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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까탈을 부리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하루도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 하루하루가 너무나 끔찍했다. 그렇게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교사들이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녀석이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업을 방해하기 일쑤이니 어떻게 좀 조치를 취해 달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다른 아이들처럼 책상 위에 조용히 엎드려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교실 밖으로라도 나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건성으로 어떻게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교사는 녀석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때문에 후환이 두렵다고 말했다. 녀석이 그 교사에게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녀석이 모모교사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교사는 그 모모교사가 바로 자기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그 모모교사가 내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말해 주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그 녀석에게 주먹을 휘두른 교사가 어디 한둘이냐. 녀석이 손을 보겠다고 말한 교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교사가 당신인 것 같지는 않다. 담임으로서 얘기하는 거니까 믿어도 좋다. 그러니 안심하고 돌아가라. 그 교사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그래도 어느 구석인가 조금은 내 말을 믿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 여교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 여교사의 고민은 녀석의 눈빛이 너무 징그러워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여교사는 또 녀석이 수업 중에 책상 밑으로 무슨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그 여교사는 학교 안에서 유일하게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 교사였다. 그 여교사는 평소에도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에 진력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 여교사는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수 없으니, 다른 남자교사와 반을 바꿀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여교사를 돕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끝내 그 여교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 여교사가 맡은 과목의 남자 교사들은 예전에 한번씩은 녀석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어 녀석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미 십리 밖으로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남자교사들은 말했다. 녀석은 너무 대가 세서 같은 남자들끼리는 도저히 대적을 할 수가 없다. 어느 한쪽이 부러져야 하는데 녀석을 강제로 부러뜨릴 것인가, 아니면 교사가 부러질 것인가? 그것은 어느 한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 어떤 면에서는 여자교사가 남자 교사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 그러니 그 여교사를 잘 설득해 녀석이 인간답고 학생다운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지도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뭐, 이런 식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여교사는 크게 낙담한 나머지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그 젊은 여교사는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사표를 제출했다. 동료교사들은 그 여교사가 사표를 제출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애써 잊으려 했다. 일부 교사는 그 여교사가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고 학교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나약하다고 비난했다. 특히 기혼 여교사들 중에는 자신들은 그보다 더한 수모를 겪으며 교단에 서 왔는데, 그까짓 눈빛이 무슨 대수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동료교사들은 곧 그 여교사를 잊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여교사를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꽃봉오리가 채 펴보기도 전에 져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녀석은 한 사람의 여교사가 수년 동안 정성들여 가꿔온 전문교사로서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다. 그 여교사의 아픔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필코 녀석을 여름방학 전에 학교 담장 밖으로 몰아낼 것을 다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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