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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외부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외부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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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큼지막한 볶음솥에는 무말랭이가 알맞게 덖어지고 수증기가 폴폴, 추운 겨울날 실내를 덥힌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더니, 열린 문 틈새로 정말 참새 한 마리가 들어와 곡식을 쪼아 먹는다. 

안쪽에서는 야트막한 책상에 앉은 네 사람이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슥슥, 영양떡을 먹기 좋게 잘라 소포장한다. 오래도록 함께 일해온 듯 능숙한 합이지만 알고 보면 이들, 적하리 동네 사람들이다. 놀러 온 김에 일손을 돕는단다.

농촌의 정이 남아있는 이곳은 동이면 유일한 방앗간인 '적하떡방앗간'. 인터뷰는 동지를 앞두고 있는 지난해 12월 20일 진행됐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곳을 운영하는 정옥란(68)씨를 만나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계기술자 남편, 방앗간을 인수하다

현 적하리 마을회관 건물(적하1길 29)은 본래 '새마을방앗간'이 있던 자리다. 이곳에는 오래도록 방앗간 일을 해온 노부부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황진상(71)·정옥란(68)씨 부부에게 인수를 제안했다. 남편 황진상씨는 농기계 등 각종 기계를 잘 다루는 기술자였기에 방앗간 기계를 다루는 일에도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한 것. 

"남편은 동이면농기계센터에서 기술자로 일했지요. 손재주가 좋아서 이것저것 잘 고치고 농사일에도 최고인 사람이에요. 지금도 농기계 고치고 농사일을 해요. 방앗간 일은 이전부터 주로 제가 맡아서 했지요." 

정옥란씨는 방앗간을 인수한 뒤 옥천읍 삼양떡방앗간에 열흘 정도 머무르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먼저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던 남편 황진상씨의 지인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다. 물론 처음엔 서툴러 이런저런 실수도 해가며 일을 손에 익혔다. 

지금의 방앗간은 1992년, 마을회관 자리에서 현 위치로 옮겨온 결과다. 뒤쪽은 부부의 가정집으로, 앞쪽 건물은 방앗간과 창고로 사용 중인데 이곳에는 처음 새마을방앗간 적부터 사용하던 오래된 기계도 하나 있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이고 돌아가는 볶음솥 기계다. 

"이건 우리가 가게 인수하기 전부터 썼던 기계니까, 50년쯤 되었을지도 몰라요. 아저씨가 기계를 다루니까 직접 고쳐서 지금껏 사용해온 거죠. 기름틀도 아주 오래된 거예요. 그것도 베어링 부품만 교체해서 수리해 쓰면 되니까." 

방앗간에는 볶음솥, 기름틀 외에도 고추분쇄기, 곡식 빻는 기계, 도토리 빻는 기계, 돌로라, 스팀기, 식혜용 기계 등 여러 기계가 있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새것으로 교체한 것도, 수리해 사용하는 것도 있다. 방앗간 벽면을 가득 채운 기계가 이곳의 역사이자 가장 큰 재산이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기계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살뜰한 관리 덕분이라고. 

"한번 기계 쓰고 나면 깨끗이 닦아 놓아야지요.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것과 똑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남편에게 부탁해 수리하고요." 

시대가 흐르며 달라진 것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내부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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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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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면에는 적하떡방앗간 외에도 방앗간이 한 곳 더 있었다. 바로 평산방앗간(동이파출소 인근 가정집)이다. 10여 년 전 문을 닫은 뒤로는 적하떡방앗간이 동이면 유일한 방앗간이 됐는데, 그렇다고 동이면에서만 주문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마을분들도 물론 많이 찾아오시고, 옥천읍이나 전국 각지에서도 주문 전화가 와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이 찾으시는 경우가 제일 많지요. 떡 주문도 있지만, 곡식 제분해달라는 주문, 볶아달라는 주문도 있어요." 

정옥란씨는 전화로 주문을 받아 메모지에 잘 받아적는다. 주문사항이 적힌 메모지를 수납장에 잘 두면 접수 완료.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이라면 직접 배달하기도 하고, 멀리 타 지역 고객에게는 택배로 결과물을 전해주곤 한다. 시대가 지나면서 달라진 점인데 그 외에도 변화는 또 있다. 

"이전에는 다들 직접 농사를 지었잖아요. 본인이 농사지은 것 가지고 와서 그걸 떡으로 해 먹기도 하고, 볶아서 차로 마시기도 하고, 고추 말려서 고춧가루 해 먹고... 그러니까 방앗간이 일종의 농산물 가공센터 역할을 한 거죠. 떡도 이전엔 스팀 기계로 쪄주기만 하면 사람들이 통째로 들고 가서 알아서 먹기 좋게 잘라먹고 그랬어요. 이제는 그러면 누가 가져가나요. 먹기 좋게 잘라서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소포장까지 해주어야 하죠. 이전에는 대용량이었다면 지금은 조금씩 주문하는 경우가 많고요." 

결혼식이나 환갑 잔치 등 경사를 직접 집에서 치르던 과거와는 달리, 뷔페식으로 바뀌면서 떡에 대한 수요도, 떡 선호도도 많이 달라졌다. 

"처음 방앗간 할 적에는 바람떡이 유행이었지요. 그때 바람떡 참 많이도 만들었어요. 바쁠 때는 눈붙일 틈도 없이 일했지요. 하루에 떡 주문이 10건도 넘을 때가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곡물도 깔끔하게 손질된 게 오지만 예전에는 쌀에 나락도 섞여 있고 돌이나 모래가 섞인 것도 많아서 하나하나 걸러내야 했지요."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의 풍경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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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이 가장 북적이던 시기는 역시 명절일 테다. 그중에서도 설날은 떡국을 먹는 전통이 있기에 방앗간이 가장 바쁜 날이었다. 지금은 설날이라 하면 당연히 음력 1월 1일을 떠올리지만, '신정'이라 불린 양력 1월 1일과 '구정'으로 불린 음력 1월 1일 중 어느 때를 설날로 인정할 것인가는 오래도록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전통적으로는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지켰지만,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이 1896년부터 태양력을 도입한 이후로 혼동되기 시작, 일제강점기에는 음력 제도를 없애기 위해 갖가지 핍박을 당하기도 했다. '구정'이라는 말 역시 음력이 폐지돼야 할 존재임을 내포하고 있는 말로써 사용된 것이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설립된 이후로도 구정은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하다가 1984년 전두환 대통령 때 음력 1월 1일이 '민속의 날' 공휴일로 지정됐고 1989년 본래 이름인 '설날'로 바뀌어 3일 연휴를 유지하게 됐다. 그러니까 이 시기는 설날이 두 번 있었던 셈이다. 

"그 시기가 방앗간이 쾌재를 부르던 날이었지요. 일 년 중 가장 바쁜 설날을 두 번 쇠던 시기였으니..." 

못 만드는 떡 없어요
     
오랜 세월 방앗간을 운영해온 만큼, 그동안 각종 떡을 많이 만들어온 정옥란씨다. 가래떡, 절편, 송편, 영양떡, 바람떡, 시루떡, 백설기... 방앗간 벽 한쪽에 정리된 맞춤떡 요금표가 그간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요즘은 손님들이 영양떡 많이 주문하시더라고요. 먹기 좋고 맛도 좋다고. 곧 설날이 되면 떡국용 가래떡 한참 또 뽑겠지요(웃음)."

방앗간이 가장 바쁜 시기는 수확 철인 10월과 11월. 이렇다 할 농산물이 없는 12월은 오히려 한가한 시기라지만 정옥란씨는 여전히 한시도 앉을 틈 없이 바삐 움직인다. 과거에 비할 수는 없겠다지만 적하떡방앗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3~4년 전부터는 아들이 대를 이어 방앗간을 운영할 의사를 밝히고 어머니를 도와 때때로 일손도 돕고 있다고.

적하떡방앗간은 마을 주민들에게 여전히 꼭 필요한 편의시설이자 사랑방,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방앗간 문을 나서는 길, 제분기가 또 한 번 바삐 움직이며 하얀 쌀가루를 만들어낸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 방앗간 마당에 이들을 응원하기라도 하는 듯 소복이 눈이 쌓인다.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정옥란씨
 충북 옥천 적하떡방앗간 정옥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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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많은 옥천의 방앗간 이야기는 <월간 옥이네> 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월간옥이네 통권 79호(2024년 1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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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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