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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처럼 여러 번 되새긴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 내내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날을 보냈다. 녀석의 비행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녀석의 똘마니로 보이는 놈들 몇 명이 폭행과 금품 갈취로 경찰서를 드나든 끝에 한 명이 퇴학을 당하고 그 외 몇몇은 정학을 당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놈들의 왕초격이자 배후임이 분명한 그 녀석만은 정작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학교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담당 형사들마저 녀석에게서는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반 아이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말해, 말하란 말이야. 녀석이 너희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어떤 협박과 공갈을 당하고 있는지. 내가 책임을 지고 너희들을 보호할 테니까 경찰서에 가서 거짓 없이 말하란 말이야.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나는 지쳤다. 반 아이들은 이미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녀석의 폭력에 길들여져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내가 가진 힘의 한계를 느꼈으며, 내가 가진 능력의 미약함에 넌덜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 반의 아이들을 책임진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지극히 부끄러웠다.

그 즈음, 나는 담배 피는 횟수가 부쩍 늘고, 자연히 양도 늘었다. 틈만 나면, 교사 휴게실이고 화장실이고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하루에 반 갑 정도 피우곤 하던 담배를 한 달이 채 못되어 한 갑을 넘게 피우게 되었으며, 두 달이 지나서는 거의 두 갑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그만큼 건강도 나빠졌고, 주위 사람들의 잔소리와 걱정도 늘어났다.

나는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년간 성실히 지켜온 교사로서의 자긍심마저 상실하고 있었다. 그때쯤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석을 여름방학 전에 퇴학시키고야 말겠다던 내 의지도 상당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지내야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고역이었다. 잊을 수만 있다면 모든 걸 깨끗이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만큼 괴로웠다. 주변에 널린 모든 것이 문제였지만,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였다.

그러던 것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수업 시작종을 기다리는 사이, 교사 휴게실에 들어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교사 휴게실에 들어앉아 두 개피째의 담배를 물고 있을 때만 해도, 나는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내 주변에서는 결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토록 내가 갈구하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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