰 욕심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한다면, 그저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반 배정표에 적힌 녀석의 이름을 발견하고, 한동안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은 그 이름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독히 기분 나쁜 존재였다. 지난 해 학교 안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이 거의 모두 녀석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녀석이 학내 불량 써클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소문은 입증되지 않았다. 녀석은 혼자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교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하지만 녀석이 정말 혼자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랐다. 녀석이 학교 밖의 조직폭력배와 끈이 닿아 있다는 또 다른 소문이 떠돌기도 했지만, 그 소문 역시 입증되지 않은 또 하나의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녀석은 더 더욱 불쾌한 놈이었다. 불량써클의 짱으로 주먹 깨나 쓴다는 놈들조차 꼬리 감춘 개처럼 녀석을 피해 다녔다. 그만큼 녀석은 그 세계에서 그 나름의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 배정표에서 녀석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담임으로서의 내 운명은 이미 결정나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배어나는 땀을 닦고 또 닦았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으로 지난 십여년간의 교사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동안 수백여 명의 아이들이 내 지도를 받아 왔다. 그 아이들 중엔 끝까지 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한 아이도 있었고,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도 있었으며, 학년 내내 말 한 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한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 중의 누구도 내 운명을 바꾸어 놓은 아이는 없었으며, 나는 그 어떤 불상사에도 의연히 버텨 왔다. 그런데도 나는 반 배정표에서 녀석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는 순간, 너무나 암담한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녀석을 어떻게 지도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교사의 직감으로, 나는 녀석이 지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경우, 흔히 교사와 학생 사이엔 일종의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녀석과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다른 교사들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녀석의 담임이기를 거부했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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