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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희철씨의 모니터에 붙어 있는 어머니 사진 복사본.
ⓒ 심은식

신희철씨는 누구?

▲ <다섯살배기 딸이 된 엄마>(2005)
회사를 다니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신희철씨는 지난 2000년 3월 쓰러진 어머니가 치매증세를 보이자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어머니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그녀는 치매에 걸린 부모가 단지 우환거리가 아닌 아기가 되어 웃음과 행복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치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가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최근에 그녀가 겪었던 일들을 엮은 책은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으며 긍정적인 자세로 치매를 극복해 나가는데 훌륭한 지침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신희철(44)씨가 쓴 <다섯 살배기 딸이 된 엄마>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지난 2000년 3월 발병해 현재 만 5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치매환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저자 자신의 일상을 엮은 이 책은 내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선 치매환자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을 털어낼 수 있었고, 주위의 가족들이 어떤 태도로 환자를 대하는가에 따라 치매라는 질환이 비록 힘들더라도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저자를 만나 치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스스로 작은 부분이라도 직접 겪어보고 그런 주제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기자가 신희철씨의 집에 머물면서 직접 환자를 간병하며 겪은 과정을 기록한 르포르타주이다. 며칠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기사가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들에게는 작은 도움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도 노인 문제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어머니 모시려고 20년 직장 그만둬

▲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신희철씨.
ⓒ 심은식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지난해 말부터 화훼업을 시작한 신희철씨는 봄철을 맞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여러 차례의 통화를 거치며 시간을 조율한 후 취재 일정을 정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온 신희철씨는 예상보다 씩씩하고 젊어 보였다. 원래 예정은 함께 용인 집으로 바로 가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일이 다 끝나지 않아 사무실에 다시 들러야 할 것 같다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신희철씨 모니터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사진이 눈에 띈다. 살펴보니 그의 어머니다.

인터넷으로 들어온 주문 확인과 서류 챙기기, 다음날 납품할 화분들의 점검과 마무리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집으로 전화해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머니를 바꿔 통화하는 중에는 목소리가 갑자기 더 밝고 맑아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하지만 최근 간병을 도와주던 큰언니와 막내동생에게 사정이 생겨 낮 시간 중 공백이 생겨 걱정이라고 한다.

치매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얼마만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던 필자는 대부분의 가정이 왜 치매환자를 부담스러워하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치매라는 질환 자체보다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부족과 미흡한 제도적 뒷받침이 각 가정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치매라는 질환에 대한 정보 부족은 가족 내에서 심각한 불화와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신희철씨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고 즐겁기만 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를 새로이 인식했을 때 그 안에서 큰 사랑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하면 기쁘게 웃을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미혼으로 가장 역할을 도맡아온 그녀의 일은 자정이 되도록 끝날 줄 몰랐고 사무실을 나와 용인에 있는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간병을 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질문과 취재 협의를 하면서 그녀가 어머니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고마워하고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신희철씨 모녀와 강아지 복순이
ⓒ 심은식
집에 도착하자 책을 통해 익숙한 강아지 복순이와 조카인 재형(20)씨가 나와 반겨주었다. 그리고 신희철씨의 어머니이자 이번 취재의 주인공인 김순례(79) 할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아 보였으나 연세가 있으신지라 거동이 불편하셨다.

집 안을 둘러보니 우선 출입문과 화장실에 종이로 붙여놓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가 집을 다른 장소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화장실을 알리는 표시와 집 밖으로 나가 길을 잃지 않도록 적어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치매환자가 글을 아는 경우 집 안의 각 장소, 그날의 식사시간 등의 일과, 옷장이나 냉장고의 내용물 등을 적어두는 이런 안내문구가 환자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앉아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신희철씨에게 곧 또 다른 일과가 이어진다. 어머니의 저녁 약 챙기기, 샤워 시켜드린 후 잠자리 돌보기, 간단한 집안 정리와 청소, 다음날 아침식사 준비까지 신희철씨는 집 안에서 만보는 걷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며 쉴 틈 없이 분주히 오갔다. 그녀 자신은 결국 3시가 다 되어서야 씻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른 가족들에게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도와주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 속에서 기자 역시 늦게 잠이 들었다.

간병을 시작하다

▲ 화장실과 출입문에 붙여 놓은 안내문.
ⓒ 심은식
▲ 할머니가 드시는 약. 하루에 5번 약을 먹여드려야 한다.
ⓒ 심은식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간병으로는 첫날, 늦게 잤는데도 긴장이 되어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할머니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과가 시작되었다. 신희철씨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카메라와 필름 등 장비를 정리하며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할머니는 식사를 잘 하셨다. 연세나 병환 중인 기간을 고려할 때 건강 상태가 좋은 것은 음식을 골고루 잘 드시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또한 일반적인 치매환자가 식탐이 강한 반면, 할머니의 경우는 정량을 드시고 만족하셨다. 심리적인 안정감과 규칙적인 식사습관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치매 환자의 식단은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것이 좋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희철씨의 경우 과일과 생선을 항상 준비해 두고 있었다. 다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고혈압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염분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식사 후에 약을 드리면 먹으려 하지 않거나 입에 물고 삼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답답해 하거나 짜증을 내기 쉬운데 그럴 때는 주의를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시도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때 배운 '주의 돌리기'는 이후에 여러 상황에서 도움이 되었다.

신희철씨는 출근하기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아파트 단지 안을 잠시 산책했다. 운동 효과도 있고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통해 할머니가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계속 인식시켜 주었다. 할머니가 낯선 사람인 나를 크게 경계하지 않은 것도 이런 부분에서 적응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가족들이 집을 비우고 난 후 이제 온전히 혼자 할머니를 돌보게 되었다. 비상시 연락처를 적어두고 해야 할 일들을 점검했다. 점심식사 챙기기, 약 드리기, 2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 가기 등이 가장 중요한 일들이었다.

나는 가능하면 할머니가 어떤 행동을 하시든지 크게 무리가 없는 한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치매 환자는 일반적인 인지능력은 퇴행하지만 감성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정적이 되기 쉽다.

▲ 산책을 통해 운동과 사회성 유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심은식
할머니의 경우도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가버리자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지고 행동도 불안해 보였다. 정서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환자의 행동과 상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비단 치매 환자가 아니더라도 텅 빈 집안에 홀로 방치되어 있는 노인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신희철씨는 늙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늙을 것인지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드디어 할머니와 함께 하는 좌충우돌 간병기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어질 두 편의 기사에서는 김순례 할머니의 일과와 실제 간병에서 겪게 되는 상황들, 그에 따른 대처법 등이 이어진다.

집에서 가까운 치매환자시설 절실

▲ 집안에 방치되듯 남겨진 노인들은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정서적인 고립과 불안 상태는 환자가 아닌 일반 노인들에게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심은식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이미 전체 인구의 8.7%에 달하는 고령화 사회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공간과 대책은 매우 제한적이며 그 가운데서도 노인질환에 대한 준비는 미흡하여 그 책임을 거의 전적으로 각 가정에만 지우고 있다.

실례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 치매환자는 현재 약 35만명에 이르지만 이들을 수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치매의 경우 환자를 곁에서 계속 돌봐야 한다는 점에서 간병인 문제는 대부분의 가정이 가진 공통적인 고민거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를 효율적으로 간호하고 보살필 수 있는 사회적 제도나 시설은 크게 부족하다.

2002년 조사결과, 전국의 노인의료복지 시설은 모두 228개소로 그 가운데 무료나 실비로 지원하는 경우는 모두 합쳐 1만2000여명을 수용하는 것이 전부이다. 전체 치매환자수가 35만명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부족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가족이 있거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아닌 노인은 이런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고액의 비용을 들여 시설을 이용해야 하고 이 경우 한 달 생활비로 1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더구나 일반적인 병과 달리 치매의 경우 평균 2~3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환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부담은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서 환자를 돌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편 신희철씨는 이런 시설들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고려할 점들이 있다고 언급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설에 노인들과 환자들만 위탁하는 것은 격리와 마찬가지이며 아무런 기쁨이나 낙 없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가득한 상황이 환자에게 부정적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녀는 다른 가족들의 접근과 방문이 쉬운 경로당이나 어린이집처럼 아파트단지 내에 작은 시설을 만들어서 그 지역 환자들을 자원봉사 등을 통해 돌보고 또 가족들도 매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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