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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터마을 반딧불이 풍경
 안터마을 반딧불이 풍경
ⓒ 월간 옥이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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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으로 접어드는 5월 말, 6월 초. 예로부터 호박꽃 필 무렵이면 안터마을엔 작은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손님. 이들은 깜빡깜빡 불빛을 밝혀 저마다 제 몸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뒷산부터 개울가, 심지어는 마을의 돌담까지도 환하게 이들의 불빛으로 장식되곤 했는데, 요즘 사람들이 보면 꼭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 같다고 했을까요? 한여름밤의 크리스마스, 충북 옥천 안터마을 주민들에게 추억처럼 남아있는 풍경입니다.

호박꽃초롱과 반딧불이

안터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연근(68)씨는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심심할 새가 없었다. 저녁을 먹은 뒤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볼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반딧불이다. 담장의 호박 덩굴 근처에는 어김없이 이들이 나타나곤 했다. 호박꽃을 따다가 그 속에 하나둘, 반딧불이를 잡아들이다 보면 또래 친구들도 삼삼오오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노란 호박꽃 하나에 반딧불이를 서른 마리쯤 잡아넣었지. 그러면 호롱불만큼 밝아서, 그걸로 책도 읽을 수 있을 정도였어. 동무들이랑 어울리면서 호박꽃초롱 이곳저곳 비추며 놀던 기억이 선하네."

현 안터교(수북리와 석탄리를 연결하는 다리) 너머에 있던 네 그루 정자나무 아래와 강가 주변도 반딧불이를 많이 볼 수 있던 장소다. 마을 뒷길에는 가로등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과는 달리 약한 불빛이었기에 그 아래로 반딧불이가 와글와글 달려들곤 했다.

"반딧불뿐이야? 지금은 보기 어려운 집게벌레, 사슴벌레, 노루나 사슴도 그때는 많이 있었지."

반딧불을 만나기가 눈에 띄게 어려워진 것은 1980년 대청댐이 들어선 이후. 안터마을 일부가 물에 잠기면서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던 아랫마을, 비옥한 논밭, 쉼터였던 네 그루의 정자나무는 영영 사라졌고 수몰민들은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서야 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은 반딧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딧불이 유충은 야트막한 습지에 살거든. 거기에 큰물이 들어서니까 유충이 다 쓸려 내려가고 서식지도 없어진 게지."

그나마 살아남은 반딧불이 상황도 녹록지는 않았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밤에도 환한 빛이 곳곳에 퍼졌고, 농약의 등장으로 곤충들이 발 디딜 곳이 점차 사라져 자연히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본래 주민과 공존하던 반딧불은 그렇게 깊은 숲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다시 나타난 반딧불이, 다시 살아난 안터마을
 
현 안터교(수북리와 석탄리를 연결하는 다리) 너머에 있던 네 그루 정자나무 아래와 강가 주변도 반딧불이를 많이 볼 수 있던 장소다. 마을 뒷길에는 가로등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과는 달리 약한 불빛이었기에 그 아래로 반딧불이가 와글와글 달려들곤 했다.
 현 안터교(수북리와 석탄리를 연결하는 다리) 너머에 있던 네 그루 정자나무 아래와 강가 주변도 반딧불이를 많이 볼 수 있던 장소다. 마을 뒷길에는 가로등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과는 달리 약한 불빛이었기에 그 아래로 반딧불이가 와글와글 달려들곤 했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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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를 감춘 채 오래도록 추억 속에 잠든 듯했던 반딧불이. 어느 날, 이들이 주민 곁으로 다시 찾아왔다. 1999년, 안터마을에 반딧불이 대규모 서식지가 있다는 제보가 옥천신문으로 날아든 것이다. 사라진 것 같았던 반딧불이는 늦은 밤, 마을 논과 산속 계곡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 소식은 곧 대전대 생물학과 남상우 교수에게 전해졌고, 그는 마을을 두 차례 둘러본 뒤 "반딧불은 환경의 보고로서 도시인들에게 향수와도 같은 존재"라며 "환경오염을 줄이고 서식지역을 확산시킨다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옥천신문> 1999년 6월 12일자 기사 '반딧불 서식처 둘러본 대전대 남상우 교수').

과거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반딧불이가 20년 사이 '마을의 주요한 문화자원'이라는 특별한 존재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게 알음알음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반딧불을 만나려 곳곳에서 안터마을을 찾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안터마을 반딧불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당시 이장을 맡았던 오한흥(전 옥천신문 대표)씨가 마을 축제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 뒤부터다. '반딧불과 함께하는 안터마을 여름 문화체험장'이라는 이름으로 축제가 열리자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왔다.

"안터마을 밤길을 걸으며 반딧불이를 만났을 때, 그 자체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딧불이 체험'이라는 개념보다 시골의 밤길을 걷는 정취를 만끽하고, 덤으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지요." (오한흥 전 이장)

이러한 취지로 시작된 안터마을 반딧불이 축제는 2011년부터 3년 연속 우수 농어촌축제로 선정돼 농림수산식품부 '농어촌축제지원사업'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안터마을 주민인 최순정(60)씨는 당시 풍경을 회상했다.

"처음 축제 시작하고 많을 때는 하루 관광객이 400~500명 넘도록 왔으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반딧불이가 늦은 밤중에 나오니까 낮에 할 수 있는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같이 회의하고 준비하니 조용하던 마을에 활기가 막 돌았지요."

반딧불이를 지키는 사람들

주민들은 축제 기간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반딧불이 서식지 보호를 위해 힘썼다. 제초제 혹은 농약,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쓰레기 관리, 마을 청소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 반딧불이 활동하는 시기에는 밤중 가로등을 끄며 불빛을 최소화하기도 했다. 현 석탄리 이장이자 10여 년 전 석탄리에 귀촌한 김혜자 이장도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 여기 올 적에는 마을에 반딧불이 축제가 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주민들이 밤중에 '불을 끄라'고 하시는데 영문도 모르고 놀라서 껐던 기억이 나죠(웃음). 알고 보니 반딧불이를 위한 행동이었더라고요."

반딧불이 축제는 오한흥 이장 이후로도 박효서 이장, 유관수 이장이 명맥을 이어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까지도 계속됐다. 축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반딧불이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도 점차 커졌다.

2017년 자연환경국민신탁이 안터마을 반딧불이 서식지를 매입하기 위한 '옥천 트러스트 에코증권'을 발행한 것이 그 사례. 서식지 보존에 공감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개인당 1만 원 이상을 투자해 모금한 것인데 그 결과 2018년 12월, 1800여만 원이 모여 첫 매입지인 동이면 석탄리 183번지와 184번지(1천800㎡ 규모)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동이초등학교의 어린 손길도 포함돼 있다.

안터마을의 깨끗한 자연환경이 안팎으로 알려지자 이곳에 살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도 늘어났는데 실제 안터마을 가구 수는 2011년에는 54가구, 2014년에 82가구로 점점 늘어나 현재 101가구에 이른다. 수몰 전 가구 수가 120호였으니, 안터마을은 반딧불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코로나19로 축제를 지속할 수 없던 2020년과 2021년. 이때도 반딧불이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았다. 2021년 대청호 안터지구가 환경부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것이다. 전남 순천의 순천만, 강원 철원의 DMZ 철새 도래지 등이 국가 생태관광지역에 해당한다.

대청호 안터지구의 경우 안내면 장계리, 옥천읍 수북리, 동이면 석탄리, 안남면 연주리 등 4개 지구(전체 면적 43㎢)가 포함돼 있는데, 그간 안터마을에서의 반딧불이 보존 활동은 대청호 안터지구가 생태관광지구로 선정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환경부의 전문가 컨설팅을 비롯한 주민협의체 구성 및 운영, 생태관광자원 조사·발굴 및 프로그램 개발, 소득 창출, 홍보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생태관광지역으로서 자연환경을 보존해야 할 새로운 명분인 동시에 든든한 지원처가 생기는 셈이다.

반딧불이와 골프장, 공생할 수 있을까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이들을 우려스럽게 한다. 인근 마을인 동이면 지양리 산56번지 일원에 골프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이들을 우려스럽게 한다. 인근 마을인 동이면 지양리 산56번지 일원에 골프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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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봉인에서 풀려나고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안터마을. 그러나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이들을 우려스럽게 한다. 인근 마을인 동이면 지양리 산56번지 일원에 골프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 예정지는 안터마을 반딧불이 서식지와 직선거리 700m에 이를 만큼 가까이 위치해 골프장이 조성될 경우 반딧불이 서식지 보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위험이 있다. 골프장 개발 과정에서 단일 작물인 잔디를 깔고, 농약이 다량 사용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

㈜관성개발의 골프장 개발 움직임은 10여 년 전인 2012년 무렵에도 있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반딧불이 축제를 개최하지는 않지만, 지장리에도 반딧불이 서식지가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양리 712번지 일원(2천215m2 규모)은 램리서치코리아가 후원, 자연환경국민신탁이 관리하는 옥천 반딧불이 서식지 '별 내린 숲'이다.

안터마을 주민들은 "자연환경과 반딧불이 서식지 보호를 위해 골프장 개발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대다수. 하지만 일부에서는 "골프장 운영을 잘 감시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한다면 공존할 방법도 있을 것이고, 만일 골프장을 통해 관광객이 유입된다면 마을 경제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골프장 개발이 결국 반딧불이 서식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임'에는 동의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반딧불이) 축제할 때 보면, 반딧불이가 차 불빛에만 노출돼도 10분 정도는 모습을 감춰요. 골프장에서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불빛을 켜두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하지요. 생태관광 움직임과도 분명 결이 맞지 않는 일이에요." (마을 주민 A씨)

한 차례 수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안터마을. 지금의 위기는 20년 전, 대청댐 건설을 앞둔 시기를 닮은 듯하다. 반딧불이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을 다시 한번 잃을지 모르는 위기다. 과연 반딧불이와 골프장은 공생할 수 있을까?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는 계속될 수 있을까? 주민들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일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월간옥이네 통권 73호(2023년 7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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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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