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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칡소 농가 이무구·박종선씨 부부
 경북 의성 칡소 농가 이무구·박종선씨 부부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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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갈색과 검은색 무늬가 마치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칡소'. 황우(흔히 알려진 누런 소)가 우리에겐 가장 익숙하지만 칡소를 비롯해 백우, 흑우 등 다양한 색의 토종 소가 이 땅에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나머지 재래 소들. 그중 칡소의 경우 현재 약 2300여 명(命)이 전국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것' 갈망하던 그에게 찾아온 칡소

194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무구씨가 의성에 자리를 잡은 건 1969년. 한창 이촌향도가 가속화되던 시기, 이무구씨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의성으로 향했다. 마침 의성에 살던 친척의 사과밭 일곱 마지기(1400평, 약 4630㎡)를 이어받아 나름의 밑천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건 축산이었다. 어릴 때부터 푸른 들판 위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다. '푸른 사슴의 집'이라는 그의 농장 이름은 귀농을 마음먹은 그때의 꿈을 여전히 간직한 채다.

"푸른 사슴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그런 바람을 갖고 지은 이름이죠. 그래서 토종 농사도 짓고 우리밀 지키기 운동도 하고... 귀농 이후 제가 했던 활동을 생각해보면 결국 다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가톨릭농민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활동을 함께 하며 그는 나름의 농업관도 착실히 구축해간다. 그러다 1983년 젖소를 시작으로 꿈꾸던 축산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한우도 함께 사육하게 됐던 그가 본격적으로 칡소와 연이 된 것은 1994년. 우연히 칡소를 알게 된 그는 '토종 소'라는 말에 앞뒤 잴 것 없이 축사에 칡소를 들인다. '우리 것'을 찾으려는 욕구를 오래 품어온 덕에 토종닭을 키워 주변에 퍼뜨리는 등 나름의 노력도 해왔던 그다.

"우시장에서 우연히 칡소를 봤는데, 그게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유심히 살펴봤죠. 그러면서 칡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여기 얽힌 여러 역사적 이야기나 사회문제를 인식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칡소에 더 애정이 가더라고요."
 
이무구·박종선씨 부부가 사육하는 칡소
 이무구·박종선씨 부부가 사육하는 칡소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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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칡소 농가 이무구씨
 경북 의성 칡소 농가 이무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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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이나 관련 기관을 찾아 칡소 보전의 필요성을 목이 터져라 설파하고 주변에도 틈만 나면 칡소 이야기를 했다. 나름대로 칡소 보급을 위해 무진 애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버티는' 중이다. 많을 때는 그의 축사에 150여 명(命)의 칡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송아지까지 모두 포함해 20명(命)을 간신히 넘는다.

"칡소도 우리 토종이잖아요. 토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경쟁력이 없으니 이를 키우려는 농가 발굴도 어렵고요. 여기에 글로벌 식품 기업과 대기업이 독식한 유통 구조 문제까지 더해지죠. 물량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는 자본의 방식을 우리 토종이 따라가려면 오히려 경쟁력이 없어진다고 봐요. 저 역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최대 성과를 낼 생각 말고, 그저 내 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하고요."

그의 이런 철학은 칡소 사육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인공수정을 하지 않고 가능한 자연 상태에 가까운 방식으로 칡소를 기르고 있다. 과거 젖소, 한우를 기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젖소 수명이 2년을 겨우 넘는다는데 우리 집 젖소들은 10년 이상을 살다 갔다"는 게 그 마음의 위안이며, 축산농가로서의 자긍심이다. 

농민으로서 자연스레 사랑하게 된 토종씨앗

이무구씨의 아내 박종선씨는 1953년 경북 선산군 도개면(현 의성군 구천면)에서 나고 자랐다. 농민의 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도운 그는 "농사짓는 집으로는 죽어도 시집 안 간다"고 마음먹었더란다.

물론 사람 사는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게 쉽지 않다. 1977년 농사짓는 이무구씨와 결혼하며 의성으로 이주하게 됐으니 말이다.

결혼 후 사과 농사 그리고 남편의 꿈인 축산을 함께 거드는 사이 박종선씨 역시 농민으로서 애정을 갖게 되는 분야가 생겼다. 그게 바로 '토종씨앗'이다.
 
경북 의성 칡소 농가 박종선
 경북 의성 칡소 농가 박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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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 활동을 계속 했는데 거기서 토종을 많이 접했죠. 땅콩, 메주콩, 마늘, 오이, 파, 들깨...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며 전국 다른 여성농민들과 만나는 행사에서도 토종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씨앗 나눔도 하고, 수확한 열매를 이웃들과 나눠먹기도 하고요."
 
그가 보다 본격적으로 토종 농사에 몰두하게 된 건 2000년부터. 함께 살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텃밭 운영을 온전히 박종선씨가 맡게 되면서다. 300평 규모의 크지 않은 밭이지만 여름과 가을이 되면 그와 가족이 좋아하는 토종 작물이 이곳을 가득 채운다.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서 모두 유기농으로 길러요. 배추, 무도 일일이 손으로 벌레를 잡아가며 기르고요. 우리 가족들 먹고 남는 건 의성로컬푸드매장에 내기도 하죠. 특히 우리 며느리가 토종 농산물을 볼 때마다 너무 신기해하고 좋아해요. 그 모습이 참 흐뭇하더라고요."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이무구씨도 한 마디 거든다.
 
"자본이 우리 입맛을 많이 바꾸지 않았습니까. 더 보드랍고, 더 달콤한 것에 길들이면서요. 그러다 보니 토종의 다양한 맛과 모양이 오히려 이상하고 안 좋은 것으로 느껴지게 된 거죠. 하지만 가만히 보면 토종 중에 저장력도 좋고 조직도 더 야물고 식감도 좋은 게 많아요. GMO니, 개량종자니 다 위험성을 안고 있는데 우리 토종을 더 잘 가꾸며 발전시키면 좋지 않겠어요? 그래서 여전히 토종을 지키는 저희 같은 농민들이 있는 거고요. 우리도 힘닿는 데까지, 농사를 접을 때까지 계속 우리 밭을 토종으로 지켜가려고 합니다."
 
이무구·박종선씨 부부가 사육하는 칡소
 이무구·박종선씨 부부가 사육하는 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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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통권 79호 (2024년 1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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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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