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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가 새겨져 있는 마산역 앞 이은상 시비. 2013년 2월 6일 세워진 이래 철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사에 사진을 조그맣게 올리는 것은, 이은상의 시비를 독자들에게 커다랗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기자에게 없는 까닭이다.
 '가고파'가 새겨져 있는 마산역 앞 이은상 시비. 2013년 2월 6일 세워진 이래 철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사에 사진을 조그맣게 올리는 것은, 이은상의 시비를 독자들에게 커다랗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기자에게 없는 까닭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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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산 지역에 사는 시민 7명이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를 모욕죄로 검찰에 고소,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윤 교수는 지난 4월 27일 마산 아리랑 관광호텔에서 열린 노산 이은상 시조선집 <가고파> 출판기념회 강연 도중 '가고파'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 못하는 지역 현상을 언급하면서 "마산 시민정신이 우둔하다"고 말해 반발을 샀다. 지역 시민사회는 즉각 윤 교수의 사과를 요구하긴 했으나 더 이상의 행동에는 나서지 않았는데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일각의 시민이 연명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날 출판기념회에서는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겹쳐서 일어난 기억이 새롭다. 비록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긴 했으나 조영파 창원 부시장이 마산문학관을 노산문학관으로 바꾸어야 마산이 산다는 취지의 인사말을 해 반발을 산 것이 그것이다. 현 마산 문학관은 애초 노산 문학관으로 문패를 달려고 하다가 노산의 친독재 행적에 발목이 잡혀 마산시의회가 찬반투표를 거쳐 지금의 이름으로 결정·고시하게 된 것이다. (하략)

위의 인용문은 경남도민일보 2013년 6월 7일자 사설 '노 교수와 마산 시민 모욕죄'의 일부이다. 사설은 독자에게 '마산 문학관' 명칭의 유래와 노산 이은상이 '친독재 행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인터넷의 브리태니커 사전은 이은상을 '시조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진력한 우리나라의 시조시인'으로 소개한다. 두 내용이 너무 달라 곤혹감마저 일어난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

이은상 시비가 오히려 이은상 명예 떨어뜨려

2013년 2월 6일 마산역 광장에 이은상 시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이 <가고파> 시비는 제막식 이전부터 페인트 세례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페인트를 덮어썼다. '마산역 광장 이은상 시비 철거 대책 위원회(아래 대책위)'는 시비 철거를 요구하며 마산역장실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고, 철거 요구 기자회견도 여러 차례 열었다. 게다가 시비 앞에서는 굴욕적인 조롱 퍼포먼스가 이어져 시비가 오히려 이은상의 명예를 더욱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은상의 친독재 경력을 밝히면서 '민주화의 성지' 마산의 출입구인 마산역 광장에 그의 시비를 버젓이 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책위는 이은상이 1955년 우리나라 헌정 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사사오입 개헌'이 일어난 지 불과 4개월 뒤인 이승만의 80회 생일에 <송가(頌歌)>라는 제목의 경축시를 헌사했고, 문인유세단을 조직하여 전국에 자유당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리고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라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한 이은상이 1960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3·15 의거와 4월 혁명을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비난하여 마산시민을 모독해놓고도, 4월 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나자 "기회주의자의 표본"답게 "서울 수유리 묘지의 4·19 학생 혁명 기념비에 4·19를 찬양하는 비문을 썼다"고 성토했다.

이어 대책위는 "이은상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공화당을 창당할 때 창당 선언문을 작성"했으며,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뒤 장충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자 1980년 <정경 문화> 9월호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에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여론'이라는 글을 헌사, 이듬해 4월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고 비판했다.

굳이 시비를 마산역 광장에 세워야 하나

마산문학관 뜰의 이은상 시비. '옛 동산에 올라'가 새겨져 있다. 마산역 앞 광장의 '가고파' 시비와는 달리 이것은 철거 논란까지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문학관은 이름을 짓는 데 긴 세월을 보냈다. '노산 문학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면서 5년간 논란을 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이은상의 경력이 문제가 되어 '마산 문학관'으로 정해졌다.
 마산문학관 뜰의 이은상 시비. '옛 동산에 올라'가 새겨져 있다. 마산역 앞 광장의 '가고파' 시비와는 달리 이것은 철거 논란까지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문학관은 이름을 짓는 데 긴 세월을 보냈다. '노산 문학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면서 5년간 논란을 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이은상의 경력이 문제가 되어 '마산 문학관'으로 정해졌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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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이은상의 식민지 시대 부일 행적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 아부 행적은 마산 문학관 홈페이지에도, 시비에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민주화의 성지' 마산답지 못한 처신이다. 인근 창원의 이원수 문학관이 그의 친일 행적을 적시하고 부일 작품 중 한 편의 전문까지 홈페이지에 실어 놓은 것에 비해 크게 그 격이 떨어지는 일이다.

지난 8월 7일에 찾아본 마산역 앞 '가고파 시비'는 그 많은 논란에도 여전히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잠시 시비를 살펴본 후 마산 문학관을 찾아가니, 뜰에 여러 시비가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이은상의 또 다른 시비인 <옛 동산에 올라>도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길재의 한탄처럼, 문학관 앞 시비에서 아득히 내려다보는 마산의 풍경은, 이은상 논란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곧 저물 무렵이 되고, 노을이 물들면 저 하늘과 바다는 더욱 아름다우리라. 야경도 또한 황홀하리라. 생각이 '밤'쪽으로 나아가자 문득 <성불사의 밤> 시비는 어디에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이은상이 비록 '친일'에 '독재 부역' 인사지만, 그래도 통일이 된다면 황해도 성불사 들어가는 길 어디쯤에 <성불사의 밤> 시비 하나는 세워도 좋으리라. 그때쯤 되면 친일 문제도, 독재 기생 문제도 모두 청산되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테니.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댕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들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태그:#이은상, #마산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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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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