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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시는 엄마는 겨울만 되면 추위 때문에 고생을 하신다. 여간해선 보일러를 틀지 않기 때문이다.

"나 하나 때문에 온 집을 다 데우긴 아깝잖아. 가스비도 많이 나오고."

아마 넓은 집에서 혼자 산다면 엄마의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전기난로라도 사용하시라고 권해도 무조건 "괜찮다"고 하신다. 이럴 때 자식들의 마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짜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엄마가 올해 드디어 추위 앞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기난로를 사 달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전기난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기난로 선택기준은 크게 두 가지. 제품가격과 전력소비량이다.

김치냉장고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
 김치냉장고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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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엔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에 따라 몇 가지 정보를 표시한 '에너지소비효율 등급라벨'을 붙여야 한다. 라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등급 숫자다. 같은 에너지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따라 '1'부터 '5'까지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1등급 제품은 최하 등급인 5등급 제품에 비해 30~40% 전기를 적게 사용한다. 전기료 부담이 적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1등급 제품은 대체로 값이 비싸다.

등급 아래쪽엔 다양한 정보가 표기된다. 전력소비량과 1시간 사용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대부분의 가전제품에 공통으로 표기되는 정보다. 여기에 식기세척기는 1인당 1회 세척물 사용량을 1.2리터로 한다는 정보를, 진공청소기는 미세먼지 방출량을 추가로 제공한다.

라벨에는 친절하게도 제품별 전기요금도 적혀 있다. '45,000원/년', '7,000원/년' 이렇게 기간별 금액이 적혀 있는데, 엄마네 집에 적당해 보이는 전기난로에는 무려 '202,000원/월'이라고 나와 있었다. 고작 석영관 두 줄로 된 작은 히터인데, 어떻게 하면 전기요금이 한 달에 20만 원이 넘게 나온다는 걸까.

금액 산정기준을 보면 답이 나온다. 제품별로 가동시간 기준이 다르다. 냉장고는 24시간, 텔레비전 하루 6시간, 에어컨 하루 7.8시간, 전기밥솥 월 36.5회, 세탁기 월 17.5회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전기장판과 전기온풍기, 전기난로는 모두 하루 8시간 기준이다.

난로를 하루에 8시간씩, 그것도 전열과 온풍을 최대로 사용했을 때 한 달에 20만 2000원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전기요금 폭탄이다. 그러니 하루 서너 시간, 적당한 세기로 사용해야 감당할 수준의 전기요금이 나올 것이다.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것도 결국 '정치' 문제

엄마가 올해 드디어 추위 앞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기난로를 사 달라"고 하신 것이다.
 엄마가 올해 드디어 추위 앞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기난로를 사 달라"고 하신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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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소비효율 등급 표시제는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제품 생산을 유도하고, 소비자가 이를 선택하게 하는 좋은 제도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량을 모두 합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 같고, 전기를 생산하느라 엄청난 자원을 소비하고 환경까지 파괴하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 들지만, 사실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2010년 기준, 전기 사용량 중 산업용이 55% 이상을 차지하고 이 중 73.5%는 대기업이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2010년 기준 전기 판매단가는 주택용이 105.12원(1kW/h 기준)인데 비해 산업용은 81.23원, 산업용 중 대기업 요금은 78.32원이다. 기업의 전기요금이 가정용에 비해 약 30원이나 싸다.

게다가 가정용 전기요금엔 누진제가 적용된다. 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더 많은 요금을 내야 하는 징벌적 성격이 짙은 제도다. 결국 한국전력은 집집이 전기요금을 걷어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낮춰주고, 가정에서 아껴 쓴 전기를 대기업에 몰아주는 일을 도맡아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 여름, 누진제에 대한 논란이 덩달아 뜨거워졌다. 결국 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6단계 11.7배에서 3단계 3배수로 조정하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겨울철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은 다른 달에 비해 껑충 뛴다. 전기장판이나 난로 등, 전열기구 사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드디어 전기난로를 들이게 된 우리 엄마도 벌써 전기요금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 조바심을 낸다. 서민의 삶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정치인들을 잔뜩 뽑아놓은 죗값은 고스란히 국민 차지다. 이래서 정치가 민생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전기세, #소비전력,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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