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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또는 그런 말.'

 

거짓말의 사전적 의미다. 꾸며 대어 말을 한다는 사전적 의미에서 보듯 거짓말은 대부분 상대방이 존재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거짓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강하다.

 

생각해보았다. 인생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때로는 남에게 거짓말을 했고, 또 다른 이에게 거짓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 중 내 인생 최악의 거짓말을 꼽으라면 중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참으로 묘하게도 중 3 시절 이전에도 이후에도 적지 않은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들었을텐데 그 당시 했던 거짓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마도 그 거짓말이 다른 이를 향한 것이 아닌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상황 1> 내가 반장이라서가 아냐

 

중학교 3학년 시절 반장이 되었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뽑혔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반장이라는 자리는 여러모로 편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이 나를 보는 눈 자체가 달랐다. 때문에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또 때로는 반장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있었다.

 

어쩌면 그 날도 반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아니 가능했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공부 시간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생 주임 선생님이 두발 검사를 위해 우리 교실에 들어왔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다들 고개를 숙였다. 원래 학교 규정이 남학생은 스포츠 머리로 잘라야 했으니 애당초 그리 긴 아이도 없었지만, 그래도 학생 주임 선생님께 걸릴까 싶어 다들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내 머리도 스포츠 머리라고 하기에는 좀 긴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여기 저기서 아이들 머리에 고속도로(머리 중간을 머리 깎는 기계를 이용해 고속도로처럼 밀어 붙이는 것. 머리를 자르게 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자주 쓰던 방법)가 생기고, 머리 중간 중간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기고, 더욱이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던지라 여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머리가 잘리는 그 시간이 고통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학생 주임 선생님이 내 곁에도 왔다. 원래대로라면 나 역시 머리가 잘려야 맞았다. 그런데 학생 주임 선생님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말 없이 그냥 나가시는 것이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반장이라고 봐 주는구만"이라고 말했다. 이런 소리를 했을 때 난 강하게 부인했다.

 

“곱슬머리라 길어도 짧게 보이는 거야.”

 

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반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학생 주임 선생님이 봐주셨다는 것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후에도 반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선생님들께 특혜를 받았던 기억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그 당시 내가 받았던 특혜를 애써 특혜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했던 거짓말이 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상황 2> 이게 다 반을 위해서야

 

그러나 중학교 3학년 시절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스스로에게 한 거짓말은 따로 있었다. 수업 도중 선생님이 잠깐 급한 일이 생겨서 교실을 비울 일이 생겼다. 선생님은 자연스레 내게 반을 조용히 시키라 하셨고, 나는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있었다.

 

허나 원래 모질지 못한 성격인데다가 싸움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던 나였기에 반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좀 해!"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그 때 갑자기 축구부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떠들고 있던 한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 발을 높이 치켜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그 발로 떠들던 아이의 볼을 사정없이 차 버렸다.

 

"퍽!"

 

순간 반 전체가 그야말로 고요해졌다. 난 축구부 녀석의 행동을 보고 순간 화가 나서 그대로 달려가 그 축구부 녀석을 발로 한 대 차고 싶었다. 아이가 떠든 것은 잘못이나 축구부 녀석이 그렇게 동급생이자 친구인 아이를 떠든다는 이유로 때린 행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부위도 아닌 얼굴을 발로 차다니, 어디 말이나 될 법한 행위인가.

 

그런 광경을 보았다면 그 집단의 리더였던 나는 마땅히 축구부 녀석에게 달려가 시원한 주먹 한 방이라도 날려주는 게 당연했던 거다. 내가 이끌고 있는 집단이 다소 시끄럽다 해도 그렇다 해서 폭력을 묵인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칠판 앞에 서 있던 내 두 다리는 마치 땅에라도 달라붙은 듯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저 녀석을 때리면 또 싸우게 되고, 선생님이 오셔서 그걸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러니까 그러면 안 돼.이게 다 반을 위해서야.'

 

스스로에게 그 축구부 녀석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주먹을 날리기는커녕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축구부 녀석과 싸우게 되면 축구부 전체 부원들과 껄끄러운 관계가 되고 그러면 학교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어린 시절이라 그랬는지 축구부 부원들 중 힘 좀 있다고 힘 자랑 하는 녀석들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마땅히 한 집단을 이끄는 리더로서 옳지 않은 폭력을 행사한 친구에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잘한 행동이라 거짓말하면서.

 

<상황 3> 잘못했으니 맞는 거겠지

 

불행히도 중학교 3학년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내 자신에게 했던 가장 큰 거짓말은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다. 어쩌면 그 거짓말을 지금도 알게 모르게 계속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학생 주임 선생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재빨리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어쩐지 학생 주임 선생님 곁에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한 여학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핏 보니 학교에서 속된 말로 좀 논다는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그런 옷차림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교복을 착용했으나 치마를 길게 내리거나 착 달라붙게 입는 등 노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교복으로 이런 저런 멋을 내기도 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복장 불량으로 몇 마디 하겠거니 하는 순간 갑작스레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 발을 들어 올리더니 그 여학생의 배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너무 놀라 뛰어가 선생님 앞을 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학생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러시면 안 되죠!"

 

하지만 앞서 축구부 녀석에게 주먹은커녕 말 한 마디 못 했던 것처럼 그저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게다가 지난 번 칠판 앞에서 굳게 땅에 뿌리를 박고 있던 다리는 비록 속도는 빠르지 않으나 점차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분명 저 학생이 잘못한 게 있으니 저렇게 혼나겠지. 그냥 가자. 선생님이 심하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그 자리를 외면한 이유는 혹시라도 그 선생님께 괜히 대들었다가 지금껏 받아왔던 편한 특혜 등을 받을 수 없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한 이 마지막 거짓말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어쩌면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이유로 여러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눈을 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이 글만큼은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그런 상투적인 다짐으로 끝맺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이 순간 정말 잊을 수 없는 거짓말을 하나 더 보태는 것일테니. 그저 거짓말을 덜 하면서 사는 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도 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것만은 진심이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응모글


태그:#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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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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