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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을 쓰기에 앞서 하나의 전제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그건 바로 과거와 현재, 미래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름대로 역사적, 과학적, 논리적 근거를 짜깁기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언어를 함축해 이야기하는 게 직업인 시인 월트 휘트먼은 과거, 현재, 미래가 떨어져 있지 않고 공존한다는 말을 굳이 남겼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임을 밝혔다. 양자역학적 해석에 따르면, 모든 건 절대적이지 않고(시간마저)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끊임없이 변해간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각각 다르게 존재하지 않고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뇌과학적 발견과 끌어당김의 법칙도 이 특별한 서사를 빛내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3차원적 상상만이 가능한 인간의 뇌로 이해하기엔 복잡한 게 많다. 계속 겸허해진다.

그러니까 2022년 10월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은 과거의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 존재하고 미래의 관계 안에서 변해갈 이야기다. 참사 당시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던 평범한 청춘으로서, 그리고 사건 이후 공동체와 더 강한 연대감과 동시에 삶의 유한함을 더 자명하게 깨달은 작은 존재로서 조명한 한 조각의 기록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프로젝트의 정신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공명하기를 바란다.

세상엔 기억할 게 무척이나 많지만 이태원참사는 축제가 참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자유를 외치는 청년들이 자유를 잃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국가적 추모 형식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2022년의 핼러윈은 곧 2023년의 핼러윈이고 2040년의 이태원이다. 관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였고 나는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섹터와 연을 맺게 된 프로젝트 행사 사진. 참사 당일에도 친구들과 섹터118에서 시간을 보냈다
 섹터와 연을 맺게 된 프로젝트 행사 사진. 참사 당일에도 친구들과 섹터118에서 시간을 보냈다
ⓒ 노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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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시 내가 친동생을 포함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태원 라운지 클럽 '섹터 118'(아래 '섹터')의 대표 곽범조(35)님을 인터뷰했다.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엔틱가구 골목을 따라 3분만 걸으면 나오는 곳으로 참사 현장에서 길을 하나 두고 떨어진 곳이다. 섹터는 내가 이태원 참사 이전에 프로젝트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 애정 어린 공간이었다.

참사 이후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던 범조님이 어렵게 기록에 동의했다.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앞으로도 이태원의 문화를 계승하고 싶은 마음과 과거 연을 맺었던 손님과도 지금 공명하고 싶은 소중한 마음을 보였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지난 1여 년간 아파했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중 한 명인 범조님의 기록을 남길 수 있어 영광스러운 마음이다. 끝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것 외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웠음을 밝히며 기록을 전한다. 아래는 인터뷰를 가독성을 높여 편집한 내용이다. 가급적 가감 없이 싣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놀이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태원에 터를 잡은 이유 
 
질문에 답을 하는 곽범조씨의 모습
 질문에 답을 하는 곽범조씨의 모습
ⓒ 용산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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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기회로 뵙게 되었네요. 뜬금없이 연락을 드렸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조금 정치적인 인터뷰일까 봐 많이 걱정했어요. 그런 게 아니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 혹시 인터뷰 요청을 받아 본 적 있나요?

"네, 많아요. 해밀턴호텔 뒤쪽에도 운영하는 가게가 하나 더 있거든요. 거기 있는 상인들한테 인터뷰 요청이 엄청 들어왔어요. 그런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 번 인터뷰하고 그 다음부터는 안 했어요."

- 지금 이태원에 거주하고 계시고, 영업도 하고 계시죠. 얼마나 되셨을까요?

"섹터는 한 5년 되었고, 거주한 지는 한 8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해밀턴 쪽 가게는 이제 7~8개월 되었네요. 사고 터지기 딱 한 달 전 쯤 계약했어요. 섹터에서는 음식도 팔고 칵테일이나 와인도 파는데, 저기는 백프로 펍이에요."

- 특별히 이태원에 가게를 얻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너무 어린 연령층이 찾는 곳이 아니라서 좋았어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 이태원에 비하면, 홍대는 너무 어린 분들이 많고 강남은 너무 서울 사람 같다고 해야 되나. (웃음)"

- 무슨 말인지 알죠!

"또 이태원에는 외국인들도 많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래서 이전부터 이태원에 자주 놀러 왔어요."

- 이전에도 놀러 오셨군요. 그러다 가게까지 열게 되셨고요. 이태원의 그 친구 같은 느낌을 계속 느낄 수 있었나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많이 느꼈어요. 그전까지 손님들이 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다가 깨달은 거죠. 이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단골 분들 오시면 엄청 기분이 좋아요. 호태(필자)님이 연락 주셨을 때도 그랬고요. 그래서 인터뷰 하는 거예요."

- 맞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듣고 싶어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단골 한 분이 오랜만에 오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술을 많이 드셨는지 막 오바이트를 하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걸 옆에서 손으로 받았는데, 기분이 진짜 하나도 안 나빴어요. 그만큼 생각이 바뀌었어요."

- 참사 발생하기 전 한 1년 정도의 기간 중이었겠네요.

"그때가 정말 좋았어요. 저를 포함해 다른 사장님들도 코로나 이후에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도 꿈꾸는 것 같아요"

- 참사 당시에도 영업을 하고 계셨던 거죠?

"해밀턴 뒤쪽 가게에 있었어요. 그 주변이 원래 음악 소리가 엄청 커요. 그런데 갑자기 재난 영화처럼 모든 음악이 꺼졌어요. 신나 있던 손님들도 휴대전화만 쳐다보는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몰랐어요. 친형이 연락을 줘서 알게 되었어요. 알바생 애들 밖으로 내보내지 말고 손님들도 다 매장에 계시게 하라고 하더라고요."

- 저는 섹터에서 있었잖아요. 갑자기 음악이 꺼지고 불이 켜졌던 게 기억이 나거든요. 음... 그럼 그 당시에 범조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감정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이게 세상에 일어날 만한 일인가 싶었어요. 지금도 꿈꾸는 것 같아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거죠. 핼러윈이 그해에 처음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거든요. 그전에 제가 놀러 왔을 때도 사고라고 해봤자 술에 취해 집을 못 찾는 정도였지."

- 저는 그 당시 연락을 많이 받았거든요.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범조님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네, 연락 많이 받았고요. 우선 부모님, 그리고 여기서 일하던 친구들 부모님 빼고는 다 답장을 일주일 뒤에 했어요."

-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답장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구는 사고를 직접 겪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거든요. 일하는 친구들 부모님들한테만 직접 전화했어요. '여기 이제 괜찮으니까 상황 풀리면 택시 태워서 보내겠다' 이런 식으로… 애들이 다 어리거든요."
 
곽범조씨가 운영하는 섹터의 내부. 영업을 하지 않는 월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곽범조씨가 운영하는 섹터의 내부. 영업을 하지 않는 월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용산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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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만 코로나가 연장된 것 같아요 

- 참사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코로나가 연장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이태원에서만요. 빚도 많이 졌어요. 손님들 발길이 끊겼으니까. 매출 유지가 안 되어서 계속 대출 받고 돈을 빌리고 있어요. 오히려 코로나 때 손님이 더 많이 왔어요. 솔직히 저조차도 안 가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 누가 여기서 즐거운 분위기를 내며 술을 먹으려 할까요."

한동안 영업도 안 하셨다고요.

"다른 사장님들은 거의 한 달 안 했어요. 저는 여유가 없어서 7일 정도밖에 못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손님이 오든 안 오든 문만 열어 두었어요."

영업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있을까요?

"일단 한국인에 대한 마케팅을 줄였어요. 대신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쪽으로 갔어요. 실제로 반응도 좋았어요."

외국인분들은 조금 더 편하게 이태원을 찾고 있나요?

"아니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전달받는 게 늦었어요. 그래서 사고에 대한 반응이 한 달 뒤에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다음 세네 달 동안에는 한국인도, 외국인도 안 왔던 거죠."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하셨어요?

"그전까지는 각자 살기 바빴는데, 코로나 때 시간이 워낙 많이 남아 옆 가게에 인사를 드리면서 상인들끼리 서로 친해졌거든요. 그러고 나서 이벤트도 같이 많이 열었고요. 이번에는 다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암묵적으로 추모의 시간을 가졌죠. 임대료도 내야 하고 애들 인건비도 줘야 하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파티를 하기에도 좀 미안하고요. 이제 그냥 음식 팔고 칵테일 먹고 대관하고, 그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죠."

생계와 추모 사이에서

- 해밀턴 뒤쪽은 다시 참사 이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운영하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나요?

"거의 80%까지 올라왔어요."

- 저는 한동안 이태원에 오지 못했어요. 추모 공간 생기고 나서 한두 번 방문했던 것 같아요. 범조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추모를 하셨나요?

"저는 거의 이태원에 있거든요. 집도 여기라서요. 보통 밤에 활동하는데, 그 골목을 일부러 자주 지나가요, 일부러. 기도하진 않고 그냥 지나가요. 생각을 하려고요. 잊기엔 조금 크기도 하고, 잊고 싶지도 않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사장님들도 다 그 골목을 일부러 많이 지나다녀요."

- 그렇다면 생업이 걸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추모 공간을 어떻게 유지하면 좋을까요?

"유가족분들이 원하는 걸 최대한 해드리고 싶었어요. 대신에 영업 제한 없이 문만 열었으면 했어요. 단 한 번도 추모 공간에 대해 치우라고 한 적 없었어요. 저는 그냥 문만 열고 싶었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가족들을 지켜야 하니까. 그런데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니까 아예 인터뷰 자체를 꺼렸거든요. '나라가 이 정도인가' 생각했어요."

- 충분히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올해도 핼러윈이 돌아오잖아요. 그 모습이 어떨 것 같을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좀 더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을까요? 원래는 주최자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즐겨 주셨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고가 생겼어요. 아마 상인 분들 모두 많이 긴장해 있을 거예요. 저도 솔직히 너무 긴장되거든요. 좋게 넘어갔으면 합니다."

- 섹터에서도 지금 핼러윈 파티를 기획하고 있나요?

"아직은 안 하는데, 그래도 하기는 하겠죠. 해야 하는 거니까."

- 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참여할게요. 정부나 공공 차원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찾아보니까 경찰들이 통제하는 시스템이 있더라고요. 아마 그런 걸 하지 않을까 해요."

끝내 회복되지 않는 것

이 가게를 내놓으셨다고 들었어요.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냥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어요. 이태원을 좋아하긴 하지만, 마음이 조금 떠났다고 해야 되나… 이런 일이 생기면 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니까요. 그게 내놓은 이유 중 하나죠. 방어책 같은 게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정부에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문을 열고 싶어도 열 수도 없고, 광고를 하자니 괜히 또 눈치 보이고."

만약에 참사 이전만큼 사람들이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접고 싶은 마음이신 건가요?

"네, 섹터는요. 아마 다른 데서는 더 하겠지만, 여기는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죠."

- 참사의 기억을 안고서 어떻게 이태원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다들 저처럼 머리 한 곳에 각인되어 있겠죠. 자연스럽게 안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쓸 거고요. 그런데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어린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잡혀가겠죠, 천천히. 시행착오를 거쳐 안전한 시스템이 잡힐 거예요. 어른들을 통해서 이 아이들이 진짜 재밌게 놀 수 있도록 말이죠. 저도 그 아이 중 한 명이었는데,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거든요."

굉장히 와닿는 표현이에요. 

"여기서 오래 장사하신 분들은 다들 예전 자신의 기억을 친구들, 동생들한테 전하고 싶어하거든요.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 못했어요. 저한테 막 '후배'라는 거예요. 그걸 이해 못했는데 이 일이 생기고 보니까 알겠어요. 제가 놀았던 공간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물려줬던 거야. '내가 그때 재밌었으니까 너희들도 한번 해봐.' 이제는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겠죠. 어릴 때는 홍대 가서 놀고, 재미없으면 강남 가고, 그러다 나중에 이태원으로 가고. 이게 다 그전에 놀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들이고, 우리가 이어가는 거예요."

이태원만의 매력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태원을 대체할 곳은 없어요. 그 분위기를 따라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지역에서 100% 카피할 수가 없어요. 압구정이나 홍대 사장님들도 다 알고 계세요. 그래서 그냥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에요. 이태원 사장님들은 이태원만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가다듬으려 하고요.

흔히 '이태원 갬성'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게 어떤 거냐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자유분방하고 조금 편안한 걸 뜻해요. 강남 갈 때랑 이태원 갈 때랑 스타일이 달라요. 이태원은 퇴근하고 곧장 들를 수 있다면, 강남은 집에 한 번 들렀다 세팅하고 가야 할 것 같은 거죠. 한편, 외국인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요. 그런 자유로운 느낌을 다른 데서 만나긴 힘들죠. 원래 그랬던 곳입니다."

이태원에서 시작해서 이태원으로 끝난 인터뷰. 그 사이엔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 '원래 그랬던 곳' 이었던 이태원이 미래에도 현재와 연결될 수 있길 바라며 기록을 마친다.

*기록에 기여해 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인터뷰어 : 노호태 / 인터뷰이 : 곽범조

태그:#이태원, #이태원참사, #1029이태원참사, #다시놀고싶다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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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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