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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오마이뉴스에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황주찬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한라산 정상 오른 다섯 살 막내, 참 영악하네요>
 황주찬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한라산 정상 오른 다섯 살 막내, 참 영악하네요>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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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때 정기적으로 산에 다닌 적도 있는데요, 한 4~5년쯤 전이니까 20대 후반 시절입니다. 같이 다니던 모임의 '형님'들은 거의 사오십 대. 아버지를 따라온 '주니어'들도 많았는데요, 사실 저는 그 친구들이 좀 미웠습니다. 나이답지 않게 씩씩하게 정상까지 잘 올라가던 그네들과, 나이답지 못하게 기진맥진 겨우겨우 산을 타던 저. 형님들 입에서는 "저 어린 애들도 저렇게 잘 올라가는데, 넌 한창 나이에 왜 그리 비실거리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죠.

그때 황주찬 시민기자의 글을 읽었다면 꼬맹이들의 꼼수(?)를 알 수 있었을 텐데…. 10월 1일 게재된 황주찬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한라산 정상 오른 다섯 살 막내, 참 영악하네요>에는 한라산 정상을 오르며 어른들의 칭찬을 받은 다섯 살 막내아들의 '비밀'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희생한 '삼형제 아빠' 황주찬 시민기자의 눈물겨운, 아니 '진땀'겨운 노력도요.

글쓴이의 '입방정'에 대한 자책으로 글은 시작합니다. "느닷없이 제주도 푸른 바다와 한라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다"던 아내의 말에 "추석에 쉬는 날 많으니 온 가족이 한라산에 오르자고" 약속해버린 것을 후회한 것이죠. 새벽부터 세수를 하고 주먹밥을 준비하고 부산을 떨며 시작한 산행. "물 귀하다는 한라산에서 시원한 생명수 콸콸 쏟아지는 샘터도 눈 딱 감고 지나"가면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 까닭은 "백록담 못 미쳐 진달래밭대피소가 있는데 낮 12시 30분까지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그렇게 숨차게 정상 100미터 앞까지 올라왔습니다. "숨이 턱에 차오릅니다. 다리는 이미 풀렸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저도 숨이 차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문제의 막내가 등장합니다. 글쓴이는 혼자 걸어서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향해 걸어가는 막내를 보고 "씩씩하게 계단을 잘도 올라갑니다",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칭찬을 퍼붓습니다. 다섯 살 꼬마가 높은 산을 오르니 신기한가 봅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대뜸 "영악한 모습입니다"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막내는 산 중턱부터 "제(글쓴이) 어깨 위에서 달게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든 아들을 목말 태우고 한라산 정상까지! "어깨 위 막내 균형 잡으랴 돌부리 피하랴 한바탕 서커스 공연을 펼치며 산에 올랐"다니,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하며 데리고 와서 정상 100미터 앞에서부터 걸어 올라갔는데, "졸지에 혼자 힘으로 한라산 걸어 올라온 기특하고 대단한 아이가 됐"답니다. 글쓴이가 "그 꼴 보니 제 어깨가 더 아픕니다"라고 눈을 흘기는 걸 보니 낄낄 웃음이 납니다.

정말 솔직한 아버지죠? 솔직한 심정을 표현해준 덕에 톡톡 튀는 재미있는 글이 됐습니다. 사실 '한라산 정상까지 아이를 목말 태우고 가느라 정말 힘들었다'라는 별 것 아닌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글쓴이의 솔직한 마음과 재치 있는 문장이 글에 감칠맛을 더해서, 함께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는이야기를 쓰는 목적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눈물이든 웃음이든, 글쓴이와 읽는이의 정서적인 연결은 반드시 필요하죠. 억지로 웃기려고 유행어를 집어넣는다거나 사건 또는 정서를 과장하지 말고, 황주찬 시민기자처럼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재미있는 일화 속에 '가족 사랑'을 듬뿍

백록담을 배경으로. 왼쪽에서 세 번째가 '문제의' 막내 아들.
 백록담을 배경으로. 왼쪽에서 세 번째가 '문제의' 막내 아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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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겪은 일은 "물이 바짝 말라 웅덩이가 된 백록담 배경으로 가족사진 한 장 찍고 내려왔습니다"라는 한 문장에 담았습니다. '사이다' 세 번째 시간(<멀리서 또 가까이서... '밀당'으로 공감 만든다>)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똑같이 다룰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사건은 '산을 올라가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쓰고, 산 정상에서 있었던 일과 내려오면서 있었던 일은 여덟 문장 정도로 확 줄여버린 것입니다.

흔히 어떤 곳을 여행한 뒤 글을 쓰면, 언제 어디를 가서 뭘 봤고 또 언제 어디로 옮겨서 뭘 했고, 하는 식으로 쓰기 십상입니다. '일지식' 구성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요, 개인의 여행기록으로서는 이런 구성이 의미 있을지 몰라도, 사는이야기로서는 매력이 없습니다. 황주찬 시민기자의 글은 그런 일지식 구성을 피하고 핵심사건을 중심으로 압축적으로 글을 구성했습니다. 큰 장점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또 '입방정'을 떨었다는 이야기로 글은 끝납니다. "앞으로 가족이 산에 올라 사진 찍을 기회가 아흔 아홉 번 남았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산을 다섯 명이 함께 오르기로" 해버린 것입니다. "그 약속 꼭 지키라"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글쓴이는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방정맞은 입술을 아흔 아홉 번 때렸"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참 재치 있습니다. 그리고 글을 열 때 쓴 '입방정' 이야기를 마지막 글을 닫을 때 또 한 번 쓰면서, 전체적으로 글이 안정감 있게 짜였다는 느낌을 줍니다.

'방정맞은' 아버지의 고생담을 들으며 낄낄 따라 웃었지만,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가족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내 목이 부러져도 아들들과 한 약속을 지키겠다' 뭐 이렇게 굳이 '각 잡고'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선 이야기를 통해 이미 그런 마음이 전해지고도 남죠. 사는이야기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글을 읽으며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요, 첫 문단의 마지막 문장인 "푸른 바다는 배멀미 하느라 쳐다만 봐도 속이 뒤집혔고 한라산은 막내를 목말 태우고 오르느라 초주검이 됐습니다"입니다. 답을 미리 가르쳐주고 있죠. 산행이 힘들었다는 얘기만 하고 그 까닭이 뭔지 독자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어야 합니다. "막내를 목말 태우고 오르느라" 그랬다고 답을 가르쳐줘버리면 김이 좀 새죠. 추리소설 맨 앞장에 '범인은 홍길동'이라고 써놓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라산 정상 오른 다섯 살 막내, 참 영악하네요>. 200자 원고지 8쪽 정도의 짧은 글이지만, 재미있는 일화와 솔직담백한 이야기 속에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는 글입니다. 아흔 아홉 번이나 더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겠다는 황주찬 시민기자의 다짐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산행 전날 막내를 푹 재우는 것부터 신경쓰셔야겠네요.

[요점 정리] 유행어보다 '솔직함'으로 웃겨라!


태그:#사는이야기, #생활글, #사이다, #사는이야기다시읽기, #생활글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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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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