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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의 공산성에서 내려다 본 금강의 '금모래'
 충남 공주의 공산성에서 내려다 본 금강의 '금모래'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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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김소월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노래했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이 있고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있는 강변에서 살자고, 어린 사내아이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까닭 없이 애잔하다. 티 없이 고운 결을 지닌 노래인데도 나지막이 소리를 내어보면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아무도 없고, 창밖에 혹 안개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문득 눈가에 물기가 고일 만큼 그렇게 소슬하다. 왜 그럴까. 물론 가락 탓이겠지만 나는 노래 속에 '아버지'가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노래 속의 어린 소년은 그것을 모른다. 그것을 알면 이미 그는 소년이 아니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면서 어머니가 이주할 수 없는 곳으로 가자고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어쩔 수 없는 소년인 것이다.

낙화암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의 '금모래'
 낙화암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의 '금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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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강물은 여전히 어제처럼 흐르는데, 오늘도 그렇게 흐르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데, 아버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소년도 어느 날인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물어본 적도 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먼 곳으로 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소년은 알 수 없었다.

시간을 알지 못하면 '철이 없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어도 소년은 그 모든 시간을 그저 놀이의 한 순간 한 순간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한겨울에도 여름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놀 줄 알아야 천진무구한 진짜 소년이라는 말이다.

금모래가 반짝이는 곳에서 살고 싶은 동심

당연히 아이는 인간 개인에게 다가온 시간의 종점- 죽음을 알지 못한다. 손창섭의 <잉여인간>에 나오는 익준의 어린 아들이 어머니가 죽어 입게 된 상복을 두고 '새 옷 입었다'고 자랑하는 것도 그 때문에 빚어지는 비인간적 비극이다. 하지만 철모르는 아이로서는 그러는 것이 가식 없는 인간적 면모이다.

세파에 시든 어른에게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강변 살자'는 '새 옷 입고 싶다'로 읽힌다. 어른은 이미 강변으로 옮겨가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뜰에 금모래가 햇살을 받아 반짝여도, 뒷문 밖에 갈잎의 서걱대는 노래가 들려도, 어른들은 그리로 이주하지 못한다. 만약 실천에 옮기면 그는 '철이 없다'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엄마야 누나야> 노래가 슬픈 까닭이다.

어디로 가서 부르면 이 노래가 슬프지 않을까. 집 앞뜰에 금모래가 반짝이고,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흐르는 그런 '강변'에 가서 살지는 못할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그런 곳을 찾아가 놀 수는 있는 일이다. 그때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모래성을 쌓고 물배구도 하면서 <엄마야 누나야>를 함께 불러보자. 그와 같은 '인성교육'의 현장이라야 비로소 <엄마야 누나야> 노래는 한껏 고운 제 빛을 띠며 물방울처럼 가볍게 하늘로 퐁퐁 솟아오를 것이다. 

이 광활한 백사장은 어디? 경납 합천읍 대야성(사진의 강 건너 산) 아래 황강의 모래밭이다.
 이 광활한 백사장은 어디? 경납 합천읍 대야성(사진의 강 건너 산) 아래 황강의 모래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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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을 하지 않고 한나절 동안만 다니는 가족여행을 음식 중심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 닭백숙이나 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방식의 어른 중심 가족행락은 자녀교육에 오히려 해롭다. 나들이를 하지 않고 집에서 EBS를 보느니만도 못하다.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엄마야 누나야> 노래를 배울 때, 아름다운 강변 백사장에서 놀아본 추억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사이에는 채워지지 않는 교육적 격차가 발생한다. 그 차이는 결코 교과지식 암기 일변도의 사교육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아이 때일수록 놀이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남 합천의 황강 백사장을 추천한다. 강의 이름에 '황'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도 눈치 빠른 독자는 핵심을 꿰뚫었을 법하다. 모래가 많으니 강이 노랗게 보인다는 뜻이다. 넓고 고운 모래밭이 들판처럼 펼쳐져 있어 과장을 하면 마라톤을 해도 충분할 지경이다. 평상시에는 강물도 얕아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기에도 적격이다.

특히 황강은 합천읍을 휘감아 도는 지점에 대야성 사적까지 거느렸다. 역사유적 답사도 되니 말 그대로 금상첨화의 여행지라 할 만하다.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죽죽을 기리는 비석 앞에서 역사 이야기도 하고, 기념 사진도 한 장 '찰칵' 찍어보자.

사진으로도 물놀이를 하기에 알맞아 보이는 합천 대야성 아래 백사장
 사진으로도 물놀이를 하기에 알맞아 보이는 합천 대야성 아래 백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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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죽을 기리는 비. 대야성 사적 입구에 있다.
 죽죽을 기리는 비. 대야성 사적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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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엄마야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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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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