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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이 밥상 위에 가득하다. 여느 때보다 가지 수가 많은 것 같다. 밥그릇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나는 밥상 가운데에 있는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는다. 맛이 개운하면서도 담백했다.

▲ 우리 집 건강식단입니다
ⓒ 박희우
"된장찌개가 맛이 아주 좋네."
"된장찌개가 아닌 걸요. 정확히 말하면 청국장이에요."

"청국장?"
"청국장으로 만들었으니 청국장 찌개지요. 얼마 전에 청국장 만드는 기계를 샀어요. 오늘 처음 청국장을 만들어봤어요. 이것도 한 번 드셔 보세요."

아내가 반찬그릇을 가져온다. 나는 그릇에 담겨 있는 음식을 본다. 청국장으로 만든 음식이다. 삶은 콩에 김을 넣어 버무렸다. 황토색을 띤 게 여간 먹음직스럽지 않다. 아내가 내 입에 청국장을 한 숟갈 넣어준다. 맛이 독특하다. 된장처럼 짜지도 쌈장처럼 달착지근하지도 않다. 그런데 콩과 콩 사이에 하얀 거미줄 같은 게 보인다.

▲ 청국장을 김을 넣고 버무렸습니다.
ⓒ 박희우
"여보, 하얀 거미줄 같이 생긴 게 뭐요?"
"그게 바로 유산균이에요. 장에 참 좋대요."
"그런데 오늘 반찬은 좀 색다른 것 같소?"
"오늘부터 식단에 신경을 쓰기로 했어요. 이 거 한 번 보세요."

아내가 불쑥 종이를 내민다. 두 장이다. 나는 종이를 들여다본다. 2005년도 체격검사 결과라는 글씨가 보인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체격검사를 한 모양이다.

나는 작은 아이 것부터 확인한다. 키 128㎝, 몸무게 30㎏, 가슴둘레 64㎝, 앉은키 70㎝, 왼쪽 시력 1.1, 오른쪽 시력 1.2다. 큰아이 것도 확인한다. 키 132.7㎝, 몸무게 34.7㎏, 가슴둘레 64㎝, 앉은키 71.8㎝, 왼쪽, 오른쪽 시력 각 1.2다.

키는 그만하면 됐다. 가슴둘레도, 앉은키도 정상이다. 시력도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몸무게다. 아무래도 몸무게가 좀 많이 나가는 것 같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다.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8살이다. 어른들은 보통 자기 키에 100을 뺀 수치를 정상체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110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와 성별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음, 체중관리를 해야겠어."
"그렇지요, 여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고기를 너무 좋아한다. 빵하고 아이스크림도 즐겨 먹는다. 그러나 채소는 아니다. 김치나 푸성귀를 먹으라고 하면 얼굴부터 찡그린다. 어떤 때는 먹는 척 하면서 몰래 숨기기도 한다. 아무리 주의를 줘도 그때뿐이다. 하긴 어디 우리 아이뿐이겠는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는 밥상으로 눈길을 돌린다. 고기반찬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마늘쫑지, 배추김치, 인삼무침, 버섯무침, 취나물 등등. 모두 건강식품들이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사실 이런 음식들을 좋아한다. 고기는 일주일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다. 그래도 과체중이다. 어떻게든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 몸무게를 줄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운동, 목욕, 식이요법 등등. 아내는 그 중에서 식이요법을 택했다. 음식조절이 바로 그것이다.

▲ 아이들에게 따로 반찬을 담아주었습니다
ⓒ 박희우
아내가 접시를 꺼낸다. 아이들 것이다. 반찬을 골고루 접시에 담는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더 이상 반찬을 숨길 수 없다. 아이들은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내는 짐짓 모르는 채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대신 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제안을 한 가지 한다.

"애들아, 이번 어린이날 선물로 무얼 사줄까?"
"아빠, 놀이동산에 가요?"
"언니야, 아니다. 용지공원에서 어린이 노래 자랑한다. 거기에 가자, 아빠."
"그래, 알았다. 그럼 밥을 맛있게 먹어야지. 반찬도 골고루 먹고?"
"예, 아빠."

아이들이 김치며 각종 무침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아내가 빙그레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본다.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자."

우리 집 가훈이 오늘따라 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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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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