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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내가 소문을 통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형편이 없는 놈이었다. 교사 생활 십여 년에 녀석과 같은 종자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교사 경력 십여 년이면, 별의별 놈을 다 만나게 마련이다. 나는 실제로 학생이 휘두르는 유리 파편에 손목을 잘릴 뻔한 적이 있었으며, 아이들 지갑에 손을 대다가 나중에는 교사 지갑까지 탐을 내던 놈의 사타구니 냄새까지 맡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녀석과 같은 종자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 녀석은 이제 갓 열일곱 살인 주제에 벌써 얼굴에 칼로 그은 듯한 흉터가 있으며, 어깨에는 또래의 아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장미 문신까지 있었다. 지난 해, 일학년이었던 녀석에게선 볼 수 없었던 흉터와 문신이었다. 나는 그 흉물들이 지난 겨울방학 동안에 생긴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 사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으며, 그러는 사이 녀석이 또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개학 첫날, 나는 교실에서 처음 녀석을 대하고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날 녀석은 여름 교복을 입고 등교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반 아이들과 첫대면을 하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교실 뒷편에 사십오도 각도로 의자를 기대고 앉아 어깨 근육 위에 그려진 장미 문신을 드러내 보이며 아이들을 을러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녀석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제자리로 되돌려 보내면서, "씨팔 어쩌구 저쩌구" 하는 욕설까지 내뱉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지난 해 녀석의 담임이었던 최선생으로부터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것이 있어 그날은 애써 참아 넘겼다. 개학 첫날부터 녀석과 맞붙어 반 아이들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것은 다 무시할 수 있어도, 녀석이 그 추운 겨울날 여름 교복을 입고 등교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만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은 그때까지도 꼴사납게 어깨 근육에 새긴 장미 문신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녀석의 대답은 능청스럽게도 자신에게는 이 겨울이 그 어느 여름날 못지 않게 몹시 후덥지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씩하고 웃음을 흘렸다. 녀석도 째진 눈을 더욱 더 가늘게 뜨고 바라보며 나를 따라 웃었다.

나는 녀석이 사실 그대로를 말하지 않을 것을 짐작했다. 녀석에겐 부모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였으며, 일년 전 그의 어머니라는 사람마저 녀석과 녀석보다 한 살이 어린 누이동생을 버려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녀석에겐 교복 따위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녀석이 그 반팔 소매를 어깨 위로 걷어올린 이유에 대해서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에게 반팔 소매를 풀어내릴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내 지시에 귀머거리 노릇이라도 하듯 딴청을 부렸다. 나는 그 순간 머리털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그날이 겨우 개학 첫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이를 악물어가며 가슴 속 깊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내가 녀석의 방자하고 무례하며, 전혀 학생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너그럽게 보아넘길 수 있었던 날도 단지 그 며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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