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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나후아또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 라 빠스 광장 과나후아또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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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지지 않은 포석 위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기면 파르르 마음까지 떨려오는 길.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마치 아가의 손톱 마냥 신기하고 또 신기한 거리에 온통 로맨티시즘의 향기로 나풀거린다. 하늘 아래 이토록 동화 속 이야기를 그려 넣은 낭만적인 곳이 또 있을까.

거리 곳곳마다 건물 하나하나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형체가 햇살에 깨져 차분하고 은은하게 퍼진 채 결 고운 점묘화가 되어버리는 길. 그 위에 나도 말없이 이 도시의 한 점 풍경이 되어버린다.

과나후아또를 구경하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것은 쪽지시험 앞두고 밤을 새는 꼴이다. 이 도시의 매력은 걸음으로 흠뻑 빨아들이는데 있다. 라 빠스 광장(Plaza de la Paz)에는 도시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샛노랗게 물든 카떼드랄이 있으니 출발과 도착 포인트를 이곳에 잡으면 좋다.

그리고는 도시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삐삘라 기념상에서부터 후아레스(Juarez)거리를 타고 이달고 시장까지 역사와 예술의 파노라마 훑고 난 다음에는 굳이 호들갑을 떨며 그 차오르는 감동을 내뱉지 않아도 된다.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사춘기적 감성에 촉촉이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로 절망을 씻었을까

식민지 시대의 사치가 극에 달한 건축물
▲ 후아레스 극장 식민지 시대의 사치가 극에 달한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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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금빛이 눈부시다.
▲ 후아레스 극장 내부 금빛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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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니얼 매력의 절정인 과나후아또 구경을 위해 가장 먼저 후아레스 극장(Teatro Juarez)을 찾았다. 광산으로 부유해진 이곳에서 가장 사치가 극에 달한 건물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양식을 모방한 건물 외관에 금을 아끼지 않는 내부 장식이라니 부가 가져다 준 허영심으로 들어찬 인간 본연성을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냈을까.

천박한 자본주의로 너와 나의 계급투쟁을 빚어내 기둥마다 하급계층의 땀을 돈으로 짜내 세워진 1세기 전 광기가 눈에 선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는 예술이 된 역사 앞에 피를 토한 적이 없었는지.

극장 앞 계단에서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흩어진 시간 속을 유유히 유영하며 젊음을 향유하고 있다. 오페라 극장의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들의 기탄없는 자유로움은 벌써부터 내 마음의 포문을 열어젖힌다.

오페라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으면서도 천연스레 한껏 기대를 가지고 들어간 후아레스 극장의 내부는 가끔 영화에서 보던 웅장함 그대로다. 화려한 문양으로 천장과 벽면이 수놓아져 있는 전체 풍경에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 시선을 흩트리지 않고 음미할 수 있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3층으로 이뤄진 거대한 객석에서 상류사회의 모조된 박수소리가 귀청을 때리는 듯하다.

이 무대에 서기까지 땀으로 그리던 꿈을 피우게 하기 위해 배우는 또 얼마나 눈물로 절망을 닦아야 했을까. 내 인생의 무대에 나는 또 연습도 없이 얼마나 완성된 삶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무대 위에서 죽겠노라 결연히 각오했을 어느 무명배우의 열정이 지금 나에게 절실히 필요함을 본다.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뻔한 동화가 떠오르는 곳

교회 바로크 양식의 걸작
▲ 샌디에이고 교회 바로크 양식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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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후아레스 극장 바로 옆에는 어느 멕시코 교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의 샌디에이고 교회가 위치해 있는데 그다지 발걸음을 오래 머물게 하지 못했다. 물론 나중에서야 그 교회가 바로크 양식의 걸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건축 양식에는 까막눈인 나에게 큰 감동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대신 도시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카떼드랄은 내게는 심한 기피증을 내포한 건축과 미술과 역사의 난감한 조합이었음에도 무척이나 끌리는 곳이었다. 첨탑으로 솜사탕 구름이 살짝 걸친 채 마치 동화 속성처럼 울멍진 카떼드랄은 어느 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뾰족이 높이 솟은 종탑엔 병사가 경계를 서고 있고 둥근 탑의 작은 방엔 죽은 엄마 대신 자리를 대신한 계모왕비를 따르는 모리배들의 꾐에 빠져 잡혀 와 홀로 외로이 지내는 어여쁜 공주가 있다. 그리고 여기 그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한 명의 멋진 남자. 이웃나라 왕자라면 너무 느끼하고 대신 꽤 괜찮은 인상에 무슨 일에든지 용감한 평범한 청년이라고 해 두자.

공주가 갇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이 남자는 단숨에 벽을 뛰어 넘고 드팀없이 달려 들어가 몰래 공주를 구출해 나오다가 그만 병사들에게 들켜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지혜의 향연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결국 왕 앞에 나아가 진실을 고한다.

노랗게 칠해 진 동화같은 이미지가 보고만 있어도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준다. 라 빠스 광장과 붙어있다.
▲ 카떼드랄 노랗게 칠해 진 동화같은 이미지가 보고만 있어도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준다. 라 빠스 광장과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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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은 섣불리 믿으려 들지 않고 남자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몇 가지 테스트를 해 보는데 하나같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뤄내 마침내 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공주와 결혼해 잘 산다는 뻔하고 뻔한 얘기다. 엉성하고도 비약적인 스토리지만 로맨틱한 동화라면 이쯤이야.

이 순간만큼은 비참하도록 달콤하여라!

카떼드랄에서 허우적대던 망상을 슬며시 털어버리고 좌편에 위치한 과나후아또 대학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진실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한다'라는 모토 속에 지식을 박제시켜 놓은 듯한 하얀 박물관처럼 대학 건물 치고는 고급스러운 양식으로 치장한 곳.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 고풍스런 건물에서 한 번쯤은 중세의 '권력어'였던 스페인어 회화 강좌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왠지 이곳에서 공부하면 귀에 기름칠한 듯 입에 회화사전을 달아놓은 듯 공부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동급최강 주의산만만 어떻게 해 본다면 말이다.

박물관처럼 보이는 교육기관. 이곳에서는 외부인을 위한 스페인어 강좌가 인기가 많다.
▲ 과나후아또 대학 박물관처럼 보이는 교육기관. 이곳에서는 외부인을 위한 스페인어 강좌가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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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계단에서 질서 있게 열을 지어 나가는 무리들 속에 나의 감성은 현실을 이탈해 자유로운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세 곳만 구경하는데도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아름다움이 시간을 잊은 거리. 햇살은 어느 새 그림자를 던지고 카떼드랄은 더욱 눈부신 노란 빛으로 퍼져 나간다.

이내 그 빛이 방금 막 터트린 콜라처럼 블랙에 가까운 블루로 채색되어지면 어디선가 톡 쏘는 탄산처럼 짜릿한 이 밤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진다. 중세의상을 입은 에스뚜디안띠나(Estudiantina)의 익살맞은 연주가 밤거리에 흩어지고 이 음악의 주인공이 되는 선남선녀들은 누구의 눈치 볼 것도 없이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둘러싸인 모든 공기가 건조한 솔로에게도 이 순간만큼은 비참하도록 달콤하여라!

중세 의상을 입고 밤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학생연주단. 이들의 음악에 연인들은 한껏 낭만에 젖어든다.
▲ 에스뚜디안띠나(Estudiantina) 중세 의상을 입고 밤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학생연주단. 이들의 음악에 연인들은 한껏 낭만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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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로맨티시즘에 사로잡힌 거리에서 열렬한 사랑을 고백해 보기를 원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뛰어오라. 과나후아또의 모든 거리거리에서 사랑이 꽃피울 것임을 단언하나니. 그림보다 더욱 예쁜 그림처럼 후아레스 극장과 카떼드랄, 그리고 과나후아또 대학에서 다시 찾은 여린 감성이 반갑기만 하다.

그 후에 레포르마 공원과 이달고 시장, 그리고 발렌 사원까지 이르는 걸음들 속에서도 나의 감성은 메마르지 않았다. 촉촉한 과나후아또의 오렌지 빛 낭만이 오랜만에 나를 하늘로 뛰어오를 것처럼 달뜨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먹을 것과 민예품 등을 주로 판다.
▲ 이달고 시장 먹을 것과 민예품 등을 주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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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과나후아토, #자전거, #멕시코, #세계일주,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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