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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민주노총 경남본부 조합원들이 11월 26일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에서 송전탑 반대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김장을 했다. 이 김치 속에는 '연대'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조합원들이 11월 26일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에서 송전탑 반대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김장을 했다. 이 김치 속에는 '연대'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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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유네스코는 김장문화의 인류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했습니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고, 한국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유산"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말처럼 여전히 김장은 가족과 이웃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김장을 하며 그 김치를 함께 나눠먹을 이들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죠. 김장 김치 속에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담겨 있습니다.

이승숙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부끄러웠던 동생에게 '엄마'를 보냈습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막내 동생에게 보낸 김장 김치를 통해 가족의 아픈 상처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뜻하게 품어가는 과정을 한 편의 글 속에 담았습니다. 이 글은 12월 9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 '김장 이야기' 기사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됐는데요, 그만큼 이야기의 힘이나 글의 짜임새, 하나하나의 문장까지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글입니다.

막내 동생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글은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느라 건성건성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동생의 한마디가 글쓴이의 가슴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누나가 한 김장이면 엄마 맛이 나겠죠?"

인상적인 장면과 대화를 보여준 뒤에 막내 동생에 대한 글쓴이의 기억으로 이야기는 전환됩니다. 마흔이 넘도록 혼자 사는 동생. 마흔이 다 돼서 동생을 낳고 특별한 사랑을 쏟은 어머니는 동생이 고등학생 때 돌아가시고 맙니다. 글쓴이와 글쓴이의 언니는 이미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고, 동생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달 뒤에 새어머니가 들어온 탓에 동생은 아버지에게 배신감도 느꼈을 거라 합니다.

그 뒤 막내 동생은 "세상이 싫고 미웠는지, 자신을 파괴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가지 않았고 혼자 떠도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사무실에 앉아 편히 돈 버는 게 아니라 몸을 놀려 일 해서 먹고사는 동생". 글쓴이는 그동안 동생을 잘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애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게 되자, 혼자 지내는 동생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품어주지를 못했습니다.

대학도 나오지 않고 노동자로 사는 동생이 그리 자랑스럽지가 않아 남편과 시댁에 내세우지를 않았다. 동생이 잘났다면 왜 자랑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때 내 눈에는 동생이 못나 보여서 남들에게 이야기하기가 꺼려졌다. (줄임) 정이 그리웠을 동생에게 왜 그리 냉정하게 대했을까. 혹시 내게 어떤 부담이 올까봐 지레 피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남에게 내세울 만큼 잘나지 않은 동생이 창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슴 아픈 가족사에 이어 막내 동생에 대한 그동안의 감정까지 솔직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마음이 짠합니다.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동생의 방황(?)도 이해가 가고, 동생에 대한 글쓴이의 심정도 무엇 때문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김장 김치 속에 담긴 가슴 아픈 가족사와 진실한 '눈물'

이승숙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부끄러웠던 동생에게 '엄마'를 보냈습니다>
 이승숙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부끄러웠던 동생에게 '엄마'를 보냈습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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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동생에게는 어린 시절 마음에 남은 상처가 있어서 방황을 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했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쓰면 어떨까요? 욕먹을까봐 숨기고 못나 보일까봐 숨기고, 자꾸 이야기를 숨기면 사는이야기 글을 쓰는 의미가 퇴색됩니다. 당연히 읽는 사람의 관심도 반감되겠죠. 별로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서 대충 얼버무리거나 뭉뚱그려서 '퉁치고' 넘어가면 읽는 사람은 글쓴이의 의도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독자는 그걸 읽거든요.

막내 동생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던 글쓴이. 하지만 새로운 계기가 생깁니다. 바로 '김장'. 남편의 말을 듣고 멸치 젓국을 넣어 경상도식으로 담갔더니 김치 맛이 좋더랍니다. "맛있는 게 생기면 나눠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지 누구에게 줄까 생각하다가 문득 막내 동생이 떠올랐다"는 겁니다. 혼자 사는 동생에게 김치를 주려고 주소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냈고, 그렇게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된 겁니다.

동생은 누나인 나에게서 엄마를 찾는구나.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내게서 엄마를 찾았는데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으니, 자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소리 죽여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귀 속으로 들어갔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이 났고, 동생이 불쌍해서 귀가 멍멍해지도록 울었다.

후회의 순간이자 화해의 순간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동생에 대한 답답함,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눈물로 터져 나온 것이겠죠. 글쓴이의 감정이 최고로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너무 감정에 취해 여러 가지 '꾸미는 말'들을 중언부언 남발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을 여러 가지 추상적인 수식어로 표현하지 않고, 그 감정이 표현된 구체적인 행동('잠자리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으로 '넘치지 않게' 표현했습니다. 깔끔합니다. 너무 감정을 꾸며대면 독자는 거북해집니다.

동생이 먹을 김장 김치를 정성껏 포장해 보내고 "잠시라도 엄마가 동생에게 찾아와서 다정하게 지켜봐 주셨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덧붙이는 것으로 글은 마무리됩니다. 짜임새 있는 구성입니다. 동생과 통화한 장면을 한 대목 선보이며 말문을 열고(기), 가슴 아픈 가족사와 과거의 감정을 고백하며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승). 다시 현재로 돌아와 김장 이야기와 후회의 눈물을 말하며 감정을 끌어올리고(전), 정성껏 김치를 싸 보내고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글을 맺었습니다(결).

많은 분들이 올해도 누군가에게 김장 김치를 주고, 또는 누군가에게서 김장 김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 속에도 이처럼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겠죠. 이승숙 시민기자님의 사는이야기 부끄러웠던 동생에게 '엄마'를 보냈습니다를 읽으면서 저도 지난주에 고향에 있는 엄마한테서 얻어온 김장 김치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곰곰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한번 냉장고를 열고 '이야기'를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요점정리] 냉장고 속에도 이야기가 있다. 찾으려 하면 보일지어다!


태그:#사는이야기, #생활글, #사이다, #사는이야기다시읽기, #생활글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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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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