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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무엇보다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공저 <생각의 탄생>을 읽었다. 컴퓨터를 켜놓고 읽다가 좋은 대목이 있으면 곧바로 자판을 두들겨 메모를 한다. 책은 하루에 100쪽만 읽기로 했다. 더 읽고 싶어도 참고, 대신 읽은 내용을 혼자만 소유하지 않고 공동체 벗들과 함께 나눈다. 오늘은 80쪽까지 읽다가 잠깐 멈추었다. 책을 읽다 말고 상상 속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메모한 내용부터 소개한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회상에 따르면 아버지 스티븐은 철학자로서도 작가로서도 항상 패배의식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학문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작 딸에게는 자신이 그저 그런 아류 지성인데 불과했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후에 울프는 그가 지니고 있었던 불일치, 다시 말해 비평능력과 창작능력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서 숙고하게 된다.(39쪽)

그녀가 분석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는 날카롭고 명징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야말로 케임브리지적인 분석정신의 경탄할만한 전범이었다. 하지만 실생활 측면에서 보면 매우 조야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어서 아버지의 내면에는 뛰어난 초상화가와 색분필을 가지고 낙서나 하고 있는 어린애가 동시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39-40쪽)

울프는 아버지가 받은 케임브리지의 교육의 일방적이고 두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여 정신을 불구로 만드는 교육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받은 교육이 음악, 미술, 연극, 여행 같은 여가활동에 대한 심각한 결핍증을 불러왔고 그 결과 지적 편중과 좁은 시야를 갖게 했다는 것이다.(40쪽)

이와 대조적으로 울프는 괄목할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룩했다. 그녀의 작품은 문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대단히 혁신적이었다. 아버지가 한계와 진부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녀는 역대 어느 작가보다도 모험적이고 창의적이었다. 아버지가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을 때만 해도 울프는 좌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정규 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독학을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거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41쪽)

울프가 '무엇'과 '어떻게'를 분리하는 제도권 교육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이나 조각, 음악작품을 하나의 대상, 다시 말해 분석하기 위한 '무엇'으로 보거나 듣는 것은 환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제는 예술이 '어떻게' 발생하고 삶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우리가 이해할 때라야 경험할 수 있다.(42쪽)

듀이에 따르면 우리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그것을 형성한 근원적인 경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예술과 무관한 영역 속에 작품을 고립시키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경험을 정련하고 강조한 결과물인 예술작품'은 '경험을 이루어내는 매일매일의 사건, 행위, 고난'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지게 된다.(43쪽)

교육에서 '무엇'과 '어떻게'의 결별은 곧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분리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학생들은 이해함으로써 앎에 이르는 게 아니라 외움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44쪽)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다.(47쪽)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sublimity of mundane),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69쪽)

여기까지 읽다가 나는 잠시 책을 덮었다. 오늘 하루 종일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가 그 고민이 해결된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우리 학교 동료교사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물론 상상 속에서다. 나는 종종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럴만한 기회도 없었지만 기회가 온다고 해도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해지 않아도 이 글을 끝까지 읽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나는 올해 특별활동부장을 맡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부장연찬회에서 나는 자치적응활동이나 계발활동(동아리활동)을 포함한 특별활동(창의적 재량활동)을 내실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이 말이 쉽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선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고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생각의 탄생>을 읽다가. 자 상상의 강의를 시작해보자.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으로 여러분 앞에 선 것 같네요. 좀 어색합니다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오늘 강의 내용은 자치적응활동이나 계발활동시간에 해볼 만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걸 함께 고민해보려고 하는데요.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도 아이들이 따라주어야 하는데 그럴 것 같지 않아서 힘이 빠지긴 합니다. 왜 우리 아이들이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요?(답이 나올 때까지 사뭇 오랫동안 기다린다. 좀 의아하게 느낄 만큼. 탁구공이 자신들에게 넘어온 것을 늦게라도 깨닫게 될 때까지.)

그래요. 솔직히 요즘 아이들 생각이 없지요. 그런데 왜 그들은 생각이 없을까요?(이번에도  공이 자신들에게 넘어온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 답답해서라도 말을 하게 될 것이고, 그다음 상황은 아마도 아이들을 성토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도 함께 거드는 척하다가 분위기가 띄워지면 이렇게 넌지시 말한다.)

아이들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까요? 그것은 혹시 변화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어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의 심리가 바로 그렇더라고요. 지금 단어 몇 개 외운다고 영어실력이 늘어날 것 같지 않은 거죠. 그런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지요. 순천에서 서울까지 차를 타고 가는데 차바퀴가 몇 바퀴나 돌아가야 서울까지 도착할까? 답은 4바퀴입니다. 차바퀴가 4개잖아요. 일종의 난센스 퀴즈였는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고요.

차바퀴 둘레가 1미터쯤 된다면 그것이 한 바퀴 돌면 1미터를 간다는 말인데 어느 세월에 서울까지 갈까 해도 5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하지요. 영어 공부 또한 그런 이치로 생각하면 될 거라고 말을 해주지요. 이렇게 말을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도 몇 명 있긴 하던데, 솔직히 아이들에게 이런 말 해주면 아이들이 금방 변해서 공부 잘 할까요?(이때도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교사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학생들의 부정적인 면을 간파하는 데는 가히 천재들이니까.)

자, 다시 한 번 물어보지요. 왜 아이들은 뭔가를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변화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동의하시나요?(예, 동의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에게 여쭤볼게요. 여러분은 자신의 변화에 대한 전망이 있으신가요? 오늘 제 강의를 듣고 여러분이 변화할 것이라는, 아니 변화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가요?(갑자기 화살의 방향이 자신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씨익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 다시 아이들에게로 돌아가 보지요. 왜 아이들은 무엇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변화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럼 왜 아이들은 변하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심리가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금 조금 변한다고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그러니 괜히 애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그런 생각이 작용할 수도 있겠고요.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뭘까요?(이번에도 조금 오래 기다린다.)

그것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 뭐 이런 거 아닐까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가 입시교육 나쁘다고 말은 하면서도 솔직히 문제집만 풀어주면 되니까 편하잖아요. 핀란드식 교육 부러워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 정작 그들은 행복해 하거든요. 자긍심도 대단하고요. 그런데 핀란드 교육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처음엔 우리나 사정이 비슷했겠지요. 그걸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시키는데 4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하네요. 그 사이에 그들이라고 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겠어요.

작년에 자치활동이나 계발활동 제대로 못했어요. 물론 잘 하신 선생님도 계시지만 솔직히 소수에 불과했지요. 물론 다른 학교에 비하면 잘했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시간은 꼬박꼬박 지켜서 했으니까요. 그럼 그것으로 만족할까요? 내용이 부실해도 형식이라도 갖추었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용서하시고 들어주세요. 오늘 저 이 강의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전 외부로 강의 나가면 정말 재밌게 강의하는 편이에요. 강의를 즐기지요. 강의가 재미있는 것은 수강생들의 변화가 예감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강의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반대의 이유 때문이겠지요. 강의해봐야 어떤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데 무슨 수로 신명이 나서 강의를 할 수 있겠어요.

(잠깐 침묵이 흐른 뒤, 스크린에 커다란 글씨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다.)

'교육은 최대의 낙관주의다'

본래는 '교육은 가장 위대한 낙관적 행동이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속담인데 제가 의역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왜 교육이 최대의 낙관주의일까요?(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맞습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교육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교사가 학생에게 희망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교사의 취향이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고 아이들을 만날 의무가 있다는 말이지요. 제가 좀 흥분하고 있는 거 맞죠? 

올해는 특별활동을 특별활동답게 해보자고 오늘 제가 감히 강사 자격으로 여러분 앞에 섰는데 아직 본론을 못 꺼내고 있네요.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상상이 끝났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도 기분이 썩 좋다. 이제 동료교사들 앞에서 설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생각의 탄생> 덕분에. 아니, 생각의 탄생을 '버지니아 울프' 아버지처럼 지식으로만 읽지 않고 나의 삶과 연관 지어 생산적(혹은 창조적) 읽기를 한 덕분이리라. 그런데 걱정이 생긴다. 서론을 그렇게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동료교사들 앞에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걸 만들어내라고 방학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그걸 생각해내라고 <생각의 탄생>에서 소개하는 13가지 생각도구를 내게 준 것 같다. 우선 그걸 다 독파한 뒤에 생각해보기로 한다. 재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 홈페이지(http://cafe.daum.net/communebu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생각의 탄생,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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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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